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두율 칼럼] 정치인과 나르시시즘
최근 정치인과 나르시시즘에 대한 논의가 두드러지게 많다. 물론 화려한 등장과 불명예스러운 퇴장에 이어 다시 대권에 도전하는 트럼프,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을 결단한 ‘러시아의 새로운 차르’ 푸틴을 주로 염두에 두고 있다. 브렉시트 모험을 단행했던 영국의 전 총리 보리스 존슨, 이탈리아의 전 총리 베를루스코니, 리비아의 카다피, 절대권력을 행사하는 튀르키예의 에르도안도 이와 관련해 종종 논의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 최근에 발표된 일련의 경험적 연구도 일반인과 비교해 정치인에게는 특히 자기도취적인 인격장애가 더 심각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물론 이런 판단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항상 있었기에 실증적인 연구를 떠나서도 정치인에 대한 일반적으로 갖는 부정적인 정서는 특별한 현상은 아니다.
막스 베버는 ‘정치를 추구하는 자는 권력을 좇는다. 권력을 이상적인 또는 이기적인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여기든지, 아니면 권력이 주는 우월감을 즐기기 위해서 추구하든지 간에 그렇다’고 <직업으로서의 정치>에서 지적했다. 자기도취적인 우월감이 정치의 근거를 제기하는 동기의 하나라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자기애(自己愛)로 번역되는 나르시시즘은 그리스 신화로부터 유래한다. 미소년 나르시스는 많은 애절한 구애를 물리치고 연못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사랑해서 입맞춤하려다 그것이 자신의 반사된 모습인 것을 알고 슬픔에 빠져 자살했다. 바로 그 자리에 핀 꽃이 수선화였다는 내용이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나르시시즘은 주로 앙드레 지드, 폴 발레리, 헤르만 헤세 등의 문학작품을 통해 다시 조명되었고,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서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더불어 중요한 연구대상이 되었다. 1950년대 중반 프로이트의 심층 심리분석에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비판을 접목한 허버트 마르쿠제와 에리히 프롬에 이어 1970년대의 미국사회를 분석한 역사학자 크리스토퍼 래시(1932~1994)의 <나르시시즘의 문화>(1979)도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인 병리 현상으로서 나르시시즘을 분석했다.
나르시시즘은 심리적·사회적·문화적 관점에 따라 각각 방점이 조금씩 다르게 찍혀있지만, 자신을 관찰하는 주위의 사람보다 자신은 더 중요하고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믿는 지나친 자기애나 자기도취를 뜻한다. 따라서 자긍심과 자신감의 결손도 문제지만 이와 반대로 자기도취적인 인격장애는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이어서 자신이 속한 집단생활에 부정적으로 작용한다.
극우 득세 정치적 나르시스와 연관
이와 관련해서 개발된 나르시시즘 성격 목록(NPI)도 있는데 정상인지, 임상의 낮은 단계에 와 있는지, 아니면 자아도취의 경계에 서 있는지를 측정하는 목록도 있다. 최근에는 인터넷에 이와 관련한 자가진단을 해보는 테스트를 담은 사이트도 많이 나돈다. 이 목록이나 테스트에 등장하는 모든 문항은 결국 과도한 자기애 때문에 타인을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의 결손, 공감력의 부족, 허영심과 공허함, 권력에 대한 끊임없는 욕구와 같은 병리적 현상을 추적하고 있다.
예를 들면 자신의 뛰어난 능력과 재주가 입증되지 않았는데도 ①끝없는 성공, 권력, 존경, 아름다움, 이상적인 사랑과 환상에 대한 강한 집착 ②자신은 특별한 존재이기에 다른 명망 있는 인물들만이 이를 인정할 수 있고, 이들만이 자신의 교류대상이 될 수 있다는 믿음 ③열광적이고 과도한 지지의 요구 ④특별한 대우를 기대하고 이러한 기대는 당연히 이루어진다는 생각 ⑤다른 사람의 감정과 욕구를 이해하고 이들과 일체감을 갖는 감정 이입의 결핍 ⑥다른 사람에 대한 빈번한 질투와 시기와 함께 다른 사람이 자기를 질투하고 시기한다는 믿음 ⑦거만하고 건방진 행동양식을 미국 심리학협회(APA)는 자아도취적인 인격장애의 판단 근거로 삼고 있다.
이 같은 성향이 있는 사람 대부분이 반드시 병적이지는 않지만, 자기애가 지나치면 자신과 사회에도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특히 정치와 경제분야의 이른바 지도급 인사 가운데 상대적으로 흔한 현상이란 경험적 연구는 이미 여러 나라에서 발표됐다. 정치인들의 권력 추구와 지배욕이 충족되었을 때는 이러한 자아도취적인 성격장애가 오히려 성공의 열쇠처럼 보이지만 이에 대한 사회적 반향이 사라질 때는 자신들이 흡사 나락으로 떨어진 것처럼 여기고 자학적인 행동도 보여준다.
자기도취적인 정치인들은 언제나 그들이 설 무대와 공적인 행사를 열심히 찾고 사회적 관계망에도 적극 참여한다. 이들은 정치적 갈등을 의도적으로 부추기는 말과 행동도 불사하며, 자신들의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항상 믿고 모든 수단을 동원해 정치적인 경쟁자들과 싸운다. 특히 동지나 아니면 적으로 나누어 보는 이들의 사고와 행동은 중간지대를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따라서 이들은 이른바 ‘열성 팬’으로 불리는 지지세력의 열광적인 목소리만 듣지 비판의 소리에는 귀를 기울이지도 않는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 최근 발표된 한 연구는 지금 독일에서 급격한 상승세를 타는 극우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의 지지자들에게 이런 나르시시즘 경향이 짙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배경에는 큰 전환기를 맞는 정치와 경제에 적극 대응할 수 있는 강력한 정치적 지도자를 요구하는 정서와 특히 외국인 이주자와 난민에 대한 적대적 감정이 자리 잡고 있다. 지금 지구촌 여러 곳에서 보이는 극우 포퓰리즘의 득세 현상은 이 같은 정치적 나르시시즘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정치적 나르시시즘 치유는 불가능
그러면 정치 또는 정치인과 나르시시즘의 한국적 모습은 과연 어떤가. 이를 나름대로 보여주는 것이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에 관한 여러 여론조사의 결과다. 여론조사 기관 사이에도 들쑥날쑥한 차이도 있고, 또 지역과 나이, 이념적 성향에 따른 여론의 흐름은 그런 조사가 없이도 대충 예견할 수도 있다.
여러 여론조사에서 국정운영의 신뢰도를 묻는 문항 가운데 하나는 정치인과 나르시시즘에 대해서 나름대로 중요한 시사를 하고 있다. 윤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그를 지지하는 이유로 취임사에서 강조했던 공정과 상식보다는 오히려 그의 결단력을 훨씬 높게 평가한다. 그를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은 그가 독단적이고 일방적이며 경험과 능력도 부족하기에 그를 반대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자아도취적인 인격장애의 여러 표징을 생각하면 한국적 정치와 나르시시즘의 관계를 나름대로 이해할 수 있다. 즉 지지자들이 결단력이 있다는 평가를, 반대자들은 독단적이고 일방적이며 능력도 부족한데도 자신을 스스로 과대평가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한다는 점에서 윤 대통령과 그의 지지자들이 정치적 나르시시즘에 빠져 있다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정치문화적 차이에 따라 나라마다 정치인의 나르시시즘적 경향은 종종 달리 나타난다. 가령 약간의 희극적 요소까지 가미된 트럼프, 베를루스코니, 카다피의 나르시시즘과 냉정한 계산이 숨어 있는 듯한 푸틴의 그것이 풍기는 분위기는 다르다. 윤 대통령의 나르시시즘에는 그의 성장 과정과 오랜 검사생활 때문인지는 몰라도 적과 동지의 분명한 구별과 무딘 감정이입이 특별히 드러난다.
그러면 이런 정치적 나르시시즘의 치유는 가능한가. 프로이트의 견해를 따른다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달리 나르시시즘의 치유는 불가능하다. 억눌렸던 자아를 해방하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치유보다 이미 밖으로 향한 강한 자아를 통제하거나 억제하는 치유가 훨씬 어렵기 때문이다. 강한 자아를 밑천으로 해서 싸우는 정치판에서 나르시시즘의 치유가 비록 불가능하지만 적어도 이런 부정적인 요소가 정치적 공동체의 갈등을 더 악화시키는 것을 막는 방안에 대해서는 많은 논의가 있다.
자아도취에 빠진 최고의 권력자가 자기비판도 배울 수 있는 거울을 마련하는 제도와 이의 운영 방식에 대해선 전문가들 사이에 많은 의견이 있다. 하지만 용산 ‘대통령실’에 그런 역할을 주문해야만 한다면 아직은 희망사항에 불과하다. 비록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깨어 있는 민주 시민으로 성장하게 하는, 항시적인 정치교육만이 답이다.
송두율 전 독일 뮌스터대 사회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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