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살리는 가장 완벽한 복수는 용서”

이호재 기자 2023. 10. 11. 03:01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사람이 죽으면 흙이 됩니다. 흙은 빨갱이도 적군도 아닙니다. 그냥 흙일 뿐이니 미워할 가치도 없습니다."

1971년 7월 휴전선 부근에서 육군 소위로 복무하던 김홍신 작가(76)는 육군에서 조사를 받던 중 이렇게 진술했다.

"당시 육군 소위로 휴전선 부근에서 대간첩작전을 하고, 사살된 북한 장교 시신 옆에 십자가를 꽂아주고 기도하고, 이 사건으로 조사를 받은 것 모두 제가 실제로 겪은 일입니다. 여기에 상상을 더했어요."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김홍신 새 소설 ‘죽어나간 시간을…’
軍시절 경험 바탕 ‘적인종 삶’ 그려
김홍신 작가는 10일 “한국 사회의 좌우 갈등이 너무 심해졌다. 용서와 화해를 바라며 신간을 썼다”고 말했다. 뉴시스
“사람이 죽으면 흙이 됩니다. 흙은 빨갱이도 적군도 아닙니다. 그냥 흙일 뿐이니 미워할 가치도 없습니다.”

1971년 7월 휴전선 부근에서 육군 소위로 복무하던 김홍신 작가(76)는 육군에서 조사를 받던 중 이렇게 진술했다. 박정희 당시 대통령의 제7대 대통령 취임식이 열리던 달 1일, 휴전선에 침투하다가 사살된 북한 장교의 시신 옆에 십자가를 꽂고 명복을 빌어줬다는 이유로 조사받다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은 것이다. 김 작가는 “소설이나 영화를 보면 적장이 죽었을 때 모자를 벗고 예의를 표하곤 한다”며 “시신에 경의를 표한 건 인간에 대한 순수한 경외심 때문”이라고 진술했다.

김 작가는 별다른 고초 없이 풀려났지만 당시 기억은 생생하게 남아 그를 오랫동안 괴롭혔다. 그가 52년이 지나 장편소설 ‘죽어나간 시간을 위한 애도’(해냄)를 10일 펴낸 이유다.

김 작가는 10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신간은 1971년 내가 겪은 일을 바탕으로 구상한 작품”이라며 “세상이 좋아지기 전에는 출간이 어렵다고 생각해 그동안 발표하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당시 육군 소위로 휴전선 부근에서 대간첩작전을 하고, 사살된 북한 장교 시신 옆에 십자가를 꽂아주고 기도하고, 이 사건으로 조사를 받은 것 모두 제가 실제로 겪은 일입니다. 여기에 상상을 더했어요.”

신간은 국내 첫 밀리언셀러로 유명한 대하소설 ‘인간시장’(전 10권·1981년·해냄)으로 유명한 그가 장편소설 ‘바람으로 그린 그림’(2017년·해냄) 이후 6년 만에 내놓은 신작이다. 북한 장교의 시신 옆에 십자가를 꽂고 명복을 빌어준 죄로 ‘빨갱이’라 불리고 고초를 당한 국군 소위 한서진의 일대기를 그렸다.

그는 “당시 난 처벌받지 않았지만 소설 주인공은 국가보안법과 반공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감옥에 간다”며 “한순간의 행동으로 살아있어도 살아있는 존재가 아닌 취급을 받았던 ‘적인종’(빨간색 인간)의 삶을 그리고 싶었다”고 했다. 한서진이 자신의 인생을 망친 이들을 향해 복수를 꿈꾸지만 끝내 용서를 선택한 것에 대해선 “타인을 용서하지 않으면 내가 괴롭다. 가장 완벽한 복수는 용서”라고 했다.

“1971년 저를 조사했던 분이 얼마 전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향과 초를 켜고 108배를 했어요. 나를 살리는 게 용서입니다. 그분이 좋은 곳으로 가기를 기도하니까 제 마음이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어요.”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그는 활짝 웃으며 답했다.

“1976년 등단 후 펴낸 책이 모두 138권이에요. 3년 후면 등단 50주년인데 그때까지 열심히 써서 140권을 채울 겁니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Copyright © 동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