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법무부는 몰랐나? 눈감았나?… 부실 인사검증 논란[수요논점/길진균]

길진균 논설위원 2023. 10. 11.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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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 검증 시스템을 검증한다
《이번 정부에서도 어김없다. 윤석열 정부의 ‘부실 인사검증’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김행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는 주식 파킹, 배임 의혹 등이 불거지면서 국회 인사청문회가 파행했다. 2월엔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에 임명된 정순신 변호사가 임명 하루 만에 낙마했다. 인사검증 업무를 ‘양지’로 끌어내 투명성을 높이겠다며 법무부 산하에 인사정보관리단을 설치한 윤석열 정부의 검증 시스템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 걸까. 대통령실과 인사정보관리단은 청문회 과정에서 불거진 의혹들을 몰랐을까, 아니면 알고도 눈감았을까.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 인사검증은 어떻게 이뤄지는지 그 과정을 살펴봤다.》



● 사전 질문서만 제대로 작성했다면

‘본인, 배우자 또는 직계비속이 비상장회사의 주식 또는 지분을 보유했거나 현재 보유하고 있습니까’(21번)

‘비상장회사 주식의 취득 또는 매도 과정에서 사회적·경제적 논란이 될 소지는 없었는지 소명해 주시기 바랍니다’(21-4번)

고위공직자 후보에 이름이 올라 검증 대상이 되면 해당 인사는 위 질문들을 포함한 59쪽 분량에 169개 질문 항목으로 구성된 ‘공직 예비후보자 사전 질문서’를 받게 된다.

이때부터 3단계의 검증 과정을 거친다. 사전 질문서 답변 작성을 통한 자기 검증,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의 각종 자료 검증, 공직기강비서관실의 검증보고서 작성 및 대통령의 판단 순이다.

김 후보자는 2013년 박근혜 청와대 대변인으로 발탁됐을 때 자신이 공동 창업한 위키트리의 운영사인 소셜뉴스 주식(비상장)을 시누이에게 매각했다가 되사들였다. 지금은 이 회사의 최대 주주다. 이 때문에 백지신탁 제도를 회피하려 했다는 의혹에 휩싸였다. 김 후보자가 21번과 21-4번 질문에 대해 어떤 답변을 기재했는지 알려지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가장 큰 논란으로 부상했다.

사전 질문서에는 ‘본인, 배우자 또는 직계존비속이 원·피고 등으로 관계된 민사·행정 소송이 있습니까’(6번)라는 항목도 있다.

김 후보자는 2019년 공동창업자였던 공 모 씨로부터 소셜홀딩스의 경영권을 넘겨받았는데 이 과정에서 민사소송에 휩싸였다. 민주당은 이 재판 판결문을 근거로 “김 후보자가 회삿돈으로 인수자금을 충당했다”며 배임 의혹을 제기했고, 김 후보자는 “배임은 없었다”고 반박했다.

●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 ‘전문성’이 강점이라는데…

사전 질문서 답변의 진위 및 법률적 쟁점을 따지는 일은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의 몫이다. 국세청과 금감원, 경찰, 검찰, 병무청 등 각 기관의 전산망을 조회한다. 가능한 범위 안에서 법원 판결문도 검색한다. 의문이 있을 경우엔 검증 대상자에게 추가 소명을 요구하기도 한다.

윤 대통령이 과거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담당하던 인사검증 기능을 없앤 뒤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을 신설해 그 권한을 넘겨준 명분은 ‘전문성’이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지난해 7월 국회 법사위에서 “법무부가 사실 확인과 법적 쟁점을 파악하는 데 특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이 법적 쟁점 파악과 해석에 강점이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현재 김 후보자의 주식 파킹이나 배임 의혹을 ‘놓쳤다’고 보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 사전 질문서는 ‘자기 검증서’

역대 정부는 조각이나 개각 때마다 크고 작은 ‘부실 검증’ 논란에 휘말렸다. 이 때문에 이명박 정부는 인사 검증 시스템 전반을 손봤다. 2010년 고위공직자가 되려는 사람에게 검증 질문 200개를 던져 꼼꼼하게 점검토록 하는 사전 질문서를 만들었다. 정부마다 질문 항목은 조금씩 다르지만 이 시스템은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윤석열 정부도 질문서를 만들었다. 지난해 10월 대통령실이 공개한 질문서는 기본 인적사항(7개), 국적·출입국 및 주민등록(12개), 병역의무(7개), 범죄경력 및 징계(10개), 재산관계(32개), 납세의무 이행(35개), 학력·경력(5개), 연구 윤리(16개), 직무 윤리(32개), 사생활 및 기타(12개), 기타(1개)로 구성됐다. 윤석열 정부는 또 가상자산(가상화폐) 관련 질의도 추가해 소유자와 가상자산명, 상장 여부, 보유 수량, 총평가금액, 매입 경위 등을 기재하도록 했다.

사전 질문서는 일종의 자기 검증서다. 과거 청와대에서 인사검증을 담당했던 한 인사는 “200개 안팎의 질문 항목을 만들고, 이에 대해 본인에게 먼저 답하게 하는 것은 기초 자료 확보의 의미도 있지만 고위공직자를 맡을 자격이 있는지 스스로 되돌아보도록 하는 의미도 담겨 있다”며 “실제 많은 검증 대상들이 답변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못하겠다’며 사의를 표명하곤 했다”고 말했다.

● 늘 인사권자의 ‘정무적 판단’이 논란

그런데도 인사검증 파문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뭘까.

자료 검증과 평판 검증 등이 마무리되면 공직기강비서관실은 검증보고서를 작성한다. 확보한 ‘팩트’와 함께 적격 여부에 대한 판단도 함께 적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권마다 차이가 있지만 3∼5단계로 적격 여부를 명시한다. 문제없음 - 다소 부담 - 부담 - 문제 있음 - 부적격 등의 형식이다. 여기까지 마무리되면 최종 판단만 남는다. 여기서부터는 ‘정무적 판단’의 영역이다. 부담을 안고 후보자로 지명할 것인지, 아니면 포기할 것인지를 결정한다.

문제는 논란이 예상되는 대도 무리하게 강행하는 경우다. 전직 청와대 인사 담당자는 “실무진이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보고서를 작성했는데도 대통령이 ‘이 사람을 꼭 써야겠다’고 낙점하면 어쩔 수 없다”고 했다.

박근혜 정부 당시 청와대에 근무했던 한 인사의 회고다. “인사검증팀이 심각한 문제를 발견해 ‘부적격’으로 보고서를 올렸다. 그러자 대통령은 인사검증팀원을 교체했고, 새로운 보고서가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최종 판단은 결국 대통령의 몫이라는 얘기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7대 비리’ 기준에 따라 고위공직자 인사를 하겠다고 했지만, 검증 논란은 이어졌다. 이낙연 국무총리, 강경화 외교부 장관,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위장 전입 논란으로 야당 반대에 부딪혔다. 우여곡절 끝에 이낙연 총리 인준안만 국회를 통과했고, 문 대통령은 야당 동의 없이 강 장관과 김 위원장을 임명했다. 조동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후보자는 두 아들의 병역특례, 연구비 횡령 의혹까지 겹쳐 지명이 철회되기도 했다.

● 검증 과정의 법적 근거부터 확립해야

행정부 고위공직자에 대한 인사권은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라 할 수 있다. 대통령은 정치적 가치와 신념을 함께하는 고위공직자와 함께 국정을 이끌어 나가야 하지만, 이들은 반드시 공직자로서의 자격과 능력, 도덕성을 갖춘 것으로 검증된 인사여야 한다. 대통령실이 사전 질문서를 만들고, 이를 다시 검증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 대한 법률적 근거는 매우 취약하다. 인사검증 첫 단계인 사전 질문서 작성부터 법적 근거가 없다. 이를 허위로 작성했을 때 처벌 규정도 없다. 사전 질문서 표지에 ‘답변 내용이 사실과 다른 것으로 확인될 경우 향후 공직 임용에서 배제되는 등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고 적혀 있을 뿐이다.

대통령실은 정순신 변호사의 국가수사본부장 낙마 사건 때 ‘아들 학교폭력’ 문제가 사전 검증 때 걸러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당시 대통령실은 질문 항목 중 하나인 ‘본인 배우자 또는 직계존비속이 원·피고 등으로 관계된 민사·행정소송이 있습니까’라는 문항에 정 변호사가 ‘아니요’라고 답해 이를 알 수 없었다는 입장이다. 이후 시민단체가 정 변호사를 허위공문서작성 및 행사, 위계공무집행방해 등의 혐의로 고발했지만 경찰은 불송치 결정을 내렸다.

미국의 경우는 다르다. 고위공직자 후보 질문서인 130여 페이지 분량의 ‘국가안보 지위를 위한 질문지(SF86)’에는 의도적으로 사실을 위조·은폐할 경우 형법에 따라 벌금형이나 5년 이하의 징역형에 처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정 변호사 낙마 이후 대통령실과 법무부는 인사검증 개선 방안을 찾겠다고 했다. 그러나 구체적 내용이나 인사검증 과정에 대해선 “확인해 줄 수 없다”며 비밀주의로 일관하고 있다. 검증 절차와 내용이 불투명하기 때문에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바뀌지도 않는 것이다. 막연히 대통령 중심제의 문제로만 치부하면 인사 실패, 부실 검증이 반복되는 것을 막기 힘들다.

길진균 논설위원 l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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