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강제동원 피해자 권리 뺏기 위해 내년에도 4억 예산 편성

2023. 10. 11. 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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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식 "피해자와 싸우는 정부, 2차 가해 자행…헛돈 쓰겠다고 뻔뻔하게 청구"

[이재호 기자(jh1128@pressian.com)]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대법원 판결을 통해 획득한 법적 권리를 소멸시키기 위해 정부가 진행한 변제공탁이 법원에 의해 제동이 걸린 가운데, 외교부가 이에 항소하기 위해 내년 4억 2000만 원의 예산을 배정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피해자들과 끝까지 싸우려는 외교부가 이들에게 '2차 가해'를 저지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10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외교부 국정감사에 출석한 박진 외교부 장관은 강제동원 피해자를 대상으로 한 정부의 변제공탁이 지방법원에서 번번이 기각 판결을 받자 내년 예산에 추가 소송 비용으로 2억 원, 기금 관리단 TF 운영비로 2억 2000만 원을 편성해 국회에 제출한 것 맞냐는 더불어민주당 조정식 의원의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정부는 지난 3월 6일 발표한 강제동원 관련 해법안을 통해 일본 기업의 참여가 없는 기금을 마련하고, 이 기금에서 일본 기업이 지불해야 할 배상금을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하 재단)을 통해 지급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그런데 당시 지급 대상자 15명 중 2명의 생존 피해자와 2명의 피해자 유족이 정부 해법에 반발해 재단이 지급하겠다는 금액을 수령하지 않았고, 이후 7월 3일 재단은 이들을 상대로 이 금액을 찾아가라는 변제공탁을 실행했다.

정부는 변제 공탁을 실행하는 것 자체로 피해자들의 채권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지만, 변제공탁의 목적 자체가 공탁을 진행하여 채무자의 채무를 없애는, 즉 채권자 입장에서는 채무자에 대한 채권을 없애는 것이다.

공탁을 통해 일본 기업에 대한 피해자의 채권을 없애려던 정부의 구상은 법원에 의해 제동이 걸렸다. 광주지법은 7월 4일 재단의 공탁이 유효하지 않다며 불수리 결정을 내렸다. 법원은 피해자인 원고 양금덕 할머니가 일본기업이 아닌 제3자의 "변제"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내용증명을 이미 지난 3월 재단 측에 제출했다며, 이를 '공탁 거부 의사'를 분명히 밝힌 것으로 해석했다.

이후 재단은 이의신청을 하며 본격적인 재판에 돌입했으나 이 역시 기각됐다. 지난 8월 16일 광주지방법원에 따르면 민사44단독 강애란 판사는 재단에 공탁 불수리 결정에 대한 이의신청을 기각하는 결정을 내렸다.

공탁 자체가 법원에 의해 가로막히고 이에 대한 이의신청이 법원에서 기각됐음에도 정부는 공탁을 실행하기 위해 항소를 진행하겠다는 입장이다. 피해자가 가지고 있는 권리를 없애야 한일 관계 개선의 시발점이었던 정부의 강제동원 해법안이 유지 및 완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조 의원은 "정부가 일본과 협상에서 첫 단추를 잘못 끼우더니 이제는 피해자, 법원과 싸우고 있다. 국내 민법에 의해 패소했으면 승복해야지 왜 헛돈을 또 쓰겠다고 청구하나. 뻔뻔하게"라고 질타했다.

그는 "일본(의 잘못)은 면책해주고 우리 내부에서 법원과 피해자와 싸우고 있다. 역지사지해서 생각해 보라. 항소한다는 것은 앞으로 몇 년 동안 정부가 피해자에게 2차 가해 하겠다는 것과 똑같은 것"이라고 일갈했다.

조 의원은 "정부에서 솔직하게 인정하고 항소 및 예산 철회하고 피해자에게 사과하라. 그렇지 않으면 해법 안나온다"라며 "항소심에서 패소하면 대법원에 정부가 또 상고하고 그러면 몇 년 걸린다. 몇 년 후에도 장관 하실거냐, 누가 책임 질 것인가"라고 지적했다.

그는 예산 소요 문제가 제기되는 만큼, 외교부가 이번 사안과 관련한 법적 판단을 받은 보고서를 공개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그러나 박 장관은 외교 현안에 대한 사안이라며 이를 거부했다.

그러면서 박 장관은 공탁을 계속 이어갈 것이라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는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과 2018년 대법원 판결이 충돌되고 있다"며 "(피고인) 일본 기업은 채무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 현실 아닌가"라고 말했다.

▲ 박진 외교부 장관이 지난 3월 6일 서울 종로구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2018년 대법원의 배상 확정판결을 받은 국내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하 재단)이 조성한 재원으로 판결금을 대신 변제하는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외교부가 비공개원칙을 고수하고 있는 가운데, 법적 자문에는 이명박 정부 당시 청와대 법무비서관을 지냈던 강훈 변호사와 2009년부터 2015년까지 대법관을 지낸 민일영 변호사 (법무법인 세종) 등이 관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8월 12일 <오마이뉴스>는 재단이 공탁 불수리에 대한 이의신청 사건의 대리인으로 이들을 선임했다고 보도했다. 매체는 "광주지방법원에 따르면 재단은 광주지법 민사 제44단독 강애란 판사 심리로 진행되는 '공탁관 처분에 대한 이의신청' 사건 재판의 소송대리인으로 모두 2개의 법무법인을 선임했다"며 재단 측이 11일까지 법무법인 세종과 바른 등 두 곳의 법무법인에서 모두 8명의 변호사를 소송대리인으로 선임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이와 관련 재단 관계자는 8월 18일 <프레시안>과 통화에서 이의신청 외에 강제동원 사안과 관련해 이들에게 법률 자문을 받아왔냐는 질문에 "일반적으로 (변호사를) 선임 했을 때 하는 방식으로 이해해주시면 될 것 같다"고 답해 제3자 변제공탁 등의 사안을 논의했다는 점을 시사한 바 있다.

[이재호 기자(jh1128@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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