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탁환 칼럼] 국가 연구개발예산 삭감과 우리의 미래

한겨레 2023. 10. 10.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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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탁환 칼럼][윤석열 정부 예산안]과학자들과의 대화에선 다른 두가지도 인상적이었다. 우선 그들은 단번에 연구개발을 성공시키겠다고 장담하지 않았다. 거듭된 실패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반성하며 성공의 방향을 찾아 나갔다. 자기만의 방식으로 실패하며 시행착오를 겪는 것은 예술가만이 아니다. 과학자 역시 실패를 통해 배우고 익히는 사람들이다. 또 다른 것은 연구개발에 필요한 예산의 규모였다.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지난 8월2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정부 연구·개발(R&D) 제도 혁신방안’과 2024년 국가연구개발사업 예산 배분·조정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탁환 | 소설가

시대물을 자주 출간한 탓인지, 오래전에 일어난 사건을 소설로 옮기는 방법에 대한 질문을 종종 받는다. 사료를 보고 논저를 읽고 등장공간을 답사하는 방법을 설명한 뒤, 이승을 떠난 인물들이 읽었을 법한 서책들로 책장을 채우면서 작품 구상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고 답한다. 대부분은 그 정도에서 질의응답을 마무리하지만, 기억에 남는 질문을 더 받은 적이 있다.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쓴 적이 있느냐는 것이다. 무덤 속 과거만 파고들어 가는 것이 우리의 현재와 미래에 보탬이 되느냐는 비판이 그 아래에 숨어 있었다.

나는 웃으며 답했다. 미래를 쓴 적도 있다고. 정확히 말하자면 2049년을 등장시간으로 삼아 서울에 사는 등장인물들을 테크노스릴러 ‘눈먼 시계공’에 담았다. 카이스트 정재승 교수와 함께 쓴 이 장편소설은 과학자와 소설가의 협업이기도 했다.

과거를 쓰기 위해서 사료가 필요하다면, 미래를 쓰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그것은 바로 과학기술이다. 정 교수와 소설을 구상하고 집필할 당시, 카이스트의 다양한 실험실들을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실험실을 책임진 과학자들과도 긴 대화를 나눴다. 그때 내게 가장 인상적인 것은 과학자들이 미래를 바라보며 연구개발에 매진하고 있다는 점이다. 내가 연구하는 신약이 미래에 암을 정복할 것이고, 내가 연구하는 자동차가 미래에 교통망을 획기적으로 바꿀 것이며, 내가 연구하는 로봇이 미래에 인간과의 공존을 가능하게 만들 것이라는 식이다.

등장시간을 2049년으로 한 것은 과학적으로 예측 가능한 시간 안에서 이야기를 꾸려가기 위함이다. 등장시간을 서기 3000년이라거나 핵폭발이 일어나서 문명이 모두 파괴된 뒤라고 설정하는 것은 과학에 근거한 예측을 무시하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찰스 퍼시 스노의 ‘두 문화’를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문과 출신인 내가 미래를 상상하는 버팀목인 과학기술을 알아나가기는 쉽지 않았다. 예측 가능한 근미래를 쓰고 싶다는 갈망과 중요 논저를 정확하고 친절하게 짚어준 공동 집필자가 곁에 없었다면, 과학기술의 최근 성과들을 들여다보지 못했을 것이다.

과학자들과의 대화에선 다른 두가지도 인상적이었다. 우선 그들은 단번에 연구개발을 성공시키겠다고 장담하지 않았다. 거듭된 실패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반성하며 성공의 방향을 찾아 나갔다. 자기만의 방식으로 실패하며 시행착오를 겪는 것은 예술가만이 아니다. 과학자 역시 실패를 통해 배우고 익히는 사람들이다.

또 다른 것은 연구개발에 필요한 예산의 규모였다. 물론 인문학에서도 많은 돈이 필요한 연구가 있다. 그러나 과학기술에서 요구되는 예산은 그 차원을 뛰어넘어 말 그대로 천문학적인 경우가 적지 않았다. 예를 들어, 1915년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일반상대성이론을 통해 예견한 중력파를 100년 뒤 검출하기 위해, 세계 17개국 133개 연구기관에서 천여명의 과학자를 아우르는 연구협력체가 만들어졌고 조 단위 연구비가 들었다. 예산이 충분하다고 혁혁한 연구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예산이 부족하면 아예 시도할 수조차 없는 연구도 있다.

문과 출신 소설가가 이렇듯 늦깎이로 과학기술의 최근 경향을 꾸준히 살피고 과학교양서들을 즐겨 읽는 이유를 구구절절 늘어놓는 것은, 정부가 내년도 국가 연구개발 예산을 5조2천억원이나 삭감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연구개발의 중추 역할을 해온 정부출연 연구기관의 주요사업비 삭감 규모는 25.2%에 달한다. ‘국가 과학기술 바로 세우기 과학기술계 연대회의’에서는 그 부당함을 지적하고 항의하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과학기술은 문과 출신은 모르고 살아도 그만인 분야가 아니다. 과학기술에 기반한 연구와 개발은 우리의 미래와 직결된다. 이 분야 예산 삭감은 온 국민의 미래를 암울하게 바꿔놓을 수도 있다. 효율적으로 예산을 쓰자는 데 반대할 사람은 없지만, 효율성의 근거를 거듭 따져야 하며 우리의 미래를 어디로 이끌 것인가를 최대한 꼼꼼하게 살펴야 한다.

현장에서 연구와 개발에 몰두하는 과학자들의 반발은 예산 삭감이 우리의 미래뿐만 아니라 현재까지 당장 옥죄기 때문이다. 예산 삭감의 결과 올해 하반기부터 대학 실험실의 젊은 학생 연구자 2800여명이 인건비를 받지 못한다는 보도가 이어서 나왔다. 열정을 갖고 실험실을 지키며 연구에 매진할 싹들이 잘려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국가 연구개발 예산을 이렇게까지 대폭 삭감하면서 그려낸 미래는 무엇인가. 정부가 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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