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왕설래] 모사드의 굴욕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2018년 4월 적대국 이란의 비밀 핵무기 개발을 폭로하며 핵 관련 문서 5만5000여장, CD 183개 등 0.5t가량의 자료를 공개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해외첩보기관 모사드의 비밀요원 20여명이 약 2년간 집요한 추적 끝에 그 해 3월 말 이란 테헤란의 비밀창고를 급습해 빼내 온 기밀정보였다. 모사드가 왜 미 중앙정보국(CIA), 옛 소련 KGB에 필적하는 세계 최고의 정보기관이라 불리는지 보여주는 일화다.

모사드는 신출귀몰한 정보력과 함께 암살·납치로도 정평이 나 있다. ‘살인주식회사’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닐 정도다. 당시 네타냐후 총리는 이란 핵 개발의 아버지라는 모센 파흐리자데가 책임자라며 “모두 저 이름을 기억하라”고 했다. 파흐리자데는 30개월 후 테헤란 근처에서 총격을 받고 숨졌다. 2007년부터 2012년 사이 5명의 이란 핵 과학자가 암살당했는데 그 배후로 모사드가 지목된다. 이스라엘 언론인 로넨 버그먼에 따르면 모사드는 1949년 설립 이후 70년간 최소 2700건의 암살을 실행했다.

이런 모사드가 굴욕을 당했다.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가 국경 철조망을 뚫거나 패러글라이더를 타고 침투해 민간인에 무차별 총격을 가하고 100여명의 인질까지 끌고 갔는데도 속수무책이었다. 첩보 당국은 가자지구 일대에서 하마스의 공격 예행연습 징후를 포착하고도 군 교란을 노린 수작으로 오판해 기습 가능성을 예측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 근저에는 극심한 정치혼란과 분열이 깔려 있다. 네타냐후 정권이 극우정당과 손잡고 사법부 무력화에 나서자 철저하게 정치적 중립을 지키던 모사드 등 정보기관까지 반기를 들었다. 이런 불화가 첩보역량을 약화시켜 파국적 재앙으로 이어진 것이다. 정보력으로 수백배의 적을 이겼다는 구약성서의 영웅 기드온의 후예를 자처하는 모사드에 뼈 아픈 상처가 난 것이다.

우리 역사에서도 정보 실패로 국가적 재난을 겪은 사례는 멀게는 임진왜란, 가깝게는 6·25전쟁까지 허다하다. 가뜩이나 북한은 시도 때도 없이 미사일을 쏴대고 핵 겁박까지 해댄다. 북한의 화력은 하마스에 비할 바 아니다. 모사드 실패를 반면교사 삼아 북한 도발을 막는 정보역량 구축에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주춘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