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 급등에 출렁이는 주가…건전성 흔들릴 확률은 낮다[윤지호의 투자, 함께 고민하시죠]
주가가 급락했다. ‘살 걸 vs 팔 걸’하는 두 가지 감정적 편향이 우리를 유혹한다. 기업은 그대로인데 주가가 내려왔으니 매수기회로 보이기도 하지만, 혹시 내가 모르는 큰 위기가 다가오고 있어 주가가 급락한 것 아닐까하는 의구심도 커진다. 금융이 실물을 지배하는 시대이다. 금융기관이 흔들릴 때, 위기가 출현한다. 가파른 금리 상승이 금융기관의 건전성을 흔들 수 있을까? 그 가늠자는 신용위험의 출현 여부에 있다.
이미 고금리와 경기 부진,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등의 여파로 국내 금융기관의 자산건전성은 악화되고 있다. 특히 저축은행, 캐피털사(여신전문금융회사)와 같은 2금융권의 경우 대출채권의 부실과 연체가 크게 증가했다. 부동산 PF를 가장 적극적으로 취급한 증권사도 상황은 좋지 않다. 지난달 정부는 PF 부실을 막기 위해 자금을 대고, 보증을 늘리는 대책을 내놨지만, 여전히 금융기관이 갖고 있는 부실 자산은 신용위기를 터트리는 뇌관이 될 수 있다. 해외 금융권 역시 고금리의 부담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완만하게 금리가 상승하면 금융기관의 운용금리와 대출금리가 상승하기 때문에 이자(운용)이익이 증가하고 수익성이 개선되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금리 상승이 가파르면 상황은 급변한다. 일단 부실(연체)이 증가하고, 무엇보다 보유하고 있는 채권에서 대규모 손실이 발생하게 된다. 바로 ‘미실현 손실’ 위험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자산으로 간주되는 미국 국채 10년물 금리가 4.5%를 넘어 5%에 근접하고 있다. 16년 만에 최고 수준이다. 현재보다 낮은 금리에서 국채를 매입해 보유한 금융기관 입장에서는 당장 채권을 처분하지 않더라도 평가손실이 발생하게 된다. 혹은 만기까지 해당 채권을 보유할 목적으로 소유한 경우 회계적인 손실은 인식하지 않지만 실제로는 손실을 떠안고 있는 상태로 볼 수 있다.
이 두 가지 경우를 통칭해서 미실현 손실(Unrealized Loss)이 발생했다고 한다. 아직 실현되지는 않았지만 실질적으로는 손실이 발생한 상태라는 뜻이다. 향후 금리가 하락하면 미실현 손실은 다시 감소할 수 있으나 고금리 상황이 장기간 이어지거나 금리가 추가로 상승한다면 미실현 손실의 규모는 더욱 커지게 된다. 또한 어쩔 수 없이 보유채권을 처분해야 할 상황에 직면할 경우 미실현 손실은 실제로 실현되어(realized) 금융회사는 일시에 대규모 손실을 인식해야 한다.
대표적인 경우가 올해 초 금융시장을 혼란에 빠뜨렸던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사태이다. 당시 SVB가 예금인출(뱅크런) 요구에 직면하자 미실현 손실이 발생한 국채를 매도하는 과정에서 대규모 손실이 실현되었고, 이것이 미국 중소형 은행들의 연쇄적인 유동성 위험과 파산의 도화선으로 작용했다. 이후 미 연준과 금융당국이 일련의 유동성 공급 프로그램(BTFP, 재할인창구)을 가동하고 부실한 중소형 은행들이 JP모건 등 대형은행에 인수되면서 사태가 일단락됐다. 현재 뱅크오브아메리카 등 미국 대형은행들은 보유자산이 다변화되어 있고 유동성비율, 자본비율 등 재무지표가 우수하다. 미실현 손실을 당장 인식할 가능성이 작고 평가손실이 발생한다고 해도 건전성을 위협할 수준은 아니다.
하지만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고 재무지표가 열위에 있는 중소형 은행들은 고금리의 여파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부실 노출의 위험이 큰 데다 유동성 여건이 지속 악화될 경우 SVB와 마찬가지로 미실현 손실이 강제로 실현될 개연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미 금융시장이 한 차례 홍역을 치른 뒤여서 올해 초 발생한 미국 중소형 은행의 뱅크런 위기가 반복될 가능성은 낮다. 그렇지만 당시보다 더 높아진 금리수준에서 미국 국채의 미실현 손실, 대출채권의 부실화 가능성, 상업용 부동산 이슈 등 미국 금융권 전반의 운용자산 리스크가 높아진 것은 분명하다. 글로벌 금융회사들의 건전성 이슈에 대해 보다 면밀한 모니터링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사실도 확실하다. 2009년 금융위기를 거치며, 각국의 중앙은행이나 정책기관들의 위기 감지 능력은 과거보다 높아졌다. 미실현 손실이 커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위기를 전제로 한 대응은 성급하다. 시스템 위기를 막기 위한 다양한 안전장치가 마련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보강되고 있다. 이제 시간과의 싸움이 남아있을 뿐이다.
윤지호 이베스트투자증권 리테일사업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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