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가주의 vs 국민부담…'뜨거운 감자' 전기요금 인상
정권 바뀌었지만 '기재부·정치권 제동' 구조 그대로…"독립기구 결정" 의견도
(세종·서울=연합뉴스) 차대운 김동규 기자 = 문재인 정부 시절 국제 에너지 가격 폭등에도 물가와 국민 부담을 이유로 전기요금을 제때 적정 수준으로 올리지 않아 결과적으로 한국전력이 심각한 재무 위기에 내몰렸다는 취지의 감사원 감사 결과가 10일 나왔다.
윤석열 정부는 한전의 재무 위기 완화를 위해 상당한 정치적 부담을 감수하고 전기요금을 큰 폭으로 올렸다.
하지만 여전히 '정무적 판단'이 '원가주의 원칙'에 우선하는 상황이어서 전 정부를 상대로 한 감사에서 드러난 전기요금 결정 구조가 근본적으로 변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감사원 감사 결과대로 문재인 정부 시절 국제 에너지 가격 급등에도 전기요금 인상이 거의 이뤄지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2021년부터 국제 에너지 가격 인상이 시작됐고, 정부는 지난해 4월부터 올해 5월까지 다섯 차례에 걸쳐 전기요금을 약 40% 올렸다.
이 중 전 정부 때 인상은 지난 4월(6.9%↑)이 유일했다. 나머지는 네 차례 인상은 모두 윤석열 정부 들어 이뤄졌다.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전기요금 인상은 사실상 작년 4월 한 차례가 유일했다.
이에 따라 한전 연간 적자는 2021년 5조8천억원에 달했고, 정권이 교체된 2022년에는 32조6천억원으로 폭증했다. 큰 폭의 전기요금 인상에도 한전 적자는 올해도 이어져 2021년 이후 누적 적자는 47조원이 넘는다.
현 정부와 여권은 전 정부가 전기요금을 올렸어야 할 결정적 시기를 놓침에 따라 요금 정상화가 더욱 어려워졌고, 이는 한전의 천문학적 적자로 이어졌다고 보고 있다.
방문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이날 국회 국정감사에서 "진작 (전기요금) 베이스를 올려야 하는데, (전 정부가) 전기요금을 낮게 유지해왔으니까 이 문제가 발생한 것 아니냐"고 언급한 점도 같은 맥락이다.
여기에 문재인 정부가 탈원전 정책과 함께 신재생에너지 보급에 강력한 드라이브를 건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값싼 원전 가동이 당초 계획보다 줄어든 상황에서 에너지 가격 폭등 시기 가장 비싼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을 늘릴 수밖에 없어 손해가 커졌다는 분석으로 이어진다.
에너지경제연구원장을 지낸 손양훈 인천대 교수는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한전 적자의 원인은 복합적이라고 봐야 한다"며 "지난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기저 전원인 원전과 석탄발전소를 많이 줄였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천연가스 가격이 엄청나게 올라 부담이 커졌다"고 말했다.
감사원은 이번에 전 정부가 전기요금 인상을 차기 정부, 즉 현 정부에 떠넘겼다는 점을 정면으로 짚었다.
다만 이번 감사에서 지적된 전기요금 인상 결정 구조의 문제가 현 정부 들어 근본적으로 바뀌었다고 보긴 어렵다는 견해도 많다.
전기요금은 주무 부처인 산업부가 물가 관리 주무 부처인 기획재정부와 '협의'해 결정한다.
통상 한전의 재무 상황, 요금 조정을 통한 수요 관리 등에 무게중심을 두는 산업부는 '원가주의'에 입각한 인상 요인 주장을 펴고, 물가 관리가 최우선 정책 목표인 기재부는 물가와 국민 부담을 들어 브레이크를 거는 역할을 한다.
산업부와 기재부 등 관계 부처가 '합리적 균형점'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지만, 국제 에너지 가격이 폭등하는 시기에 이 같은 조정은 '전기요금 인상 지연'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일각에서는 이를 '폭탄 돌리기' 양상이라고 빗대기도 한다. 이는 결국 한전의 막대한 부채로 이어졌다는 시각도 있다.
여기에 '당정협의'가 결정 과정에 포함, 전기요금 인상에 대한 국민 수용성 등 '정무적 판단' 요소가 더욱 강해진 측면도 있다.
총부채 200조원 이상의 한전이 여전히 전기를 팔아 정상적인 수익을 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일정 수준의 전기요금 인상은 불가피하다고 지적하는 전문가들이 적지 않다.
손 교수는 "한전 부채 비율이 500%를 넘어 재무적으로는 회생 불능인 상태"라며 "현 정부가 빠른 속도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지만, 전기요금 인상 시기 등에서 늦었다"고 말했다.
차제에 우리나라도 주요 선진국에서처럼 전기요금 조정 문제를 결정하는 독립적인 기구를 도입해 정권의 '정무적 부담'을 더는 방안을 추진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김동철 한전 사장은 최근 기자들과 만나 "요금도 독립된 규제 기관이 원가에 연동해 (결정)하는 것이 어떤 정부가 됐든 국정 운영 부담도 덜고 국민 수용성도 높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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