반도체, 이젠 쌓고 자르고 연결하는 ‘패키징’이다
세계 1위 반도체 파운드리(위탁 생산) 기업 대만 TSMC는 미국 애리조나에 건설 중인 초대형 공장 가동을 두고 애를 먹고 있다. 미 정부 보조금을 포함해 400억달러(약 52조원)을 투자한 초대형 프로젝트지만, 가동 예상 시점이 애초 2024년에서 2025년으로 1년 연기됐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와 미국 IT 전문 매체 디인포메이션 등은 TSMC 애리조나 공장 가동 지연의 핵심 원인으로 미국 내 반도체 패키징 기업·인력·시설 부족을 꼽았다. 미국의 글로벌 반도체 고급 패키징 시장 점유율은 고작 3%에 불과하다. 이대로라면 최첨단 공장을 지어도 미국 내 첨단 반도체 생산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반도체 패키징이 반도체 산업 경쟁력의 핵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반도체 패키징은 웨이퍼 형태로 생산된 반도체를 자르고 전기 배선 등을 연결해 전자 기기에 탑재할 수 있는 형태로 조립(패키징)하는 작업을 의미한다. 웨이퍼에 회로를 새기는 전(前) 공정 이후 웨이퍼를 가공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후(後) 공정이라고도 부른다. TSMC를 비롯해 미국 인텔, 한국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은 각 사의 첨단 패키징 기술을 잇달아 발표하고 있고, 미국과 중국은 국가 차원의 투자·지원을 내놓고 있다. 미국은 첨단 패키징 기술에 대해 정부 보조금 25억달러를 지원하기로 했다.
◇‘무어의 법칙’ 한계 돌파할 패키징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이 패키징 기술 개발에 열을 올리는 것은 반도체의 회로 집적도를 높여 성능을 향상시키는 ‘무어의 법칙’이 한계에 도달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현재 삼성전자·TSMC·인텔 등 반도체 기업들은 3~5nm(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 단위로 첨단 반도체 회로를 설계하는데, 1nm 단위를 줄이는 데 수조 원을 투자해야 할 정도로 비용·기술 한계점이 가까워졌다. 이에 따라 기업들은 서로 다른 반도체를 수직 또는 수평으로 연결해 하나의 칩으로 제조하는 패키징 기술을 집중 개발하고 있다.
패키징 기술의 선두 기업은 세계 1위 파운드리 기업인 대만의 TSMC다. TSMC는 실리콘 소재 미세 기판을 이용해 수평뿐 아니라 수직으로도 칩과 기판을 연결하는 패키징 기술(CoWoS)을 2012년 최초로 개발했고, 고객사 애플이 설계한 첨단 반도체 대부분이 이 공정을 거쳐 생산된다. TSMC 파운드리 경쟁력의 핵심이다. 인텔은 차세대 기판으로 꼽히는 ‘유리 기판’ 패키징 기술과 시제품을 지난달 공개했다. CPU·메모리 반도체와 연결되는 기존 기판(PCB)은 플라스틱 소재를 주로 활용한다. 하지만 유리 소재를 기판에 사용하면 더 복잡한 설계가 가능해지고 전력 효율·내구성이 증가한다. 인텔은 이 기술 개발에 10년간 1조원 이상을 투자했고, 2025년 이후 본격 양산에 들어갈 계획이다.
◇후발 주자 한국, 최근 본격 투자
지난해 새로운 패키징 기술 ‘칩렛’을 도입하기 위한 글로벌 컨소시엄인 ‘UCLe’가 설립됐다. 칩렛은 반도체를 연산·저장·전력 같은 기능별로 쪼개 제작한 다음 다시 조립하는 방식으로, 하나의 칩을 장난감 레고 블록처럼 쪼개 원하는 용도대로 쉽고 빠르게 재조립할 수 있도록 하는 기술이다. 이 컨소시엄에는 인텔·엔비디아·TSMC·MS·퀄컴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을 비롯해 한국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참여했다.
패키징 후발 주자인 한국 기업들도 최근 투자와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2020년 웨이퍼 상태의 칩 여러 장을 수직으로 얇게 쌓는 3D(3차원) 패키징 기술을 개발했고, 패키징 기술을 고도화할 AVP(어드밴스드 패키지) 사업팀을 올해 초 신설했다. SK하이닉스는 D램에 미세 구멍 수천 개를 뚫어 층층이 쌓인 칩에도 전극이 통하는 기술(TSV)을 이용해 첨단 메모리 반도체로 꼽히는 HBM(고대역폭 메모리) 점유율 1위를 달린다. 테크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패키징 기술은 TSMC가 주도하고, 매출·수주 규모로는 대만의 ASE와 암코(미국)·JCET(중국) 등 해외 기업들이 시장 90% 이상을 점유한다”며 “한국도 패키징 기술 생태계에 대한 점검과 적극 투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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