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FF 인터뷰] '한국이 싫어서' 장건재 감독, "한 개인을 통해 빠르게 변하는 한국 사회 모습 보여주려했죠"

이하늘 2023. 10. 10.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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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th BIFF 개막작
영화 '한국이 싫어서' 장건재 감독 인터뷰

[텐아시아=이하늘 기자]

장건재 감독. /사진제공=㈜모쿠슈라



삶의 궤적들을 유심히 관찰하고, 자신만의 언어로 풀어내는 장건재는 이 시대에 위로가 되는 감독이다. 영화 '꿈속에서'(2007), '회오리 바람'(2010), '잠 못 드는 밤'(2013), '한여름의 판타지아'(2015), '달이 지는 밤'(2022), '5시부터 7시까지의 주희'(2023)까지. 장건재 감독은 '삶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에 대해 탐구하는 집요함을 보이기도 한다.

장건재 감독이 연출한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된 영화 '한국이 싫어서'는 2015년 출간된 장강명 작가의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20대 후반의 계나(고아성)가 자신의 행복을 찾아서 어느 날 갑자기 직장과 가족, 남자친구를 뒤로하고 홀로 뉴질랜드로 떠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다소 도발적인 제목이지만, 가장 보편적인 '우리들'의 초상을 담아낸 '한국이 싫어서'는 지나온 시간과 앞으로 다가올 시간 혹은 현재의 시간을 들여다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줄 수 있을 듯하다.

영화 '한국이 싫어서' 포스터. /사진제공=엔케이컨텐츠



Q.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한국이 싫어서'가 선정됐다. 부담도 있었을 것 같다.

아무래도 개막작이다 보니 영화제 시작을 알리는 것이 아니지 않나. 많은 게스트 앞에서 선보여서 부담이 있었고, 귀한 자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불어 제목이 주는 어떤 도발적인 부분도 있지 않나. 부산국제영화제에 '한국이 싫어서'가 선정된 것이 어떤 선언인 것일까라는 생각도 했다. 직접 여쭤보지는 못했다.

Q. 남동철 수석프로그래머 겸 집행위원장 대행은 '한국이 싫어서'를 개막작으로 선정한 이유로 "'한국'이라는 특정한 국가를 지칭하지만 젊은 세대들에 대한 이야기"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제작 단계에서 어떤 것에 중점을 두고 이야기를 만들어갔는지 궁금하다.

가장 우선시됐던 작업은 소설의 이야기를 영화 대본으로 옮기는 작업이었다. 소설 속 타임라인은 7~8년 정도 되는 시간을 다루고 있다. 그 시간을 어떻게 옮길지가 고민이었다. 공간 자체가 호주에서 뉴질랜드로 바뀌어서 그 차이를 어떻게 테마 안에 녹여낼 것인가 하는 부분도 숙제였다. 게다가 해외 로케이션 영화이다 보니, 지난 2~3년간의 작품들이 다 발이 묶였다. 2015년 출간된 소설이 가졌던 동시대성을 어떻게 2023년까지 가져올 것인지 고민이 많이 됐다.

Q. '한국이 싫어서' 상영 후, GV에서 관객들로부터 받은 질문 중에 인상 깊었던 질문이 있나.

관객들도 당사자성에 주목하셨던 것 같다. 다들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이 화두였다. 행복을 찾기 위해서 모험하는 계나를 공감하거나 지지하는 코멘트도 많았다. 2014년부터 17년도까지는 한국 사회가 뜨겁게 변화하던 시기라고 생각한다. 만든 사람으로서 두려운 부분도 있다. 사회적 메시지를 다루려고 기획한 영화는 아니고, 한 개인을 따라가는 이야기의 흐름을 통해 한국 사회의 지형을 그려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영화 '한국이 싫어서' 스틸컷. /사진제공=부산국제영화제



Q. 주인공인 '계나' 역의 고아성 배우가 척추골 골절로 아쉽게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석하지 못했다. 따로 전한 말은 없었나.

부산국제영화제에 너무 오고 싶어했다. 고아성 배우도 계나처럼 29살에서 30살로 넘어가는 시기였다. 누구보다도 계나의 심정에 깊이 공감하는 사람이었을 거다.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영화의 첫선을 보이는 자리였기에 누구보다 아쉬워하고 있다. 그럼에도 제작진은 고아성 배우의 회복이 우선이라고 생각했고, 열심히 회복하는 중이다.

Q. 아무래도 소설 『한국이 싫어서』(2015년)을 바탕으로 하다 보니 원작의 느낌을 살리는 것에도 고민이 많았을 것 같다. 특히 주요한 캐릭터 계나, 재인, 지명이 그러하다. 특히 재인은 원작을 읽은 사람이라면 어떻게 표현될지 궁금한 지점이었을 거다. 주종혁 배우가 잘 소화해낸 것 같다.

주종혁 배우는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로 알려졌지만, 그전에 이미 단편 영화 작업을 굉장히 많이 하신 분이다. 많은 단편에서 몇 년 동안 인상적인 모습을 많이 봐서 어떤 배우인지 궁금했다. 제작팀, 연출팀에서도 주종혁 배우를 추천해주더라. 특히 주종혁 배우는 뉴질랜드에서 유학 생활을 한 경험이 있다. 주종혁 배우가 캐스팅을 결정해준 시기가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방송 시작되는 시점과 맞물려있었다. 럭키한 것 같다.

Q. 계나의 오래된 남자친구 지명은 가장 현실적인 인물이다. 독립영화 '우리의 낮과 밤'(2020), '소피의 세계'(2022), '경아의 딸'(2022) 등 일상에 스며든 입체적인 연기를 하는 김우겸 배우가 지명을 연기해서 오히려 좋았던 것 같다.

김우겸 배우도 그전에 작업한 영화들을 많이 봐왔다. 영화를 통해 본 김우겸 배우는 안정감 있고 상식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 같았다. 지명 캐릭터는 생각하는 가치를 지키는 사람처럼 보여지길 바랐다. 계나가 한국을 떠나고 싶어 할 때, 지명의 논리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타당하게 보였으면 했다. 지명의 대사를 우겸 배우가 했을 때, 납득할 만한 연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영화 '한국이 싫어서' 스틸컷. /사진제공=부산국제영화제



Q. '한국이 싫어서'의 제작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계나가 활동하는 주무대가 뉴질랜드로 설정된 만큼 해외 로케이션 촬영을 진행해야 했다. 

나라마다 법규가 다르듯, 촬영 방식이나 스태프 롤, 허가받는 방식들이 달랐다. 특히 뉴질랜드는 할리우드 촬영을 유치하는 인프라라서 촬영하기에 좋았다. '한국이 싫어서'는 뉴질랜드 스태프 7명 정도, 전체 스태프는 20명 안쪽이었다. 한국에서는 촬영을 할 때, 허가받고 도로를 통제하거나 하는 부분이 있지 않나. 뉴질랜드는 시민이 우선이다. 시민들의 보행이나 어떤 것들이 방해되면 허가가 잘 안 난다. 공간들을 찾고 시간대를 찾는 것이 어려웠다.

Q. 소설 『한국이 싫어서』(2015년)는 장강명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소설 속에는 일인칭 화자인 계나의 시점으로 진행되다 보니, 시나리오 과정에서 고민도 많았을 것 같다.

'일인칭 시점으로 영화를 여닫아보자'라는 생각했다. 소설에 사용된 내레이션을 많이 사용했다. 사실 내레이션은 쓰기 어려운 기법의 하나다. 그것이 설명적으로 될 수 있기에 그러하다. 그럼에도 영화를 빨리 견인하기 위한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했다.

Q. 원작자인 장강명 작가와 어떤 이야기를 나눴나.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전적으로 영화화하는 사람의 몫이라고 이야기해주시더라. 어떻게 만들어지든 감독의 몫이라고 거듭 말씀하셨다. 자문을 구했던 부분도 있고, 그때마다 의도에 관한 정보를 주시기도 했다.

영화 '한국이 싫어서' 스틸컷. /사진제공=부산국제영화제



Q. 소설 원작과 영화는 다른 부분이 많다. 눈에 띄는 지점은 '죽음'에 대한 시선이 들어간 것이다. 친구의 죽음으로 한국에 입국한 계나가 패스트푸드에 방문해서 죽은 친구를 환영처럼 보는 장면이 유독 눈에 띈다. 

한국 사회에서 20대는 사망률 1위는 자살이고, 40대는 암이라는 말이 있다. '자살하지 않고 살아남으면 암으로 죽는 인생이 한국 사회'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극 중에서도 행복 멘토 역시 그런 죽음에 이르지 않나. 계나 주변에 그런 인물들을 그려보고 싶었다. 계나와 경윤은 그렇게 친한 사이는 아니지만, 갑자기 경윤이 죽었다고 했을 때, 계나가 각성하는 지점을 만들어보고 싶었다.

Q. 평소 죽음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하는지 궁금하다.

아직 젊다고 생각하지만, 주변에서 죽음을 자주 겪게 되는 것 같다. 삶은 유한한 시간이 주어지지 않나. 언젠가부터 죽음이라는 문제를 끌어안고 있는 것 같다.

영화 '한국이 싫어서' 스틸컷. /사진제공=부산국제영화제



Q. 계나는 유독 추위를 잘 탄다. 집 안에서 텐트 침낭을 입고도 이불을 덮고도 만족하지 않는 모양새다. 동화책 '추위를 싫어한 펭귄'의 언급처럼 계나만 추위를 견디지 못하는 것 같다. 마치 자신을 밀어붙이는 버거운 현실의 문제들이 추위로 치환된 것 같았다.

미술감독님과 계나의 비주얼에 대해서 아이디어를 많이 나눴다. '추위를 싫어한 펭귄'에 나오는 파블로 같이 계나를 구현해보자고 이야기했다. 겨울의 계나와 여름의 계나, 돌아와서의 계나의 모습에 어떤 식으로 차이를 줄 것인지에 대해 특히 공을 많이 들였다. 고아성 배우가 고생을 많이 했다. 건강하고 그을린 피부를 만들고 싶어 했고, 그게 과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보이는 것도 중요했던 것 같다.

Q. 뉴질랜드에서 계나는 거추장스러운 옷가지를 벗어 던지지 않나. 뉴질랜드의 햇빛 아래서 계나의 표정은 밝아 보인다.

한국 사회가 계나에게 물리적으로 강요하지 않더라도 공기처럼 느껴지는 시선의 불편함에 대해 표현하고 싶었다. 물리적으로 벗어났을 때, 환경의 변화가 주는 뭔가 모를 자유로움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뉴질랜드의 삶도 환하게만 그려진 것은 아니지만, 계나의 표정에서 그런 것들이 드러난 것 같다.

장건재 감독. /사진제공=㈜모쿠슈라



Q. 필모그래피를 보면 인생에서 다른 단계로 넘어가거나 전환점을 맞는 경계선에 대한 시기에 고민이 많은 느낌이다. '한국이 싫어서'에서 20대 후반의 계나는 7년 만난 남자친구와 안정적인 직장을 포기하고 뉴질랜드로 넘어가고, '잠 못 드는 밤'에서 신혼부부가 아이를 낳는 문제로 갈등을 겪고, '회오리바람'에서 고3을 앞둔 커플 등이 그렇다.

한국 사회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생애주기가 변곡점이 있지 않나. 입시생, 결혼, 출산, 직장인의 삶 등이 그러하다. 생애 주기의 단계들을 거치는 것에 대한 암묵적인 강요가 있는 것 같다. 끝없이 순환되고 피로감을 주는 것 같다. 공교롭게도 내가 겪었던 그 시기들의 이야기를 다룬 것 같다.

Q. '한국이 싫어서'를 통해 관객들에게 어떤 말 전하고 싶은지?

계나의 삶이 한국 사회의 표준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계나가 과감한 선택을 하는 점에 대해서 지지와 응원을 보내고 싶은 사람도 있을 거다. 경윤 같은 처지도 있고, 계나 부모님이나, 동생 미나 같은 사람도 있지 않나. 특히 미나는 '한국이 싫어서'에서 가장 미래지향적인 캐릭터라고 생각한다. 제일 응원하고 싶은 캐릭터이기도 하다.

Q. 청춘의 단상을 다루는 감독이라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하는 감독이 되고 싶나.

요즘에는 선배의 위치가 되면서 책임감을 많이 느끼는 것 같다. 좋은 작업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다. 열 살 아이를 키우고 있는데, 내가 만든 작업이 오물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사람들을 잠깐 멈춰 세우고,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는 시간을 줄 수 있는 감독이 되고 싶다.

이하늘 텐아시아 기자 greenworld@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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