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런 車 만들어 한국에 팔았나” 후회하는 혼다?…그래서 더 끌린다 [카슐랭]
겉보다 속이 더 알찬 ‘아빠차’
안보이는 곳에 투자하는 혼다
혼다 창업자인 혼다 소이치로는 경영보다 기술을 먼저 챙겼다. 이윤을 극대화하기 보다는 기술 개발에 이윤을 투자해 기술 경쟁력을 강화했다.
이윤보다 기술을 우선시하는 전략은 세계 최대 자동차 브랜드 격전장인 미국에서 성공한 자동차브랜드로 자리잡게 했다.
기술 개발을 위해 돈이 많이 드는 포뮬러1, 카트레이스, 인디500 등 모터스포츠에도 뛰어들었다. 이 같은 노력으로 그냥 혼다가 아닌 ‘기술의 혼다’가 됐다.
완전변경(풀체인지) 모델을 내놓을 때도 파격과 혁신보다는 검증된 기존 모델의 디자인을 ‘개선’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모노즈쿠리’로 대표되는 일본 제조업 전통과 장인정신의 핵심인 ‘가이센’(改善, KAIZEN)을 중요하게 여겨서다.
그 결과 혼다 차량은 내구성이 좋아 품질로 속 썩이는 일이 적다는 평가를 받게 됐다. 고장없이 너무 오래 타다보니 지겨움이 짜증으로 이어져 바꾼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혼다 입장에서는 판매나 애프터서비스로 이득을 볼 기회가 적어진다. “왜 이렇게 만들었을까”라며 후회할 수도 있다. 대신 소비자 입장에서는 ‘무탈한 친구’와 같은 기분을 맛볼 수 있다.
혼다 CR-V는 국내 자동차시장에서 수입차 대중화를 이끌었다. 2004년 국내 출시 이후 2005년부터 2008년까지 4년 연속 수입 SUV ‘톱3’를 기록하고 2007년에는 1위를 차지했다.
인기 비결은 합리적 가격, 신뢰성 있는 파워트레인, 무난한 디자인, 넓은 공간과 다목적성 등이다. 오프로드는 거의 가지 않고 포장도로를 달리는 시대 흐름에 가장 적합하게 진화한 ‘승용 감각의 SUV’라는 점도 한몫했다.
권불십년. 수입 SUV 대세가 폭스바겐 티구안을 거처 메르세데스-벤츠, BMW, 아우디 등 프리미엄 독일 브랜드의 SUV로 넘어가자 CR-V는 베스트셀링카 자리에서 내려왔다.
자신감을 되찾은 혼다코리아는 지난 4월 6년만에 완전변경된 올뉴 CR-V 터보 가솔린 모델을 가져왔다.
혼다는 올들어 충전 고통, 화재, 보조금 축소 등으로 전기차 대세가 주춤하고 HEV가 다시 가장 현실적인 친환경차로 각광받자 올뉴 CR-V 하이브리드도 투입했다.
부분변경 때도 파격을 시도할 때가 많은 국산차 기준으로 살펴보면 올뉴 CR-V는 완전변경보다는 부분변경에 가깝다.
얼핏 보면 개선에 초점을 맞춰 기존 모델의 유전자(DNA)를 상당부분 계승한 게 눈에 띈다.
하지만 꼼꼼히 살펴보면 개선을 넘어 혁신을 추구했다. 혼다 입장에서는 파격으로 부를 수준이다.
앞모습은 완전변경에 어울리게 달라졌다. 헤드램프는 더 날렵하고 날카로워졌다. 프런트 그릴은 더 커졌다.
가솔린 모델보다 역동적인 패턴을 적용한 그릴의 중앙 상단부에는 라이다와 레이더를 넣은 커다란 혼다 로고가 자리잡았다.
앞으로 확장하고 돌출된 보닛 앞쪽과 헤드램프에는 굵은 크롬 테두리도 채택했다. 범퍼 좌우에도 테두리를 크롬으로 장식한 사각형 가니시를 적용했다.
하이브리드는 ‘정숙’을 강조하기 위해 감추는 미덕을 적용하는 일반적 하이브리드와 달리 대놓고 드러냈다.
A필러(앞 유리창과 앞문 사이에 비스듬한 기둥) 델타 커버에 부착됐던 사이드미러는 도어 부분으로 내려왔다.
와이퍼에는 워셔액 분출구를 넣었다. 워셔액이 바람에 이리저리 흩뿌려지는 현상을 줄여주면서 낭비도 막아준다.
한눈에 표시나는 곳보다 보이지 않는 곳에 투자한 셈이다.
19인치 블랙 알로이 휠, 블랙 루프레일 등 하이브리드 전용 디자인으로 고급스러우면서도 스포티한 매력도 덧붙였다.
뒷모습을 보면 한눈에 CR-V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버티컬 리어 램프는 ‘낫’ 형태로 기존 시그니처 디자인을 계승했다.
대신 두께를 줄이고 날을 세워 트렁크 리드 쪽으로 파고들게 다듬었다. 시인성이 뛰어난 콤비네이션 램프도 채택했다. 크롬 테두리를 적용한 듀얼 머플러 팁 중 왼쪽은 장식이다.
가솔린 터보 모델이 크롬 사용을 줄이고 머플러 팁을 감춰 단정함을 추구했다면 하이브리드 모델은 오히려 튀는 매력을 발산한다.
청청함을 알리기 위해 단정함을 추구했던 기존 하이브리드 모델과 달리 달리는 맛과 역동성을 추구했다는 상징적 표현이다.
기존 모델보다 각도를 세운 직사각형 글라스, 직선 위주의 수평 레이아웃, A필러에서 도어 부분으로 내려온 사이드미러 등으로 시야는 더 넓어졌다. 이미지는 깔끔해졌다.
송풍구가 자리잡은 센터페시아 중앙에는 벌집모양의 허니콤 패턴을 적용했다. 계기판과 디스플레이는 터치 패널과 물리 버튼을 통해 디지털과 아날로그 조화를 추구하면서 조작 편의성도 향상시켰다.
애플 카플레이 및 안드로이드 오토 유·무선 연결, 충전 속도가 2~3배 빨라진 무선 충전 시스템 기능도 갖췄다.
공간 활용성도 더 좋아졌다. 휠베이스가 더 길어지면서 2열 공간이 넓어졌다. 2열 레그룸은 기존보다 15mm 확장됐다. 2열 시트는 8단계로 리클라이닝할 수 있다. 센터터널도 기존보다 낮아졌다. 성인 3명이 충분히 앉을 수 있다.
2열 도어는 90도로 열린다. 2열에 타고 내리기 쉽고, 카시트를 설치할 때도 편리하다.
2열 시트를 접으면 2166L까지 확장된다. 오토캠핑용으로 충분하고 차박(차+숙박)도 가능하다.
핸즈프리 기능을 포함한 파워 테일게이트는 양손에 짐을 들었을 때 제 역할을 톡톡히 한다.
대용량 서브 우퍼를 포함한 12개 고성능 스피커로 구성된 보스 프리미엄 오디오도 채택했다.
안전성과 운전 편의성은 뛰어나다. 혼다의 독자적인 안전 차체 설계 기술인 ACE(Advanced Compatibility Engineering) 바디를 적용하고 고강성 설계로 안전성을 향상했다.
센서와 카메라를 통해 외부상황을 인지한 뒤 사고를 예방해주는 운전자 주행 보조 시스템 ‘혼다 센싱’ 기능도 강화했다.
트래픽 잼 어시스트(TJA), 저속 브레이크 컨트롤(LSBC)를 신규 적용했다. 자동 감응식 정속 주행(ACC)과 차선 유지 보조(LKAS) 기능도 향상했다.
리어 사이드, 프런트 무릎 부위 등에 10개의 에어백을 적용했다. 사선 충돌 때 탑승자를 더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게 프런트 에어백 형상도 개선했다.
그 결과, 까다롭기로 유명한 미국 충돌안전 테스트에서도 최고 수준의 안전성을 인정받았다. 미국 고속도로안전보험협회(IIHS) 충돌평가에서 최고 등급인 ‘톱 세이프티 픽 플러스’(TSP+)를 받았다.
아쉬운 점도 있다. 9인치 디스플레이다. 디스플레이는 요즘 10인치 이상이 대세가 되고 있다. 화질도 아쉽다. 시트에도 열선 기능은 있지만 국내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통풍 기능은 없다.
엔진은 최고출력이 147마력, 최대토크가 18.6kg∙m다. 모터 최고출력은 184마력, 최대토크는 34kg.m다. 복합연비는 14km/ℓ다.
운전시야는 넓은 편이다. 드라이브 모드는 노멀, 이콘(ECON), 스노, 스포츠 4가지로 구성됐다.
EV모드에서는 전기차 부럽지 않다. 조용하면서 부드럽게 움직인다. 노멀 모드에서도 소음 및 진동 차단 성능이 우수하다. 기존 모델보다 확실히 정숙해졌다. 혼다 최초로 엔진 전체를 감싼 우레탄 커버를 적용하고 소음진동 흡음재를 넣은 효과다.
눈에 보이는 곳보다 보이지 않는 곳에 또 돈을 썼다.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스포츠 모드를 선택하고 가속페달을 밟자마자 모터에 선봉을 내줬던 엔진이 기다렸다는 듯이 목소리를 키우며 실력을 뽐낸다.
4륜구동이 제공하는 안정감도 뛰어나다. 고속 구간이나 코너 구간에서 불안하지 않고 오히려 더 속도를 내고 싶은 욕구를 자극한다.
변속레버에 있는 ‘B’ 모드를 사용하면 전기차처럼 감속 제어할 수 있다. 브레이크를 밟지 않아도 속도를 줄일 수 있다. 내리막길이나 지그재그 구간에서 사용하면 원 페달 드라이빙재미를 느낄 수 있다.
올뉴 CR-V는 ‘기술의 혼다’가 만든 SUV답게 기본기가 탄탄하다. 무엇보다 조용함이 미덕이었던 하이브리드에 재미와 역동성을 부여했다. 가격은 5590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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