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맘으로 늘 후배 품어주셨죠"…故 김남조 시인 조문 행렬

김용래 2023. 10. 10.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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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달자 시인 "평소 부드러우셨지만 시에 대해선 엄격…'다시 써와!' 늘 기억"
맏며느리 박수길 씨 "'사랑의 시인' 어머님, 실제로도 사랑 넘치셨던 분"
김남조 시인 빈소 (서울=연합뉴스) 신현우 기자 = 10일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고 김남조 시인 빈소가 마련돼 있다. 기독교적 사랑의 세계와 윤리 의식을 담은 시로 '사랑의 시인'이라 불린 고인은 이날 오전 숙환으로 타계했다. 2023.10.10 nowwego@yna.co.kr

(서울=연합뉴스) 김용래 기자 = 10일 96세를 일기로 별세한 한국의 대표 여성 시인 김남조.

이날 저녁 서울 아산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진 빈소에는 생전에 넉넉한 어머니의 마음으로 늘 후배들을 보살피던 고인을 기억하는 문인들이 한걸음에 달려왔다.

숙명여대 학부부터 대학원 박사 과정까지 고인과 사제 간으로, 또 등단 이후에는 후배 시인으로서 60년 넘게 인연을 맺어온 신달자(80) 시인은 이날 오후 빈소가 차려지자마자 일찌감치 달려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는 기자에게 "선생님께서 어느 날인가 전화하셔서 대뜸 '달자야 사랑해'라고 하시더라"면서 "그만큼 늘 정이 깊고 사람을 좋아하시는 분이셨다"고 돌아봤다. 신 시인은 고인과의 이런 유쾌한 추억을 소재로 시를 써 올해 초 한 계간지에 발표하기도 했다.

신달자 시인은 "선생님은 참으로 신비로운 분이셨다"면서 "평소엔 참 부드러우시다가도 시에 대해서만큼은 무척 엄격하셨다"고 회고했다.

"제가 학교 다닐 때 시에 대한 욕심이 있어서 일주일에 한 편을 써오라고 하면 열 편도 써 가고 그랬거든요. 그러면 선생님은 성에 차지 않는 부분에 펜으로 쫙쫙 그으시고 '다시 써와!'라고 하시곤 했지요. 인생을 살아보니 선생님 말씀처럼 다시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더군요. 그래서 선생님의 그 엄했던 '다시'라는 말을 늘 노트에 적어서 갖고 다녔어요."

유자효 한국시인협회장은 "고인께서는 시인협회장 선배시기도 했지만, 내 개인적으로는 서울대 사범대 선배시기도 하다"면서 특히 "고인이 사대 출신 후배 문인들을 많이 챙겨주셨고 형편이 어려운 문인들을 알게 모르게 많이 도와주셨다"고 전했다.

유 회장은 "내가 고인을 한국 시단의 어머니라고 표현했는데, 문학적으로 뿐만이 아니고 실제로도 후배들에게는 어머니 같은 분이셨다"면서 "그만큼 늘 후배들을 넉넉히 품어주시고 항상 격려해주셨던 어른"이라고 했다. 시인협회는 고인의 장례를 한국시인협회장으로 치르기로 했다.

장례식장에 마련된 김남조 시인 빈소 (서울=연합뉴스) 신현우 기자 = 10일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고 김남조 시인 빈소가 마련돼 있다. 기독교적 사랑의 세계와 윤리 의식을 담은 시로 '사랑의 시인'이라 불린 고인은 이날 오전 숙환으로 타계했다. 2023.10.10 nowwego@yna.co.kr

고인은 1984년부터 이듬해까지 제24대 한국시인협회장을 역임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여성 시인으로 수많은 명시를 남긴 그였지만, 선후배 동료 문인들에게는 작품뿐만 아니라 늘 주변 사람들을 살뜰히 챙겨 주변에 항상 사람이 끊이지 않던 선배였다고 문인들은 입을 모았다.

맏며느리 박수길(59) 씨는 고인이 어떤 분이셨냐는 물음에 잠시 생각에 잠겨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그는 "어머님을 흔히 '사랑의 시인'이라고 하는데, 시뿐만이 아니라 실제로도 사랑이 굉장히 많으신 분이셨다"고 했다.

"최근까지도 어머님은 손자 손녀와 함께 차로 나들이를 하며 함께 음악을 듣곤 했어요. 노래를 좋아하시는 어머님은 또 가족들에게 자주 노래 부르기를 시키시곤 했어요. 마지막엔 맏며느리인 제게 가족의 화목을 지키고 집안을 포용하라는 말씀도 하셨고…. 항상 통찰력 빛나고 유머러스하셨던 어머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고인은 손주들에겐 일상에서도 시어를 길어 올리는 '천상 시인'이면서도 늘 자애롭고 따뜻한 할머니였다.

손자 김준민(25) 씨와 손녀 김유민(21) 씨를 고인은 각각 '기쁨이', '축복이'라는 애칭으로 불렀다고 한다.

故 김남조 시인 [구상선생기념사업회 제공. 재배포 DB 금지]

김준민 씨는 "할머니는 큰 시인이셨지만 제게는 좋은 할머니셨다"면서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계속 할머니와 지적으로, 또 감성적으로 가깝게 소통하며 성장했는데 그런 것들이 내 삶 속에 체화된 것 같다. 떠나셨지만 우리 곁을 완전히 떠나신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김유민 씨는 할머니가 일상에서 해준 말이 늘 시 같았다고 했다.

그는 "지난해 설에 할머니께서 '하늘에서 하얀 편지가 왔다. 한 꺼풀 한 꺼풀마다 다 사연이 있다'고 눈이 내린 모습을 표현하셔서 스마트폰에 적어뒀다"며 당시 메모를 기자에게 보여주기도 했다.

고인의 장남인 김녕(65) 김세중미술관장은 어떤 어머님이셨냐는 기자의 물음에 "따뜻하고 단아하고, 또 현명하신 어머니셨다"며 말을 아꼈다.

김남조 시인의 영결식과 장례미사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내 영결식장에서 오는 12일 오전 9시 열린다.

yongl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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