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안 돼”와 “하지 마”를 회피하는 부모들
초등학교 4학년 때 잠시 틱증상을 겪었다. 물건을 만질 때, 예를 들어 전기 스위치를 켜거나 끌 때도 반드시 세 번을 두드려야 마음이 놓였다. 스스로도 이상 증세를 감지했지만 원인은 성인이 되어서야 깨달았다. 엄마는 늘 학기 초가 아닌 종강날 학교를 찾아가 답례 인사를 하셨는데 담임은 원하는 게 많은 사람이었다. 욕구불만에 찬 교사의 교묘한 차별과 냉기가 아이에겐 불안감의 원천이 됐던 것 같다.
얼마 전 유사한 방송 사연을 듣다가 그 시절 이야기가 나왔는데, 학부모들 사이에 소문난 사람이어서 엄마도 알고 계셨다고 한다. “발달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나이에 그런 일을 겪어 더 자신감 있게 성장하지 못한 것 같다”는 나의 반농담 반진담 하소연에 엄마는 태연한 척 답하셨다. “그런 위축된 경험도 있어서 이만큼이나마 사람이 된 거 아니겠니?” 어이없지만 웃음이 나왔다. 겪지 않는 게 좋았을 일이고, 그 일이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는 데 도움이 되었는지 해악이 되었는지도 알 수 없다. 무한한 인과로 형성된 한 사람의 인생을 몇 가지 특정 원인으로 귀결시키는 것은 때로 불필요한 자기 연민이나 영웅화의 오류를 가져올 뿐이다.
분명한 것은 자녀의 과도한 고난을 막아주는 것 이상으로 적정선에서 지켜보는 것도 부모의 역할이란 점이다. 삶이란 죽는 순간까지 역경을 극복해가는 과정이라서, 오히려 무균실 같은 환경에서 자랄수록 무력해지거나 타인에게 고통을 주는 사람이 되기 쉽다. 영화 <인사이드 아웃>은 기쁨만이 아니라 슬픔도, 분노도, 자신감도, 위축감도 성장에 필요한 요소임을 알려주기에 명작이라 불린다.
언제부터인가 내 아이에게 “안 돼”나 “하지 마” 같은 부정어를 결코 쓰지 않는다는 부모들이 많아졌다. 자존감을 중시하는 육아 전문가들의 지침을 잘못 이해한 경우다. 나쁜 행동을 제어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강압적·폭력적으로 표현하지 말라는 의미고, 훈육 이전에 부모의 감정부터 다스리라는 의미다. 무수한 욕구와 가치관이 대립·충돌하는 사회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은 쟁취해야 하고 이해받아야 된다고 믿게 만드는 것은 자존감 육성이 아닌 망상증이나 반사회성 인격자 양성에 가깝다.
해도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을 분명히 가르치는 것. 서럽고 힘든 것도 때로 인내하게 하는 법. 내가 잘못하지 않아도 나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 수 있고,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극복할지를 깨닫게 하는 것. 나의 불편과 불안을 피하기 위해 옳지 않은 것과 타협하거나 타인에게 해악을 끼치면 안 된다는 공생의 원칙과 역지사지를 가르치지 않는 교육은 교육이 아니다.
자녀들이 겪는 어려움 앞에서 “내가 힘이 없어 미안하다”는 표현도 고민이 필요하다. 부지불식간에 “힘이 있다면, 혹은 힘 있는 이들과 친하다면 약자를 능욕할 수 있다”는 그릇된 힘의 욕망을 유도할 수 있어서다. 크고 작은 권력의 횡포 속 소중한 존재의 고난을 지켜보는 분노. 핍박받는 이들이 꿈꾸는 통쾌한 복수의 상상. 자신을 보호할 힘의 욕구는 정당하지만, 사회에서 일어나는 끝없는 갑질의 순환은 스스로 힘에 굴복하고 과시하고 행사하려는 평범한 다수에 의한 것이어서다. 힘은 있거나 없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잘못 쓸 때 미안한 것이어야 한다.
‘공감’이라는 아름다운 언어는 자녀들에게 싫은 소리를 하며 겪어내야 하는 갈등과 긴장감을 회피하고픈 부모들의 속마음을 숨기기에 적절한 장소다. 내 아이는 무조건 지지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일수록 다른 이에겐 엄격하고 가혹한 모습을 보이는 게 그 증거다. 진심으로 자녀를 사랑한다면, 내 아이의 미래만이 아니라 나만 귀하고 타인의 입장을 헤아릴 줄 모르는 아이들이 성장해 다투는 세상을 상상해보는 게 더욱 효과적일 것이다. 부정어를 부정하면 부정사회가 가속될 뿐이다.
박선화 한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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