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무위 국감 첫 날···'신사 상임위' 전통 지켰다(종합)
국회 정무위원회가 국정감사 첫 날 막말이나 회의 진행에 방해를 줄 정도의 심각한 고성 없이 '신사 상임위'라는 전통을 지켰다. 정부의 책임을 따져 묻는 과정에서 질타의 목소리가 있었고 주요 쟁점에 대해 여야 위원들 의견이 부딪치긴 했지만 이날 정무위 국감은 집단 퇴장이나 파행없이 흘러갔다. 또 늦은 시간까지 정부에 적극적으로 대안을 제시하거나 긍정적 답변을 이끌어내는 의원들도 여럿 있어 눈길을 끌었다.
이날 방기선 국무조정실장은 "성장이라든가 수출이라든가, 모든 것들이 전반기보다 하반기가 좋아지고 있는 상황"이라며 "결국 숫자로 나올 문제"라고 밝혔다. 또 "(우리나라) 올해 상반기 성장률이 0.9%였다. 저희의 당초 전망은 올해 성장률 1.6%였다. 다른 국제기구들이 1.8~1.9% 수준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냉정하게 봐서 1.6% 성장을 전망했던 것"이라며 "국제기구들도 다 같이 (성장률 전망치를) 내리는 것이고 지금 사실 1.5% 내외에서 수렴이 되는 상황"이라고 했다. 방 실장은 이어 "(올해) 아무리 못해도 (성장률이) 1.4% 내외는 될 것이라 생각한다. 그럼 하반기 1.7~1.8% 성장해야 한다"고 했다.
야당 의원들은 정부의 이같은 전망이 '장밋빛 전망'이라 지적했다.
민주당 소속 백혜련 정무위 위원장은 "전날 국회 예산정책처에서 자료집을 발간했다. (보고서는) 우리나라 올해 경제성장률을 (종전 대비 0.4%포인트 낮춘) 1.1%로 보고했다"며 "많은 경제학자들과 여러 실물경제 종사자 분들을 봤는데 한국 경제가 하반기에 나아지리라 전망하시는 분을 본 적 없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국제통화기금(IMF)에서도 대한민국 경제성장률을 하향조정하고 있는 게 현실 아닌가"라고 했다.
이어 "정부에서는 오히려 그런 상황들을 인정하고 그 상황에서 탈피하기 위한 현실적인 대책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며 "정부가 냉정하게 평가하고 국민들에게 발표할 것은 발표하고 잘못한 것은 잘못했다고 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본다"고 했다.
오기형 민주당 의원은 "세수 결손이 60조원 가깝게 나오는 상황에서 (정부는) 어떤 태스크포스(TF)나 조직적인 대응팀을 꾸렸나"라며 "이러다 막판에 정부가 적자 국채를 발행하고 그 경우 시장 충격이 클 것이기에 미리 (상황을 제대로) 이야기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이용우 민주당 의원은 "(세수 결손을 보충하기 위해) 기금운용계획을 변경하는 것은 예산을 돌려막기 하는 것"이라며 "소비 심리가 위축돼 있고 수출 구조도 확대되는 시점이 아닌데 이 상태에서 어떻게 상저하고를 이야기하나"라고 했다.
윤영덕 민주당 의원은 "상저하고가 확실한가"라고 물으며 "제가 봤을 때 '리스크'가 상저하고다. 대외적 환경도 그렇고 우리 정부가 외부 환경에 대응하는 자세도 그렇고, 너무 안이한게 아닌가 생각이 들어 우려스럽다"고 지적했다.
여당인 국민의힘에서는 문재인 정부에서 있었던 통계조작 의혹을 파고 들었다.
이날 정무위 여당 간사를 맡고 있는 윤한홍 국민의힘 의원은 방 실장을 향해 "통계조작을 잘 알고 있나"라며 "부동산 통계 조작 때문에 재건축 부담이 과다하게 나와 어마어마하게 피해 준 것을 잘 아실 것"이라고 했다.
이날 국민의힘에서는 문재인 정부에서 부동산 통계 조작이 발생, 주택 가격 변동률을 낮게 만들어 전국 24개 재건축 단지 조합원이 내지 않아도 될 부담금을 약 1조원 더 내게 됐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윤 의원은 "저는 지금 소득통계, 고용통계 조작을 이야기하려고 한다. 여기 계신 경제·인문사회연구원 산하 연구원도 그 통계를 쓸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조사를 해봤더니 10개 연구원에서 149개 연구과제가 조작된 통계를 사용했다고 자료를 제출했다"며 "그 연구과제를 위해 집행된 예산이 98억5000만원이라고 자료제출됐다"고 했다.
또 "그 중 한국 보건사회연구원은 그 통계자료를 자주 활용한 연구과제가 84건"이라며 "농촌경제연구원은 22건, 한국행정연구원은 14건이다. 환경연구원은 7건"이라고 지적했다.
이날 여야 위원들은 일본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문제, 최근 정부가 내년도 연구개발(R&D) 예산을 삭감키로 한 것 등을 두고도 첨예한 시각차를 보였다.
특히 지난 6월부터 의원 활동 기간 중 처음으로 정무위에 속하게 된 강훈식 민주당 의원은 정부의 세수 재추계 관련, 방기선 국무조정실장으로부터 "송구하다"는 답변을 이끌어냈다. 또 박구연 국무조정실 국무 1차장에 대해선 일본에서 방류된 후쿠시마 오염수에서 기준치 이상의 삼중수소가 나올 경우 대응 매뉴얼이 제대로 마련돼 있는지 문제를 갖고 집요하게 밀어붙였다.
야당 위원들이 또 집중한 포인트는 정부의 R&D 예산 삭감의 문제다.
정무위 야당 간사를 맡고 있는 김종민 의원은 "국가전략회의에서 (대통령의) 이권 카르텔, 이 한마디로 R&D 예산이 감소됐다고 하는데 이권 카르텔이 과연 무엇인가, 구체적 사례를 말해 달라, 이권 카르텔에 대한 조사나 연구 작업을 별도로 진행한 적이 있는지"를 물었다. 이에 방 실장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를 중심으로 준비중인 것으로 안다"고 답했고 김 의원은 다시 "조사와 연구가 (예산 삭감 전에) 선행됐어야 하는게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권 카르텔 실체가 무언지 서면으로 정리해 제출해 달라"고 주문했다.
이밖에 민병덕 민주당 의원은 이날 국감장에 나온 경제인문사회연구회(이하 경인사) 정해구 이사장에게 "올해 예산은 작년 예산에 비해 얼마나 깎였냐"며 "52%, 절반 정도 깎였는데 이래서 연구 기능을 제대로 할 수 있겠나"라고 말하며 우려했다.
반면 윤한홍 국민의힘 의원은 "공무원 조직에 들어가면 R&D 예산은 눈 먼 돈, 먼저 먹는 사람이 임자이고 내놓은 R&D 결과를 보면 실제 못쓰는 결과를 내놓는 게 비일비재하다"며 "예산이 낭비되는 것을 어떻게 그냥 두나, 과기부와 산업통상자원부에서 중복돼 지출되는 건도 있다, 정리할 때가 됐다"고 했다.
윤 의원은 이어 "제대로 연구하는 사람에게 제대로 돈을 주자는 게 목적"이라며 "그게(연구비가) 다 세금 아닌가, 국무총리실에서 제대로 조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날 국감에서 고위공직자의 주식 백지신탁제도 문제점도 거론됐다. 특히 최근 김행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 측 지분 매매와 관련, 김성주·김한규 민주당 의원이 제도적 허점을 지적했다.
김한규 의원은 "김 후보자의 경우 문제된 것 중 하나가 (김 후보자 측이 보유했던) 주식을 백지신탁하지 않고 지인에게 매도했다 퇴직 후에 주식을 다시 매수한 것"이라며 "이런 부분에 대해 국무조정실에서 (후보자) 제청 전에 '문제가 있을 것 같다', 이런 식의 논의를 한 적이 없나"라고 했다. 이어 "김 후보자는 (보유 중이던 주식을) 회사가 적자라서, 또 사려는 사람이 없어서 신탁이 안 돼 시누이에게 사달라 부탁했다는데 (주식 발행사가) 적자이거나 사려는 사람이 없으면 백지신탁이 안되나"라며 "법에 따르면 백지신탁은 무조건 할 수 있다"고 했다.
김성주 의원은 "미국 상원에서는 모든 고위공직자에게 개별 기업 주식 소유와 거래를 금지하는 법이 논의 중인데 국민들 80% 이상이 지지한다"며 "법을 위반할 경우 의원의 경우 투자가치의 10% 벌금을 부과한다는 것, 공무원의 경우 거래 이익을 몰수하고 1만달러의 벌금을 부과한다는 것인데 우리도 이런 강력한 입법이 필요치 않나"라고 했다.
김성주 의원은 또 "백지신탁 대상을 국내 주식 뿐만 아니라 해외 주식, 가상자산 등 (그 적용 범위를 확장할 필요가 있다)며 "(백지신탁 명령을 불이행시) 과감하게 임명하지 않는 (등의 제도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유의동 국민의힘 의원이 부동산 PF(프로젝트파이낸싱) 대주단에 속한 일반 기업들이 일부러 시행사에 대출 만기 연장을 거부하는 수법으로 사업권을 빼앗아오는 사례가 생겨나고 있다며 국무조정실에 부처를 아우르는 해법을 주문했다.
유 의원은 "(문제를 일으키는) 기업들이 금융기업이 아니기 때문에 금융 당국이 나서서 해결책을 찾기도 어려운 구조"라며 "각 부처에서는 전체 흐름을 이해 못하니 상당히 소극적이다. 국무조정실이 이니셔티브를 쥐고 이끌고 나가 이 문제를 사전에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방기선 국무조정실장은 "앞으로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 국토교통부 등 관계부처와 함께 이 리스크 관리에 대해 논의를 해보겠다"고 답했다. 유 의원은 점심 식사를 하고 돌아온 이후에도 이 문제를 갖고 방 실장과 진지하게 논의하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조응천 민주당 의원은 날로 수법이 진화하고 있는 신종 피싱(Phishing·사기)에 대응하기 위해 범정부 대응 조직을 꾸릴 것을 제안했다. 조 의원은 특히 직접 10만원 이상을 들여 신종 피싱에 '일부러 낚인' 일화를 구체적으로 국감장에서 설명해 보이며 피감기관장은 물론 다른 위원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조 의원은 "그냥 사기죄로 치부해 경찰에만 맡겨두기보다 여러 부처가 같이 붙어서 해결해야 한다"며 "사용한 계좌가 명의를 도용한 대포통장이면 금융실명거래법, 계좌를 매매했다면 전자금융거래법, 팀 단위로 사기 행각을 벌였다면 범죄단체조직법, 사이트 사업자 등록번호를 도용했다면 조세범 처벌법 등 위반이다. 보이스피싱 사례처럼 (이같은 신종 피싱에 대해서도) 국무조정실에서 TF(태스크포스)를 구성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고령화 시대에 맞춰 청년 연령 기준을 39세까지 높여 '청년도약계좌' 등 혜택을 받도록 해야 한다는 이색 제안도 나왔다.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은 "취직, 결혼, 출산이 늦어지는 세태 등을 반영해 39세 정도로 청년 연령 기준을 갖고 가면 어떻겠나"라고 했다.
오기형 민주당 의원은 현재 후쿠시마산 수산물 규제 대상에서 '수산물 가공식품'은 제외돼 있는 점을 지적, 원료를 '채취'한 곳과 완제품이 '제조'되는 곳이 다를 경우 후쿠시마산 수산물 규제가 원래 목적에 맞게 제대로 이뤄질 수 없으므로 이에 대한 정부의 대책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박구연 국무조정실 1차장도 고개를 끄덕이며 "정부도 밀도있게 검토해 보겠다"고 답했다.
김성은 기자 gttsw@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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