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근의 족집게로 문화집기] `오빠시대`와 8090의 힘

2023. 10. 10.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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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재근 문화평론가

MBN에서 새 오디션 프로그램 '오빠시대'가 시작됐다. PD는 이 프로그램이 80·90년대 음악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기존 오디션 프로그램들과 다르다고 설명했다. 8090을 추구하긴 하지만 트로트는 배제했다고 한다. 트로트 이외의 8090 음악 트렌드를 재현한다는 것이다.

트로트 오디션은 이미 '미스터트롯'을 통해 큰 성공을 거두며 기존 트로트 오디션들의 영역이 확고하게 구축됐고, MBN에서도 불과 얼마 전에 '불타는 트롯맨'을 방영했었다. 그러니 현 시점에 또다시 트로트 오디션을 진행하기엔 부담이 컸을 것이다. 그래서 8090을 내세우면서도 트로트만은 제외한 것으로 보인다,

트로트나 8090이나 높은 연령대 시청자들이 보다 관심을 보인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중장년 시청자들을 대상으로 한 기획인 것이다. 저출생 고령화로 인해 중장년층의 인구비중이 늘어나고 있고, 그렇지 않아도 인구비중이 줄어든 젊은 층은 인터넷을 선호해 TV시청을 기피하기까지 한다. 이런 배경에서 중장년층 대상 기획에 중점을 두다 보니, 얼마 전 방영한 트로트 오디션에 이어 이번엔 8090 오디션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8090이 단지 중장년층의 추억 코드로만 관심을 끄는 것은 아니다. '응답하라 1994', '응답하라 1988' 같은 드라마를 통해 8090 시대의 음악이 젊은 층에게 인기를 끌기도 했다. '싱어게인'과 같은 오디션에서도 과거의 음악들이 많은 사랑을 받은 바 있다. 8090 시대엔 중장년 시청자들의 추억 그 이상의 의미가 있는 것이다.

70년대까지의 가요와 80년대의 가요는 확연히 구분된다. 70년대까지는 전체적으로 전통가요의 느낌이 강했다. 그 시절 대부분의 히트곡들은 요즘 '가요무대'에서 불려도 그다지 이질감이 없다. 그랬던 가요가 본격적으로 현대화, 서구화되기 시작했던 때가 80년대였다.

우리 대중음악은 경제처럼 서구 선진국을 따라잡는 과정을 거쳤다. 일제시대엔 일본을 통해서 서구음악을 받아들였고 해방 후엔 미8군 무대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음악이 서구를 따라잡는 사이에 경제도 압축성장 산업화에 박차를 가했다. 80년대쯤 됐을 때 중화학공업화가 어느 정도 자리 잡으면서 절대 빈곤으로부터 벗어났다. 3저 호황으로 단군 이래 최대 호황이라는 말까지 나왔고, 87년 6월 항쟁, 88올림픽 이후 경제와 정치 모든 면에서 한강의 기적을 성취하게 되었다.

대중음악계에서도 80년대에 압축성장의 결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기존 전통가요와는 결이 다른 발라드, 댄스, 록음악 등이 주류 무대에 등장한 것이다. 조용필, 이문세, 유재하, 들국화, 시나위, 김완선 등이 새로운 물결을 이끌었다. 나아가 90년대에 완전히 서구화가 일단락됐다. 경제도 90년대에 OECD에 가입하면서 새로운 차원에 들어섰는데, 가요계도 이때 새로운 차원에 진입했다. 그것이 바로 완전한 서구화다.

당시 풍요로운 시장에서 10·20대들이 대거 음악 시장에 진입했다. 이들은 100만 장이 우습게 팔리는 시장을 만들었다. 젊은 세대의 가요시장 진입을 더욱 촉진한 건 서태지와 아이들이었다. 그들이 보다 서구적인 음악을 만들어내자 젊은 세대는 열광적으로 호응했다. 뒤를 이어 서구적인 뮤지션들이 대거 등장하면서 우리 대중음악계는 르네상스라 할 정도의 대전성기를 맞이했다. 90년대에 오늘날 젊은이들이 즐기는 음악의 원형들이 등장했다. 그때 20대를 보냈던 세대가 지금은 40·50대 중년 시청자가 되었다.

하지만 요즘과 같은 정도의 서구화까진 아니어서 당시엔 아직까지 전통적인 특징이 남아있었는데, 그게 친숙한 멜로디와 노랫말이다. 팝과 동화된 요사이 가요는 멜로디와 노랫말 모두 보편적인 몰입을 이끌어내기가 힘들다. 그에 비해 8090 가요는 한국인의 보편적인 정서와 보다 더 잘 어울린다.

이런 특징들이 있기 때문에 8090 가요가 방송가에서 계속 사랑받는 것이다. 그 시절에 추억이 있는 중장년층을 대상으로 안정적인 시청률을 이끌어내면서 동시에 젊은 시청자들의 유입까지 기대할 수 있다. 앞으로도 8090 코드는 우리 대중문화산업계의 마르지 않는 젖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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