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의 비용: 중동 화약고 정말 터질까 [마켓톡톡]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보단
사우디·이란 석유 생산이 변수
내전 경제적 피해 생각보다 커
내전국 국내총생산 35% 감소
ADB 논문의 무서운 시나리오
“미-이란 전쟁하면 유가 11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인 하마스간 교전이 3일째를 맞았다. 국제유가는 확전 가능성으로 4% 이상 급등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석유·금·밀 등의 수급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는 국가지만, 이스라엘-하마스간 교전이 중동으로 확전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중동 지역 갈등의 경제적 비용을 분석했다.
■ 하마스 목표는 확전=제4차 중동전쟁 발발 50주년인 10월 6일(현지시간) 다음날.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인 하마스가 이스라엘 남부 지역을 재래식 소형 미사일, 행글라이더, 드론, 오토바이 등으로 공격했다. 이스라엘은 9일 가자지구를 공습하고, 민간인 이동은 물론 음식 반입도 불허하는 봉쇄에 나섰다. 요아브 갈란트 이스라엘 국방부 장관은 "가자지구를 완전히 봉쇄한다"고 발표했다.
영국 BBC는 10일 오전 현재 이스라엘에서 960명, 팔레스타인에서 690명이 사망한 것으로 집계했다. 유엔은 9일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가자지구에서 12만3000명 이상의 팔레스타인 난민이 발생했다고 발표했다.
지상전이 벌어질 확률은 커지고 있다. 가자지역에서 2014년 이후 9년 만에 지상전이 벌어지면 사상자가 늘어나면서 주변 국가로의 확전 가능성도 높아진다. 이스라엘 방위군은 9일 예비군 병력 30만명을 해안지역에 집결시켰다고 발표했다. 가자지구에는 이스라엘·이집트·지중해로 둘러싸인 곳에 팔레스타인 230만명이 살고 있다. 하마스는 2007년 이후 가자지구를 통치하고 있다.
하마스의 객관적인 전력은 이스라엘군과 비교하기 힘든 수준이다. 하마스의 의도는 가자지역에서 이스라엘의 과도한 살상을 유도해 중동 지역 전체로 확전을 유도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개전 이튿날인 8일 벌어진 여론전이 그 증거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중동 무장단체 고위 관계자들의 말을 익명으로 인용해 "이란이 지난 2일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하마스의 대규모 이스라엘 공격을 승인했다"고 보도했다. 하마스 대변인도 이날 BBC와 인터뷰에서 "이란이 이스라엘 공격을 지원했다"고 발언해 확전 의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하지만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전략소통조정관은 9일 MSNBC와 인터뷰에서 "이란이 그동안 하마스 등 테러리스트들을 지원해왔다는 점에서 연루돼 있지만, 이번 공격에 연결돼 있다는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증거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다만 커비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스라엘의 외교 관계 정상화를 밀고 나가겠다"고 말해 중동 지역에 불씨를 남겼다.
미국 타임은 8일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가 하마스 침공과 관련해 이스라엘을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하도록 유도하는 게 하마스의 의도"라고 분석했다. 미국 폴리티코는 9일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석유 공급을 불투명하게 만들 수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은 트럼프 행정부 시절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들의 외교 정상화를 추진해 왔는데, 그 마무리 단계인 사우디·이스라엘의 관계 정상화가 이번 하마스의 공격과 이스라엘의 반격으로 위협받을 수 있다. 실제로 10일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는 "사우디는 팔레스타인 국민의 편에 서 있고, 분쟁을 막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는 성명을 내놨다.
■ 중동 갈등의 비용=하마스의 공격으로 석유를 비롯해 금·구리·밀 등 주요 원자재 가격이 일제히 소폭 오른 건 중동 지역 확전 가능성 때문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특성상 원자재 가격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그런데도 국제유가는 하마스의 공격 이후 4.0% 급등했고, 금 1.0%, 구리 0.5%, 밀은 0.75% 상승했다.
모넥스유럽의 외환 책임자인 사이몬 하비는 폴리티코와 인터뷰에서 "이번 갈등의 영향이 국지적일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견해지만 갈등이 확대하면 중동 전체를 불안정하게 만들고, 이는 다시 미국과 이란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분석했다.
중동의 갈등은 크게 보면 석유와 지역 경제 두 부분에 영향을 준다. 국제통화기금(IMF)은 2017년 12월 '갈등의 비용'이란 보고서에서 중동 지역의 갈등이 주변국을 얼마나 피폐하게 만드는지 분석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예멘은 내전이 벌어졌던 2015년 1년 동안 국내총생산(GDP)이 최대 35% 감소했다. 리비아는 제2차 내전이 벌어졌던 2014년 GDP의 24%가 쪼그라들었다. 시리아는 내전 초기인 2010년에서 2016년 사이 물가상승률이 600%를 넘어섰다.
내전이나 타국과의 전쟁으로 난민이 발생하면 인접 국가의 경제성장에도 당연히 피해를 준다. 유엔난민기구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6년 레바논으로 들어온 난민은 100만명으로 이 나라 인구의 17% 수준이었다.
요르단으로 몰린 난민은 전체 인구의 7.0%인 69만명이었다. 요르단의 경제 성장률은 2007~2010년 연평균 5.8%였지만, 난민이 유입되면서 2011~2016년 2.6%로 둔화했다. 요르단의 시리아 국경 인접 지역에서는 주택 수요가 폭증하면서 2012~2014년 임대료가 68.0% 폭증했다.
요르단의 수도인 암만은 같은 기간 임대료가 6.0% 상승하는 데 그쳤다. 세계은행은 2016년 시리아의 초기 내전 5년간 튀르키예, 레바논, 이라크, 이집트에서 생산량이 약 350억 달러 줄었다고 분석했다.
중동 갈등의 또 다른 비용은 유가다. 만약 이번 갈등이 50년 만에 제5차 중동전쟁으로 확전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미국과 이란의 갈등이 극심했던 지난 2020년 아시아개발은행(ADB) 소속 이코노미스트들이 발표한 '미국과 이란 전쟁 시뮬레이션과 국제유가 움직임'이란 논문은 석유 수급에 영향을 주는 12가지 부정적인 영향을 반영한 유가 추정 모델을 제시했다.
논문에 따르면 제4차 중동전쟁이 벌어졌던 1973년 유가는 배럴당 4.75달러였는데, 1974년에는 배럴당 9.35달러로 두배가 됐다. 종전 이후에도 유가 상승은 멈추지 않았고, 1980년 유가는 배럴당 37.42달러까지 치솟았다. 논문은 이란과 미국이 개전시, 유가를 배럴당 60달러로 가정했을 때 미래 유가는 최대 660달러로 11배 폭등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정연 더스쿠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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