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의 오줌’ 같은 이 커피로 엄청난 돈을 벌 거예요

한겨레21 2023. 10. 10.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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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로 읽는 경제학]17세기 세파르디 유대인들의 선물·옵션 이용한 ‘거대한 작전’ 그린 <암스테르담의 커피상인>
최초의 암스테르담 상품거래소(1611-1835), 설계자의 이름을 따서 \'헨드릭 드 케이저 거래소\'라고도 불린다. 위키데이터

17세기 세계 무역과 금융의 중심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한복판 담 광장에 웅장한 거래소 빌딩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영국 런던 왕립거래소와 경쟁하는 세계 최초의 본격 상품거래소 중 하나입니다. 빨간 벽돌로 쌓아올린 육각형 모양의 거대한 3층 건물로, 구역별로 거래하는 상품이 나뉘어 있었습니다. 벽 쪽의 실내는 보석, 부동산, 양모, 고래기름, 담배 등을 거래하는 상인들이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천장이 없는 중정에서는 향료, 와인, 염료, 약재 등이 거래됐습니다.

벼락부자 되거나 하루 만에 파산하거나

이곳에서 거래인들은 요란스럽게 떠들면서 숨 가쁘게 매도·매수 주문을 냅니다. 네덜란드인이 가장 많았지만 여러 나라에서 온 외국인들도 이곳에서 거래했습니다. 스페인·독일·프랑스·영국 상인은 항상 있었고, 때때로 튀르크인과 인도인도 보였습니다.

상품거래소는 일반인이 흔히 머리에 떠올리는 도소매 시장이 아닙니다. 이곳에서는 거래하는 상품을 거의 볼 수 없습니다. 상인들은 향료나 소금을 자신의 창고에 보관한 채, 이곳에서는 거래 계약만 했습니다. 또 인도네시아에서 바다를 건너오는 향료를 사고팔았고, 브라질에서 아직 수확조차 안 한 사탕수수 속 설탕도 거래했습니다. 현물거래도 있었지만 오늘날 사람들도 어려워하는 금융 종목인 선물·옵션의 거래가 더 일반적이었습니다.

선물은 상품을 미래 정해진 날짜에 미리 정한 가격으로 사고팔기로 약속한 계약입니다. 옵션은 선물과 비슷하지만 조금 다릅니다. 미리 정한 가격으로 미래에 사거나(콜) 팔(풋) 수 있는 권리입니다. 조금 생소한가요? 이 정도만 알고 넘어가도 됩니다.

허위 소문을 퍼트리거나 팀을 이뤄 짜고 하는 거래도 빈번했고, 음모와 배신도 만연했습니다. 요즘 시장에서는 허위사실 유포와 통정매매, 시세조정, 내부자거래 등으로 처벌받겠지만 당시에는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는 행위였습니다. 거래소에서는 순식간에 거부가 되거나, 또 하루아침에 파산하는 일이 특별하지 않았습니다. 거래소 바로 옆에 위엄스레 서 있는 암스테르담 왕궁(당시엔 시청으로 쓰였습니다)에는 은행이 있어, 거래인들은 현금을 주고받지 않고 은행 계좌 간 이체로 결제했습니다.

거래소가 문을 열지 않는 시간에는 인근 운하나 교회 앞에 모여 정보를 교환했습니다. 담 광장으로 이어지는 바르무스 거리의 술집들은 인기가 많아, 상인들은 이곳에서 술에 취해 허세를 떨며 무용담을 나누거나 자신의 불운을 한탄했습니다.

<암스테르담의 커피상인>은 이 암스테르담 거래소를 배경으로 합니다. 푸르투갈 리스본에서 이주한 미후엘 리엔조는 거래소를 주름잡고 모두가 질투할 정도로 성공한 거래인이었지만, 1659년 대규모로 투자한 설탕 가격이 폭락하는 바람에 전 재산을 날리고 동생 다니엘의 집 지하실에 빌붙어 사는 신세입니다. 재기를 위해 여기저기서 빚내어 브랜디 위스키 선물에 투자했는데 이것도 가격이 시원찮습니다. 일주일 뒤 선물결제일이 닥치면 다시 한번 큰 타격을 입을 절체절명의 상황입니다.

처음 맛보는 시커멓고 뜨거운 액체

그때 부유하고 매혹적인 30대 중반의 과부 헤이트라위트 담하위스가 음료를 내밀며 유혹합니다. 미후엘은 처음 보는 시커멓고 뜨거운 액체의 향을 맡고 ‘악마의 오줌’ 같다며 거절합니다. 헤이트라위트는 ‘악마의 오줌 같은 이 음료로 엄청난 돈을 벌 거예요’라며 거듭 마셔보라고 권합니다. 커피입니다. 튀르크인을 통해 16세기 중반 유럽에 전래됐지만 아직 영국을 제외하면 유럽인 사이에 널리 알려지지 않은 물품입니다. 미후엘은 과연 어떤 선택을 할까요?

본래 리엔조 집안은 리스본에서 거주하던 유대인 가문이었습니다. 아라곤 왕 페르디난트 3세와 카스티야 여왕 이사벨 1세가 1492년 이슬람 왕국 그라나다를 정복하고 이베리아반도에 통일된 가톨릭 왕국을 세웠습니다. 이때부터 가톨릭 이외의 종교에 대한 탄압이 강화됐습니다. 유대교와 이슬람을 믿는 사람들은 가톨릭으로 개종하든가 왕국을 떠나든가 둘 중 하나를 강요받았습니다.

유대교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한 사람을 콘베르소(Converso)라고 하는데, 겉으로는 기독교도인 척했지만 몰래 유대교 전례에 참석하는 이들도 꽤 있었습니다. 주인공 미후엘이 그런 인물입니다. 반면 미후엘의 아버지는 추방될 것이 두려워 유대교를 완전히 버렸는데, 어이없게도 모함을 받아 가톨릭 종교재판관들의 고문을 받다 죽게 됩니다. 그 뒤 미후엘과 동생 다니엘은 종교적 관용을 찾아 암스테르담에 정착합니다. 이들처럼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 온 유대인을 ‘세파르디’라고 합니다. 반면 독일에서 이주한 가난한 유대인은 ‘투데스코’라고 구분됐습니다.

미후엘은 암스테르담에서 유대교 예배와 공부 모임에 참석하면서 모처럼 종교적 자유를 만끽합니다. 하지만 마아마드(Ma’amad)의 압박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유대교 원로 지도자인 파르나스로 구성된 마아마드는 암스테르담 세파르디 공동체 내에서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는 조직입니다. 부유한 상인이자 파르나스인 솔로몬 파리도는 유대인 공동체에서 가장 힘 있는 존재입니다. 그는 안식일을 지키지 않거나 금지된 음식을 먹는 것을 적발하는 일을 넘어서서, 사적 이익과 감정에 따라 마아마드의 권력을 휘둘렀습니다.

알론조 알페론다 역시 리스본 출신의 유대인 상인으로 미후엘의 가까운 친구입니다. 그는 투데스코 유대인에게 적선했다는 이유로 파문당했습니다. 마아마드는 가난한 투데스코가 세파르디와 함께 유대인으로 묶이면 불리할 것이라 생각하고 이들을 배척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표면적인 이유일 뿐입니다. 실제로는 파리도가 한때 소금 선물 거래에서 알페론다로부터 큰 손해를 본 적이 있어 앙갚음한 것입니다. 알페론다는 유대인 공동체에서 쫓겨난 뒤 악명 높은 대부업자로 활동하며 복수를 모색합니다.

두 번의 수익 올리는 커피 풋옵션 계획

미후엘 역시 파리도의 눈 밖에 나 있습니다. 미후엘은 암스테르담에 도착한 직후 파리도와 매우 가까웠고, 파리도의 외동딸 안토니아와 약혼했습니다. 하지만 곧 파경에 이르렀습니다. 안토니아가 자기 하녀와 미후엘이 정사를 나누는 모습을 목격했기 때문입니다. 안토니아는 먼 나라의 평범한 상인과 결혼했고, 이후 파리도는 미후엘과 사사건건 대립했습니다. 늘 미후엘에게 열등감을 느끼던 동생 다니엘은 파리도에게 굽신거리며 미후엘을 박해했고, 다니엘의 아내 한나는 미후엘을 짝사랑하면서 남편을 증오했습니다.

궁지에 몰린 미후엘은 며칠 외국의 커피시장 동향을 살피고 궁리를 거듭합니다. 이런 신비한 향과 맛, 정신을 더욱 또렷하게 하는 효과까지 고려하면 커피에 미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는 평범한 거래인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커피 수요가 늘 테니 미리 커피를 사두자’는 단순한 생각을 뛰어넘습니다.

미후엘의 계획은 이렇습니다. 커피를 대규모로 수입하고 소문내서 암스테르담 커피 가격을 폭락시킵니다. 그 전에 풋옵션을 대규모로 사들여 가격 하락에서 짭짤한 이익을 냅니다. 암스테르담에 커피 공급이 급증해 가격이 폭락했다는 소문이 유럽 각지에 퍼지면 런던, 함부르크, 리스본, 마르세유 등의 거래소에서도 가격이 하락하게 됩니다. 그때 미후엘과 작당한 각 거래소의 대리인들이 헐값에 커피를 사들입니다.

이렇게 하면 미후엘은 전 유럽의 커피를 사실상 독점할 수 있습니다. 이후 커피 공급이 부족해지면 영국에서부터 가격이 오를 것이고 전 유럽에 확산될 것입니다. 물론 이런 상황이 영원할 수는 없습니다.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더 많은 커피가 재배돼 수입되겠지만 그동안 미후엘은 독점력을 이용해 큰 이익을 실현하고 빠지면 됩니다.

미후엘의 천재적인 계획에 감탄한 헤이트라위트는 자본을 대겠다고 나서고 둘은 거대한 ‘작전’에 돌입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미후엘은 이상한 징후를 느낍니다. 자신의 숙적 파리도와 동생 다니엘이 계속 의심하면서 커피 거래에서 빠지라고 촉구합니다. 친구 알페론다의 행동도 어딘지 이상합니다. 게다가 유일한 동업자 헤이트라위트 역시 미후엘에게 뭔가를 감추고 있습니다. 운명의 시간은 다가오고 미후엘은 다시 한번 혼란에 빠집니다. 이후의 상세한 내용은 책을 읽을 분들을 위해 아껴두겠습니다. 더욱 흥미진진해진다는 것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스피노자가 유대교로부터 파문당한 이유

네덜란드에 세파르디 유대인이 대규모로 정착한 이래 암스테르담은 전세계 유대인의 역사에서 중심지가 됐습니다. 역으로 17세기 네덜란드 황금기를 견인한 무역과 금융에서 유대인의 활약은 결정적이었습니다. <암스테르담의 커피상인>은 이를 정교하게 재현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미후엘이 커피 거래에 뛰어들기 3년 전 암스테르담의 위대한 유대 철학자 스피노자가 마아마드에 의해 유대교에서 파문당한 바 있습니다. 그의 종교적 견해가 유대교 정통에 맞지 않았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지만, 스피노자가 동인도회사의 아시아 무역 독점을 비판한 것도 중요한 요인이었습니다. 그만큼 암스테르담의 유대인들은 무역과 금융에 필사적이었습니다.

이 책에서 묘사된 각종 거래 기법이 너무 전문적이라는 평도 있지만, 이 분야에 경험과 관심이 있는 분들에게는 이것이 오히려 매력으로 다가갈 것입니다. 설령 선물과 옵션에 완전히 문외한이라 하더라도 책을 즐기는 데는 별 지장이 없습니다. 책을 읽다보면 17세기 암스테르담의 거래소와 유대교 회당, 골목골목의 술집과 카페 앞을 걷는 느낌이 들 정도로 생동감 있게 내용이 펼쳐집니다. 제 글에서는 특별히 강조하지 않았지만 연애소설의 맛도 훌륭합니다. 미후엘이 헤이트라위트와 맺어질지, 또 한나와는 어떻게 될지 흥미진진하게 따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신현호 이코노미스트·<나는 감이 아니라 데이터로 말한다> 저자

#책 정보


데이비드 리스는 열네 편의 소설을 발표한 미국의 중견 작가입니다. 18세기 영국 남해회사 거품을 소재로 한 데뷔작 <종이의 음모>는 앞서 살펴봤습니다.(제1476호 ‘뉴턴, 만유인력의 법칙은 알아도 인간의 광기는 예측 못했다’ 참조) <암스테르담의 커피상인>은 두 번째 작품으로 2003년 출판돼 <뉴욕타임스> ‘주목할 책’과 뉴욕 공립도서관 ‘올해 기억할 책’에 선정됐습니다. 한국어판은 2006년 서현정의 번역으로 대교베텔스만(대교북스캔)에서 출간됐습니다.

*소설로 읽는 경제학: 일반인이 경제현상에 쉽게 다가가고 동시에 경제와 금융 종사자가 소설에 매력을 느낄 수 있도록 소설 속에서 경제를 발견하는 연재.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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