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붐 뒷받침한 현대건설 외자과장…이내흔 현대HT 회장 별세(종합)
(서울=연합뉴스) 이충원 기자 = 고 정주영(1915∼2001)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최측근으로 이명박(MB) 전 대통령과 함께 현대건설을 키웠고, 야구·배구·역도 등 스포츠 여러 종목에도 족적을 남긴 이내흔(李來炘) 현대HT 회장이 10일 오전 4시께 세상을 떠났다고 유족이 전했다. 향년 87세.
충남 논산에서 태어난 고인은 대전고, 성균관대 법학과를 졸업했다. 몇차례 고시에 낙방한 뒤 1969∼1970년 대통령 비서실 총무과 근무를 거쳐 1970년 9월 현대건설로 옮겼고, 만 6년 만인 1976년 9월 이사로 초고속 승진했다.
고인이 재능을 발휘한 건 자재, 특히 해외 물자를 들여오고 내보내는 외자 분야였다. 1997년 12월 경향신문에 연재한 회고록 '나의 젊음, 나의 사랑' 시리즈에 따르면 입사 직후 무역부에서 근무할 때 해외에서 들어오고 나가는 자재가 세관에 묶여서 몇년씩 방치되는 것을 알고 이 문제를 해결하자 정주영 회장이 1971년 "자네, 나랑 같이 울산에 가서 일하는 게 어떤가"라며 울산조선소(이후의 현대중공업) 건설 현장 근무를 지시했다. 여기서도 세관에 묶인 자재 문제를 법인(기업) 명의가 아니라 개인 '정주영' 명의를 사용하는 방법으로 해결, 정 회장의 전폭적인 신임을 얻었다. 입사 8개월만에 자재과장(이후 외자과장)이 된 고인은 정 회장 밑에서 외자 업무를 혼자 담당하다시피 했고, 과장 시절부터 중역회의에 참석했다.
1973년 제1차 석유파동 후 중동으로 눈을 돌린 현대건설이 사우디 주베일 망망대해에 30만톤급 유조선 4척이 동시에 정박할 수 있는 '해상유조선 정박 시설'(공사대금 9억6천만 달러)을 만들 때에도 고인의 판단이 빛을 발했다. 울산조선소에서 사우디까지 빌딩 10층 높이의 철구조물을 실어나르던 터그보트가 필리핀 부근에서 폭풍에 휘말리자 정 회장에게 보고도 없이 "당장 (터그보트와 구조물을 연결한 줄을) 끊어버려"라고 지시했고, 사후에 정 회장의 동의를 얻은 뒤에 미군 재난 구조대의 도움으로 자재를 회수했다.
부장 시절에는 현대건설과 현대조선중공업의 업무부장을 겸직했고, 현대그룹 부장 중 처음으로 독방을 쓸 만큼 정 회장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 1980년대 초 상무일 때 수주한 영광 원전 3, 4호기를 사장일 때 상업운전을 시작했다. 특히 국내 최초로 원자로와 터빈을 통틀어 원전 시공기술 자립도 100%를 달성한 공로로 1996년 금탑산업훈장을 받았다.
1991∼1996년 현대건설 사장을 지내다 3개월여 자리에서 물러났다가 1998년까지 다시 사장을 맡았다. 1998년 상암동 월드컵축구장 입찰 탈락의 책임을 지고 현대를 떠났지만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배려로 1999년 현대전자에서 분사한 홈네트워크 시스템 업체 현대통신산업 대표이사에 취임했고, 이를 현재의 스마트홈 전문기업 현대HT로 키워냈다. MB와 손발이 잘 맞았다고 해서 2008년 MB가 대통령이 되자 당시 고인이 회장으로 있던 현대통신 주가가 급등하기도 했다.
현대건설 시절부터 스포츠 분야에서도 다년간 활동했다.
'나의 젊음, 나의 사랑' 시리즈에 따르면 현대건설 여자배구팀 운영을 맡았을 때 일종의 선수 배분제인 드래프트제 폐지에 앞장선 뒤 배구선수 이은경, 임혜숙, 지경희 등을 직접 스카우트해서 대통령배 5년 연속 우승을 이뤄냈고, 1983∼1993년 대한배구협회 부회장을 맡았다. 1993∼1998년에는 대한역도연맹 회장(1994∼1999년 아시아역도연맹 회장)을 지냈다. 현대 피닉스 아마야구단 운영을 맡은 것을 계기로 현대유니콘스 프로야구단을 창단, 1996∼1998년 회장을 맡았고, 2003∼2007년에는 아마추어와 프로야구의 행정 통합을 계기로 대한야구협회 회장을 지냈다. 2005∼2009년에는 아시아야구연맹 회장 겸 대한올림픽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냈고, 2005∼2008년 대한체육회 선수촌건립추진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이런 인연으로 한국건설인 대상(1997), 연세경영자상(1997) 외에 체육훈장 맹호장(1999), 대한야구협회 감사패(2009)를 받았다.
유족은 부인 김정은씨와 사이에 1남3녀로 아들 이건구(현대HT 대표이사·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부회장)씨와 딸 이윤정·이지연·이희정씨, 며느리 이낙영씨, 사위 이시명(한국디지털오디오방송 대표이사)·이정준(주연테크 회장)·김우규(EY한영회계법인 이사)씨 등이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20호실, 발인 13일 오전 8시. ☎ 02-3010-2000
chungw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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