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후 재정난에 … 세계 미술관 '티켓플레이션'
12년만에 처음 가격 인상 결정
휘트니·구겐하임도 줄줄이 올려
메트는 소장품 팔고 구조조정
명품 회사 손잡고 재정 확충도
코로나에 무료 정책을 펼쳤던
韓 리움미술관도 입장료 받아
물가가 오르면 지갑만 얇아지는 게 아니라 영혼도 가난해진다. 세계적인 미술관들이 코로나19 이후 재정난을 겪으면서 티켓 가격이 천장을 뚫고 날아가고 있다. 해외여행을 떠나면 미술관을 놓치지 않고 방문하는 미술 애호가들에게도 두려운 소식이다.
미국을 대표하는 뮤지엄인 뉴욕 현대미술관(MoMA)이 16일 성인 입장 티켓을 25달러(약 3만4000원)에서 30달러(약 4만530원)로 인상한다. 학생 요금은 14달러, 16세 이하는 무료를 고수했다. 가격 인상은 2011년 이후 처음이다. 글렌 D 로리 MoMA 관장은 "미술관 운영의 재정적 어려움으로 입장권 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었다. 전시 혁신과 공공 프로그램, 재정 안정을 위한 불가피한 결정이었다"고 설명했다.
최근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SFMOMA), 휘트니미술관, 구겐하임미술관이 티켓 값을 25달러에서 30달러로 연쇄적으로 인상한 데 이어 '티켓플레이션(티켓+인플레이션)'의 정점을 찍은 결정이다. 4월 시카고아트인스티튜트는 32달러(약 4만3000원)로 인상하면서 미국에서 가장 비싼 미술관으로 등극하기도 했다.
올해 3월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메트)도 25달러 기부(Pay you wish)를 권유하는 선택권을 없애고 뉴욕주 외부 관람객에게 25달러를 부과하기 시작했다. 뉴욕타임스는 메트가 작년 4000만달러(약 540억원) 적자를 기록하고 90명을 해고했으며, 건물 확장 계획도 철회할 정도로 경영난을 겪고 있다고 보도했다.
또 연간 예산 3억500만달러(약 4100억원) 중 14%인 4300만달러가 입장료 수입이며, 새 요금 정책이 연 600만달러(약 81억원) 추가 수입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예상했다.
대니얼 와이스 메트 CEO는 "뉴욕 시민과 세계 방문객들을 위해 새 요금 정책이 장기적으로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의 티켓 값이 고공행진을 하는 가운데 영국은 정부의 관광 활성화 정책으로 내셔널갤러리와 대영미술관, 테이트모던 등 세계적 미술관들이 변함없이 무료를 고수하고 있어 대조적이다. 정책에 힘입어 런던 대영박물관(410만명)과 테이트모던(388만명)은 나란히 작년 전 세계 뮤지엄 입장객 수 3, 4위에 올랐다.
해외 대형 미술관은 관광객 감소와 물가 인상으로 소장품을 내다 팔고 구조조정을 할 정도로 극심한 재정난에 빠진 상황이라 티켓플레이션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2020년 뉴욕 메트와 브루클린뮤지엄은 고전 걸작을 경매에 내놓아 운영비를 충당하기도 했다. 순수예술의 성지였던 미술관이 명품 회사와 손잡는 사례도 생겼다. 뉴욕 메트는 명품 시계회사 바쉐론콘스탄틴과 협업 소식을 알리기도 했다.
다만 한국은 세계적인 티켓플레이션 영향권에서 다소 벗어난 분위기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은 초저가 정책으로 개관 이래 10여 년째 4000원의 통합입장료를 고수하다 3월부터 5000원으로 책정했다. 국립중앙박물관도 상설전시는 무료다. 대형 전시는 수억 원의 비용이 들지만, 인건비도 남지 않는 가격에 전시를 하고 있는 셈이다.
코로나19 시기에 한시적 무료 정책을 펼쳤던 리움미술관은 1만8000원의 통합입장료를 다시 받기 시작했다. 호암미술관은 국민적 관심 속에 9월 막을 내린 김환기 회고전이 1만4000원의 입장료에도 15만명을 돌파하는 기염을 토했다. 국내 기획전시는 1만5000원~2만원대 가격이 유지되고 있다. 영화관 티켓 가격이 경쟁 대상이다. 올해 최고 흥행 전시인 서울시립미술관 에드워드 호퍼 회고전은 1만7000원으로 관람객 약 25만명을 동원했다.
미술계 관계자는 "영화 티켓보다 싼 미술관 티켓 가격 덕분에 서울 미술관들의 전시 흥행이 과거보다 빈번해졌고, 데이트족의 성지가 된 곳도 많다. 가성비 영향이 크다"면서 "티켓 수입으로 운영해야 하는 사립미술관으로서는 국공립 기관과 경쟁이 쉽지 않다. 국공립 미술관은 교육 목적을 위한 청소년 무료 입장 정책이 있는 이상 성인 입장료를 초저가로 고수할 이유는 크지 않다"고 말했다.
[김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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