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어부의 탄생과 죽음… 시적인 단순함, 삶의 의미 묻다
대표작 소설 ‘아침 그리고 저녁’
먼저 떠난 친구 안내 받고 가는 저승길
늙은 어부 마지막 물음 “좋은가 그곳은?”
마침표 거의 없이 문장 연결, 단어 반복
단순한 플롯 통해 음악적 리듬감 극대화
희곡 세계 900회 공연 ‘21세기 베케트’
소설·시·에세이·동화 등 장르 넘나들어
“미니멀리스트 작가 수식어, 원치 않아”
“더운물 더요 올라이, 늙은 산파 안나가 말한다/ 거기 부엌문 앞에서 서성대지 말고 이 사람아, 그녀가 말한다/ 네네, 올라이가 말한다/ 그리고 그는 열기와 냉기가 살갗 위로 고루 퍼지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소름이 돋으며 행복한 느낌이 온몸을 훑고 지나 눈물이 되어 솟아오른다, 그리고 그는 재빨리 화덕으로 가 김이 오르는 더운물을 대야에 떠 담는다, 네 여기 더운물 가져갑니다, 올라이는 생각한다”
2부에선 시간이 흘러 어부 요한네스가 병든 노인의 모습이 펼쳐진다. 이미 사랑하는 아내 에르나도, 각별했던 친구 페테르 모두 그의 곁을 떠나고 없다. 그는 썰렁한 방에 혼자 일어나 커피를 마시는 등 여느 때와 다름없는 하루를 시작한다. 그런데 평소 같기도 하고 전혀 다른 것 같기도 하다.
요한네스는 바닷가로 나갔다가 머리가 하얗게 센 오랜 친구 페테르를 만난다. 페테르와 함께 같이 배를 타고 가서 낚시를 하고, 배에서 내려선 젊은 시절 마음에 뒀던 노처녀 안나 페테르센을 만나 산책을 한다. 집으로 돌아오자 아내 에르나가 그를 위해 커피를 내놓는다. 요한네스는 막내딸 싱네를 따라가다가 비로소 자신이 죽었다는 걸 깨닫게 된다. 친구 페테르가 그를 안내한다.
“열두 살인가 열세 살이었을 때 제가 쓴 첫 번째 텍스트는 노래 가사였습니다. 시와 작은 이야기를 썼어요.” 시골길을 따라서 파란색 자전거의 페달을 힘차게 밟고 아빠와 함께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낚싯줄을 힘차게 던지던 소년은, 12살 무렵부터 시와 작은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글쓰기는 소년에게 일종의 안식처였고 피난처였다고, 그는 ‘뉴요커’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학교를 위해서가 아닌 제 자신을 위해 글을 쓸 때, 굉장히 사적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저는 머물고 싶은 곳을 찾았지요.”
1959년 노르웨이 서부 해안도시 헤우게순에서 태어나 하르당게르표르의 작은 마을에서 자란 욘 포세는 1983년 장편소설 ‘빨강, 검정’을 발표하면서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보트하우스’(홍재웅 옮김, 새움), ‘3부작’(홍재웅 옮김, 새움), ‘멜랑콜리아’(손화수 옮김, 민음사), ‘새로운 이름 셉톨로지’ 등의 소설을 발표했다.
1990년대 초반 전업으로 글을 썼다. 하지만 생계를 이어가는 건 쉽지 않았고, 결국 파산했다. 마침 이때 희곡 집필 의뢰를 받았다. 1994년 해변 외딴집에서 고독을 추구하는 남자와 여자의 이야기를 담은 첫 희곡 ‘그리고 우리는 결코 헤어지지 않으리라’를 발표해 무대에 올렸다. 이후 ‘누군가 올 거야’, ‘밤은 노래한다’, ‘어느 여름날’, ‘가을날의 꿈’ 등 많은 희곡을 발표했다.
특히 1998년 희곡 ‘누군가 올 거야’가 프랑스에서 초연된 이후 2000년부터 독일에서 그의 작품이 지속적으로 공연되면서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그의 작품들은 전 세계 무대에 900회 이상 공연됐다. ‘인형의 집’을 쓴 헨리크 입센 다음으로 많이 무대에 올렸다.
그의 작품 속의 인물과 사건, 배경은 비교적 단순하고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플롯 역시 복잡하지 않다. 대사나 수사 등은 최소한으로 사용한다. 작품에 불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과감히 생략돼 있다. 작품에 침묵과 여백이 두드러진다. 반면 단어나 어휘를 반복적으로 사용하거나, 유사한 어구를 지속적으로 사용한다. 이를 통해 의미나 주제의 집중, 분절과 전이, 리듬과 음악감을 부여했다. 작품에서 음악성이 도드라지는 이유일 것이다.
작품 두 개를 국내에서 번역한 홍재웅은 “본질을 나타내는 단순성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미니멀리즘은 포세의 작품이 갖는 두드러진 특징”이라고 분석했다. 즉, 불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인물, 사건, 배경, 플롯, 문장 등을 과감히 생략한 반면, 강조하고 싶은 것이나 본질적인 부분은 반복 집중하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는 것이다. 다만, 그 스스로는 이 같은 규정에 만족하지 않는다고, ‘The Los Angeles Review of Books’ 인터뷰에서 밝혔다.
“저는 포스트모더니스트나 미니멀리스트 등 많은 낙인을 받았고 ‘느린 산문’의 작가라고 낙인찍혔습니다. 저는 제 자신을 아무것으로 부르고 싶지 않습니다. 너무 환원주의적이에요. 어떤 면에서 저는 미니멀리스트이고, 또 다른 면에서는 포스트모더니스트입니다. 저는 자크 데리다의 영향을 받았어요. 그러니까 꼭 틀린 말은 아니지만, 제 글에서는 그런 개념을 절대로 그렇구나, 하는 식으로 쓸 수는 없을 것 같아요.”
‘21세기 베케트’라고 불린 포세는 희곡 외에도 소설과 시, 에세이, 아동문학, 번역까지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다채로운 글쓰기를 이어왔다. 그의 희곡과 소설, 시, 에세이 등은 전 세계 50여 개국에서 번역 출간됐다. 국내에서도 희곡집 ‘가을날의 꿈 외’(정민영 옮김, 지만지드라마), ‘이름/기타맨’(정민영 옮김, 지만지드라마), 소설 ‘아침 그리고 저녁’, ‘3부작’, ‘보트하우스’, ‘저 사람은 알레스’(정민영 옮김, 지만지), 동화 ‘오누이’(아이들판) 등 적지 않은 작품이 번역 출간됐다.
2012년 가톨릭으로 개종하고 술을 끊은 그는, 현재 오스트리아 빈 외곽의 작은 마을에서 슬로바키아 출신의 두 번째 아내와 살고 있다. 술을 끊으면서 글쓰기 습관도 바뀌었다. ‘올빼미족’이었던 그는 이제 초저녁에 잠자리에 들어 새벽 4, 5시쯤 일어난 뒤 오전에만 글을 쓴다. 겉치레는 벗어버리고, 순수와 본질로, 소리와 리듬 속으로.
“이 아 누른다 오우 모든 것이 에 그것 에 고요한 물 에 아 우 아 그리고 거친 고함소리와 목소리 에 네 아 아 엔 아 에 아 그래 아 그러고 나서 에 빛 위로 사라져 이 멀리 사라져 모든 것은 다른 어딘가에 있고 아 아 더 이상 여기 없는데 솨솨거리며 다시 윙윙 어떤 소리 뭔가 어떤 것 안으로…”(‘아침 그리고 저녁’ 중)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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