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탐욕스러운 일자리

최민영 기자 2023. 10. 10.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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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클라우디아 골딘이 9일(현지시간) 메사추세츠주 하버드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올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클로디아 골딘 하버드대 교수는 노동시장의 여성 차별에 천착했다. 그는 남녀 임금격차 원인 중 하나로 ‘탐욕스러운 일자리’(Greedy work)를 꼽는다. 남성들은 장시간의 강도 높은 노동으로 두둑한 보수를 받는 ‘탐욕스러운 일자리’를 택하고, 여성들은 가정과 육아라는 전통적인 성별 역할 규범에 따라 ‘유연한 일자리’를 선택한다는 것이다. 아이가 태어나면 “거의 언제나” 여성의 경력은 타격을 받는다. 고학력 출발선이 같아도 10년 뒤엔 여성의 임금이 뒤처진다고 그는 분석했다.

이 같은 ‘탐욕스러운 일자리’ 문제가 가장 심각한 나라는 한국일 것이다. 생산성으로 직결되지 않는데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1개국 가운데 가장 긴 장시간 노동은 나아질 기미가 없다. 여기에 여성은 가사노동도 짊어진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맞벌이 부부더라도 남편은 집에서 54분, 아내는 3시간7분을 일한다. 출산·육아 무게까지 더해지면 여성은 퇴사를 고민한다.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지난해 경력단절 여성은 140만명에 달한다. 자녀가 있는 기혼 여성 가운데 ‘경단녀’가 된 비율은 58.4%에 달했다.

연공서열제에서 승진 트랙을 벗어나면 관리자 되기는 요원해진다. 2021년 기준 한국 상장기업 이사회의 여성 비율이 8.7%에 그쳐 OECD 평균(28%)을 한참 밑도는 이유가 그것이다. 이 차이는 OECD 평균의 3배(31.1%)에 가까운 남녀 임금격차로 이어진다. OECD는 한국의 이런 문제가 심각하다며 “그렇게 된 요인의 75%는 동일 기업 내 유사한 숙련도를 갖추고도 업무·책임을 분배한 차이에서 발생한다”고 분석했다.

명시적 차별은 줄었대도 가부장적 문화와 구조적 차별이 끈질기니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는 게 여성 노동자에겐 합리적 선택이 된다. 골딘 교수는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0.86명(2022년 1분기)에 불과하다. 경제가 너무 빨리 발전하면 전통과 충돌이 생길 수밖에 없다”면서 성차별 인식을 바꾸라고 조언했다. 여성의 경제 참여는 생산인구 감소 위기 대응에도 필요하다. 미래를 가로막는 ‘탐욕스러운 일자리’가 지배하는 노동시장은 바뀌어야만 한다. 골딘의 경종이 한국 사회를 더 놀라게 했으면 싶다.

최민영 논설위원 m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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