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모스' 쓴 아버지는 떠나셨지만 여전히 저와 연결돼 있죠"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코스모스'를 쓴 칼 세이건(1934~1996)은 세계적인 천문학자였다. 그러나 딸 사샤에게 그는 한 명의 아버지에 지나지 않았다. 사춘기가 한창때인 14살 무렵, 그는 아버지를 여의었다. 아버지 손을 잡고 세계여행을 다니고, 도서관을 누비던 시간은 이제 과거 속으로 영영 흘러갔다. 그가 아버지를 느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순간은 아버지의 글을 통해서였다. 사샤는 아버지가 남긴 방대한 양의 저서를 아주 야금야금, 조금씩 읽었다. 마치 가장 맛있는 초콜릿을 한쪽에 제쳐 둔 채 가장 나중에 먹는 것처럼, 그는 아버지의 유산을 그렇게 소중히 소비했다.
그는 10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27년이 지났는데, 남긴 글의 80~90% 정도를 현재까지 읽은 것 같다"며 "아버지의 글을 읽으면서, 그리고 아버지를 기억하면서, 아버지와 연결돼 있다고 생각했다. 수많은 아버지의 저작물을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나는 행운아"라고 했다.
지난 9일 국내 한 언론사가 진행한 포럼 참석차 처음 내한한 사샤는 칼 세이건과 TV쇼 제작자 앤 드류얀의 딸이다. 그는 뉴욕대에서 극문학을 전공한 뒤 인간 존재를 다층적으로 탐색하는 글쓰기를 시도해 왔다.
그는 첫 책 '우리, 이토록 작은 존재들을 위하여'를 지난 2021년 국내에 출간했다. 책은 계절의 변화와 삶의 생장을 함께 엮었다. 태어나 성장하고, 늙고, 병드는 인간의 삶을 사계절의 변화 속에 녹였다.
자기 삶 속에 깃든 변화도 자연의 순환에 맞춰 조명했다. 아버지의 죽음, 연애의 목적, 각종 가족 행사, 아이의 탄생 순간 등을 통해 저자가 느낀 슬픔과 기쁨, 두려움과 경이의 순간들을 반짝거리는 문장으로 그려냈다.
"지구에서 가장 중요한 건 모든 것이 변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삶은 그런 변화와 연결돼 있습니다. 시간의 변화, 공간의 변화를 넘어 우리는 서로 소통합니다. 다른 삶, 문화, 종교와 과학 등 다양한 분야를 가로지르며 소통이 일어나죠. 자전축의 기울어짐 때문에 발생하는 계절의 순환은 우리 모두를 연결합니다. 저는 두 명의 아이를 키우는 데 내 삶과 그들의 삶이 얼마나 깊이 연결돼 있는지를 느끼며 어떤 경이감을 느끼곤 합니다."
그의 이런 생각은 "과학도 인간의 여타 문화 활동과 마찬가지로 문화 전반을 아우르는 총체적 관점에서 조명하고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한 아버지 칼 세이건의 관점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사샤는 "부모님께 배운 건 우리의 과학이 사회의 문화 속에 담겨 있다는 거였다. 기술과 과학도 문화의 한 부분"이라고 했다. 다만 현대 사회는 지나치게 과학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철학이 부재할 경우, 과학은 오용될 수 있다"고 지적하면서 "그런 측면에서 과학이 고립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칼 세이건이 쓴 '코스모스'는 출간된 지 4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과학 분야에서 독보적인 베스트셀러다.
사샤는 그 이유로 "보편 타당성"을 들었다. 그는 "이제는 모든 사람이 과학에 접근할 수 있다. 과학을 한다는 건 매우 어려운 개념이지만 명확하고, 열정적이며 즐겁기도 한 것"이라며 "'우리가 언제부터, 어디에서, 왜 여기에 있는가?'라는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고, 이는 책 '코스모스'가 제기한 질문"이라고 했다.
그는 아버지가 바라본 코스모스라는 거시의 세계에도, DNA라는 미시의 세계에도, 모두 '경이'가 숨어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우리가 사는 이 짧은 순간에도, 경이로운 아름다움과 의미가 있다고 했다. 삶과 죽음은 별개의 것이 아니라 우주 안에서 서로 마주 보며 영향을 주고받는 별들처럼 동행한다고 그는 설명했다. 그런 점에서 그는 더 잘 살기 위해서는 죽음을 기억하라는 의미의 라틴어 '메멘토 모리'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고 했다.
"죽음은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합니다. 그런 점에서 인생은 역설이죠."
buff2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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