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선생 이야기 들었어? [슬픈 경쟁, 아픈 교실]
미니픽션 10부작 ④ 한은형
대한민국 교육이 병들어 가고 있습니다. 수학능력시험 ‘킬러문항 배제’ 논쟁은 현행 입시제도를 둘러싼 각종 문제점이 다시 한번 공론화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서울 서초구 한 초등학교 교사의 극단적 선택을 통해 공교육의 한 단면이 드러나면서, 교육주체들의 여러 목소리가 분출하고 있기도 합니다. 이런 문제들의 바탕에는 승자독식 사회의 그림자를 그대로 담고 있는 대한민국 교육 현장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부실해져 가는 공교육의 이면에는 갈수록 고도화, 효율화돼 번성하는 사교육이 존재합니다.
한겨레는 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작가 10명과 손잡고 한국 교육의 현실을 소재로 한 미니픽션 10회 연재 ‘슬픈 경쟁, 아픈 교실’을 시작합니다. 격주로 독자 여러분을 찾아갈 이번 기획에는 장강명 정진영 주원규 한은형 최영 정아은 지영 염기원 서윤빈 서유미 작가가 함께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성원 바랍니다.
“강 선생 이야기 들었어?”
“영어만 쓴다면서?”
라이딩만 해주는 게 아니라 철학 수업도 하고 유기농 식단으로 밥도 먹이고 무엇보다 애들한테 영어만 쓴다고 했다.
“그게 가능해?”
민주 엄마는 해영 엄마에게 이렇게 물었지만 자신도 알았다. 돈이라면 다 된다는 것을. 강 선생이 얼마를 받을지 궁금했다. 별별 집안일부터 아이를 케어하는 일까지 내가 하는 것만큼 합당한 임금을 받는다면 자기도 강 선생 못지않게 할 수 있다고. 한달에 400만원 정도를 받는다면 강 선생처럼 프로페셔널하게 해낼 수 있다고. 영어로 하는 프리 토킹이 걸리기는 했지만 과외를 받아서 애들을 가르치면 되지 않을까 싶었다.
강 선생은 부부네가 고용한 입주 가사도우미였다. 가사의 수많은 범주에서 특히 부부네 두 아이의 양육과 영양, 이동, 그리고 어느 정도의 교육을 책임지기로 했으므로 입주 가사도우미라기에는 부적절했다. 고용한 이들은 강 선생님이라고 했지만 동네 엄마들은 강 선생을 부부네 집사라고 불렀다. 부부네가 강 선생을 집사님으로 부른다는 말이 돌기 시작함과 동시에 동네 엄마들은 꼴값이라고 했다. 여기가 한국이지 영국이냐면서. “지네가 귀족이야?”라기도 했다. “알지? 중세시대에 의사는 이발사 같은 거였어”라고도.
부부네의 부부는 ‘부부 내과’를 말하는 거였다. 10년 전에 부부 내과라는 간판을 달고 ㅅ동에 개업한 병원은 경쟁상대가 없을 정도로 잘 됐다. 남편보다 부인의 단골손님이 더 많아서 부부네 부인은 점심을 거의 못 먹는다고 했다. 점심시간까지 할애해서 진료하지 않으면 안 될 만큼 바쁜 부인이기에 아이 선생님과 면담할 일이 있으면 부부네 남편이 갔는데, 이 일로 동네 아이 엄마들은 불만을 토로했다. 엄마들 사이에 아빠가 껴 있는 게 불편하다는 이유였다.
이건 핑계였고, 동네 아이 엄마들은 부부네 남편의 존재가, 또 부부네 부인의 존재가 거슬렸다. 옅은 미소를 띤 데다 세련되기까지 한 부부네 남편을 보면 분리수거를 해야 할 듯한 티셔츠를 입고 음식물쓰레기 정도 버리면서 생색내는 남편의 존재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부부네 남편의 미소는 자기 아내를 볼 때 가장 도드라졌는데, 부부네 부인이 퉁퉁한 몸매였기에 동네 아이 엄마들은 또 알 수 없는 고통을 느꼈다. “온종일 샌드위치 반쪽만 먹는데 살이 왜 안 빠져?”라고 해도 기분이 좋아지지 않았다. 게다가 그들 부부는 언제나 먼저 이름을 불러주며 인사를 하는 다정한 이웃이기도 해서 아이 엄마들은 부부를 보면 쭈그러드는 기분이었다.
이제 강 선생을 동네 엄마들이 처음으로 인지한 장면으로 가보자.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데?”
라고 말한 게 민주 엄마인지 해영 엄마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갈색 투피스를 입고 에스유브이(SUV) 중에서도 큰 편인 은색 아우디 Q8에서 내리는 강 선생은 평범하지 않았다.
“저기요, 질문 있어요. 소네트 왜 외우는 거죠?”
해영 엄마가 강 선생에게 물었다. 부부네 첫째와 같은 반인 해영이 울면서 자기도 소네트를 배우고 싶다고 했다. 해영은 욕심이 많아서 반의 아이가 가지거나 배우거나 먹은 걸 똑같이 하지 않으면 안 됐다. 어릴 때부터 볼에 실핏줄이 터질 때까지 우는 애가 해영이었다.
강 선생은 가볍게 눈인사를 하고 이렇게 말했다.
“필즈상 받은 허준이 교수 아시죠? 허준이 교수 봉직하시는 고등과학원 아시죠?”
질문한 해영 엄마가 고개를 끄덕일 때 민주 엄마도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 사숙께서 고등과학원 수학과 교수로 계시는데요. 수식을 풀기 전에 셰익스피어 소네트를 외우면 두뇌 훈련으로 좋다 세요. 두뇌 훈련이 아니더라도 명상으로도 좋고요. 규칙적인 질서로 배열된 14행의 정형시가 소네트거든요. 자라나는 아이들 두뇌에 소네트의 각운과 음률만큼 좋은 게 또 있을까요?”
이렇게 말한 후 다시 눈인사를 하고 강 선생은 돌아섰다.
“뭐…음류~울? 그리고 사숙? 사숙이 모야?”
민주 엄마가 물었다.
“당숙은 알아도 사숙은 처음 들어봤네. 아니, 뭘 저렇게 잘난 체를 해? 자기가 안주인이야? 애들 엄마야? 그래 봤자 식모살이면서 왜 저래?”
해영 엄마가 말했다. 식모살이라는 말을 내뱉으며 얼굴이 화끈거렸지만 그렇다고 정정하고 싶지는 않았다. 오늘부터 해영에게 소네트를 외우게 하고 싶은데 선생을 어디서 구하지? 자존심 상하게 강 집사에게 그룹과외를 해달라고 할 수도 없고. 아, 짜증 나.
“할아버지의 재력, 아빠의 무관심, 엄마의 정보력, 이게 아이의 미래를 가른다고 하지 않았나?”
민주 엄마가 말하자 해영 엄마는 이렇게 받았다.
“옛말 틀린 거 없다더니 틀렸어. 부부네는 셋 다 아니잖아. 봐봐. 부부네 흙수저지, 아빠 유관심이지, 엄마 정보력 없지. 근데 부부네 애들 둘 다 영재라고 난리도 아니잖아.”
“아, 짜증 나.”
이번에 이렇게 말한 사람은 민주 엄마였다. 부부네는 소위 말하는 ‘입시 성공 세가지 비결’ 중 아무것도 해당하지 않는 경우라서 이 동네 엄마들에게 불쾌감을 줬다.
“콱 불매할까 보다.”
하지만 해영이 열이라도 나면 가장 먼저 부부네로 달려갈 게 해영 엄마라는 걸 민주 엄마는 알았다. 불매는 아무나 하나? 약을 독하게 쓰지 않으면서도 잘 듣고, 성심성의껏 진료하는 부부네 병원 같은 데는 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강 선생이 등장한 지 육개월이 지나자 동네 엄마들은 멘토처럼 강 선생을 대하고 있었다. 무항생제 한우는 어디서 사는 게 좋은지, 유산균은 어느 브랜드가 좋은지부터 팀을 짜서 철학 수업과 소네트 암송 수업을 강 선생에게 받았다. 동네 엄마들이 그룹으로 수업을 해달라고 하자 강 선생은 고용주인 부부네가 허락해야 가능하다고 했는데, 부부네는 동네 엄마들을 적으로 삼고 싶지 않았기에 마지못해 그러라고 했다. 해영과 민주도 철학 수업과 소네트 수업을 들었다.
아우디 Q8도 부부네 가사도우미용 차였던 레조의 교체를 요청해서 업무용 차로 받았다는 것까지 알게 되자 동네 엄마 중에는 아이를 다 키우고 나서 강 선생 같은 커리어를 가져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생겼다. 그래서 강 선생의 교양있는 말과 행동을 유심히 보곤 했다. 민주 엄마와 해영 엄마는 강 선생처럼 실력과 정보력을 갖췄다면 잘난 체 좀 해도 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반년이 지났을 때 철학 수업과 소네트 수업을 받는 아이들은 반으로 줄어들었다. 다른 아이들과 함께 들으니 감흥이 떨어진다고 그만하겠다는 애들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반년이 더 지나자 강 선생 대신 부부네 남편이 그집 아이들을 라이딩하기 시작했는데, 부부 남편은 구형 그랜저를 이용했다. 동네 아이 엄마들은 거슬리는 부부네 남편 얼굴을 아침저녁으로 보아야 했다. 강 선생이 아우디와 함께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부부네 남편과 바람을 피웠다는 이야기도 있었고, 부부네 금고에서 돈을 꺼내다가 들켰다는 이야기도 있었고, 모든 게 거짓임이 드러나 해고되었다는 이야기도 돌았는데 진실이 어느 쪽인지는 알 수 없었다. 퇴직금으로 아우디를 받았다고 하는데 정말 그런지도 알 수 없다. 부부네는 그 이야기를 꺼내려고 하면 다른 이야기를 시작했다. 한동안 ㅅ동 아이 엄마들은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이렇게 이야기하곤 했다.
“강 선생 이야기 들었어?”
한은형 | 소설가. 2012년 문학동네신인상으로 등단. 소설집 ‘어느 긴 여름의 너구리’, 장편소설 ‘레이디 맥도날드’, ‘거짓말’, 경장편소설 ‘서핑하는 정신’과 산문집 ‘당신은 빙하 같지만 그래서 좋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어’, ‘우리는 가끔 외롭지만 따뜻한 수프로도 행복해지니까’, ‘그리너리 푸드: 오늘도 초록’, ‘베를린에 없던 사람에게도’ 등을 썼다.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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