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포커스] 中 노동집약 산업의 성장 미스터리

2023. 10. 10.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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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 올라가는 저개발 국가는
의류·신발 등 생산·수출 감소
中은 노동집약산업 되레 번창
임금상승 부담 자동화로 상쇄
생산기지 이동 공식 바뀔 수도

우리가 세계 시장에서 처음으로 1위를 차지했던 품목은 가발이었다. 1970년대 중반에는 한국산 가발이 세계 시장의 70%를 점하기도 했다. 할머님 세대가 기른 치렁치렁한 머리채와 그 한 올 한 올을 매만질 정교한 손놀림밖에 내다 팔 물건이 없던 시절, 가난한 1960년대를 회상하는 단골 소재이기도 하다. 하필 2023년 북한의 최대 수출품도 바로 이 가발이다.

자원이 없고 소득이 낮은 저개발국은 이렇게 가발 같은 이른바 노동집약적 산업에서 출발한다. 노동집약적 산업은 노동력이 저렴한 생산기지를 찾아 전 세계를 이동한다. 우리가 사는 동아시아만 보더라도 처음에는 일본에서, 다음에는 한국, 대만, 홍콩으로, 다시 중국으로, 최근에는 베트남이나 미얀마로 움직이는 것이 제조업 가치사슬의 역사다.

당연히 한국처럼 소득이 올라가고 산업이 고도화되면 의류, 완구, 신발 같은 산업은 이른바 사양산업이 된다. 우리가 수출 100억달러를 돌파한 1977년 수출 1위 품목은 의류였다(17억달러). 그 의류 수출은 1988년 69억달러로 피크에 달했다가 2000년에는 45억달러로, 2022년에는 20억달러 수준으로 움츠러들었다. 신발은 1990년 43억달러에서 4억달러로, 완구는 1988년 15억달러에서 5억달러로, 가죽도 1989년 32억달러에서 3억달러로 수출액이 줄었다. 아쉽달 것도 없는 상식적인 변화다.

그런데 최근 바다 건너 중국에서 이러한 상식에 반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중국의 의류, 완구, 신발 같은 노동집약적 산업의 수출은 2010년 이후 급격한 임금 상승과 산업 고도화 분위기 속에서 잠시 위축되기도 했다. 그러나 코로나19 경제위기를 전후해 다시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의류 수출은 2019년 1390억달러에서 2022년 1680억달러로, 완구는 628억달러에서 1041억달러로, 신발은 478억달러에서 622억달러로 늘었다. 가구 등 다른 노동집약적 업종도 마찬가지다. 즉 1인당 소득이 1만3700달러(2023년·IMF)로 이미 한국의 2002년 수준에 달한 나라에서 노동집약적 산업이 여전히 경쟁력을 유지하면서 과거의 피크를 갈아치우고 있다. 이 덕분에 완구(7위)나 의류(8위)는 여전히 중국의 상위 수출 품목이다. 중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수수께끼는 인공지능(AI)과 로봇의 시대에 전개될 노동집약적 산업의 미래에 관해 새로운 화두를 던진다. 이미 중국은 AI 분야에서 세계에서 가장 많은 특허를 내는 나라다. 미국과 일본을 합친 것보다 많다. 2022년 전 세계에 55만대의 산업용 로봇이 새로 도입되었는데, 그중 29만대(52.4%)가 중국에 깔렸다. 즉 노동집약적 산업의 비교우위가 저렴한 노동력이었다면, 중국은 지금 그 노동력, 사람의 머리와 손을 컴퓨터와 로봇으로 누구보다 열심히 대체하고 있다.

산업화의 역사상 처음으로 기존의 노동집약적 생산기지가, 비용 상승에 따른 비교우위 상실을 스스로 상쇄해버릴 수도 있는 자본과 기술을 보유하게 됐다.

만일 중국이 정말로 임금 상승에 따른 제조업 비교우위 약화를 자동화로 상쇄해버린다면, 많은 개도국이 기대하는 이른바 '포스트 차이나(post-China)' 생산기지의 형성은 멀어진다. 아예 노동력의 비교우위에 따라 제조업 생산기지가 이동한다는 기존의 상식이 바뀔 수도 있다. 다른 한편 그동안 사양산업으로 취급받던 노동집약적 산업은 이제 AI와 로보틱스를 제조업에 적용하는 첨단 실험과 생산의 공간이 된다. 남의 얘기가 아니다.

이 낯설고 거대한 혁신과 투자의 공간을 어떻게 활용할 것이냐는 우리 기업과 정부 앞에 놓인 중요한 숙제이기도 하다.

[지만수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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