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CO 첫 한국인 단원 이재원…“세계 최고 수식어보다 연주 자체가 자부심”
세계 최정상급 교향악단 ‘로열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RCO)’에 유일한 한국인 단원이 있다. 제2바이올린 제2부수석인 이재원(37)이다. RCO와 함께 다음달 11일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 무대에 선다. 이재원은 10일 경향신문 e메일 인터뷰에서 “RCO의 ‘세계 최고’라는 수식어보다는 연주 자체에 대한 가치에 더 자부심을 느낀다”며 “가장 나다운 연주가 어떤 것인지 찾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RCO에 들어오고 한동안, 그리고 여전히 자신을 돌아보고 찾아가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바이올리니스트로서, 음악가로서, 인간으로서의 이재원과 다시 만나 계속 저만의 길을 가겠죠.”
이재원은 1888년 창단한 RCO 역사상 첫 한국인 단원이다. 8세 때 프랑스로 이민을 가 파리 국립고등음악원을 졸업하고 스위스와 독일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객원 단원, 서울시립교향악단 제2바이올린 부수석을 거쳐 2015년 RCO에 입단했다. “시간이 참 빠르네요. 벌써 8년이라니. 좋은 지휘자와 프로그램, 좋은 홀과 관객, 이 모든 조건이 맞아 정말 특별한 연주를 할 때 가장 행복합니다.”
그는 “제 인생 대부분을 유럽에서 살아서 동양인 연주자로서 딱히 어려웠던 기억은 없다”며 “오랜 세월 타국에서 생활한 만큼 다중 문화적인 생활은 힘들기도 하지만 아주 큰 힘도 돼주고 있다. RCO는 25개 국가들에서 온 음악가들이 있어 다채롭다”고 말했다.
이재원은 RCO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연주자들과 호흡을 맞춰 왔다. 이들과 경쟁하면서 받는 스트레스는 없을까. “확실히 단원들 모두 너무 잘해요. 가끔 무대 위에서 솔로(독주)를 감상하다 연주하는 것을 잊어버리기도 하거든요. 스트레스는 아닙니다. 영감, 느낌, 그리고 재미가 있어요. 옆에서 잘할수록 함께 연주를 즐기게 되고, 즐길수록 자신이 발전하는 기분입니다.”
오보이스트 함경(30)도 이재원에 이어 2016년 RCO에 입단했지만 2018년 핀란드 방송교향악단으로 옮겼다. 이재원이 유일한 한국인 단원으로 남았다. “함경이 같이 있었을 때 서로 많이 의지했습니다. 옮길 땐 많이 아쉬웠는데, 활발히 활동하는 것을 보면서 응원하고 있습니다.”
RCO는 ‘벨벳의 현, 황금의 관’이라는 별명을 가졌다. 힘과 절제를 겸비한 현악기와 관악기가 조화를 이룬 독보적인 음색으로 명성이 높다. 영국의 유명 클래식 전문지 그라모폰은 2008년 RCO를 세계 1위 오케스트라로 선정하기도 했다.
“135년 동안 전통과 시대의 변화, 변하지 않는 장소와 계속 변하는 음악가들과 관중들, 이 모든 것들의 조화를 끊임없이 추구함이 RCO의 중요 정체성 중 하나가 아닌가 싶습니다. 공연마다 최선의 연주를 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보람을 가집니다. 단원들 모두 함께 무대 위에서 같은 감정과 에너지로 통일돼 관중에 감동을 드리는 것에 만족감을 느끼죠. 함께 한다는 것이 중요하니까요.”
RCO의 내한 공연은 2017년 11월 공연 이후 6년 만이다. 이번 공연에선 베버 ‘오베론’ 서곡, 리스트 피아노 협주곡 2번, 차이콥스키 교향곡 5번을 연주한다. 세계적 명장 파비오 루이지가 지휘하고, 유명 피아니스트 예핌 브론프만이 협연한다. “파비오 루이지는 음악에 진실하신 분입니다. 악보 해석과 디테일에 관해 꼼꼼하게 하나도 놓치지 않으시는 분이죠. 그러면서도 오케스트라를 압박하지 않고 자유롭게 놓아두세요.”
2027년부터 RCO의 수석지휘자가 되는 ‘천재’ 클라우스 메켈레(27)에 대한 기대도 컸다. RCO는 2018년 다니엘레 가티가 성추행 혐의로 해고된 이후 수석지휘자 자리가 공석이다. 메켈레는 지난해부터 RCO의 ‘아티스틱 파트너’로서 매년 5주 이상 지휘한다. “공석이 벌써 5년이 넘은 상황이죠. 공석이 오래 갈수록 무거워지고, 그럴수록 기대감은 커가고 있습니다. 지난해 시즌부터 메켈레의 지휘 아래 오케스트라가 점점 단합해가는 기분입니다. 이 인연의 미래는 두고 봐야겠지만, 단원들 모두 굉장히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재원은 유명 교향악단 입단을 꿈꾸는 음악인들에게 “유명 악단보다 어느 악단이 자신에게 맞는지 알아가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고 말했다. “많은 연주들을 듣다 보면, 더 끌리는 음향이나 에너지가 생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오케스트라도 여러 종류가 있으니까요. 그 과정에서 자신에 대해 잘 알아갈 수 있다면 더 좋겠죠.”
허진무 기자 imagi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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