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하 선생 비롯 국내 독립운동 재평가 필요, 윤 대통령도 공감"

정유선 기자 2023. 10. 10.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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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상현 전 국제형사재판소 소장 인터뷰

“팔을 걷고 분해 일어나면, 산과 바다도 떨었도다. 깊은 마음속에 맺힌 것이 아니었다면 어찌 처음부터 끝까지 이처럼 곧을 수 있었으랴. (고하 송진우 선생 비문 中)”

일제 강점기와 해방정국의 혼란기에 건국과 사회통합을 위해 헌신하다 총탄에 스러진 고하 송진우 선생의 일생과 사상을 담은 ‘거인의 숨결’이 지난 8월 출간됐다. 국제형사재판소(ICC) 소장을 지낸 송상현 서울대 법대 명예교수가 바로 고하 선생의 손자다. 서울 마포 유니세프한국위원회 접견실에서 송 교수를 만나 고하 선생의 삶과 사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위당 정인보 선생으로부터 ‘충무공보다 고하가 낫다’는 평가를 받았고, 한국 주둔 미 사령관 하지 중장으로부터 “조선은 송 씨의 불행한 별세로 조선 독립을 하루빨리 할 수 있는 기회를 잃었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걸출한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인, 사상가 이지만 고하 선생의 이름은 일반인에겐 익숙지 않다. 동아일보 사장으로서 손기정 선수의 일장기 말소사건을 주도한 인물이라고 하면 고개를 끄덕일지도 모르겠다.

송 교수는 이를 국내에서 독립운동한 사람들에 대한 저평가 탓이라고 본다. 그는 “독립운동 평가에서도 외제가 국산보다 좋은 모양”이라며 “어쩌면 무의식적인 사대주의일 수 있는데 외국에서 독립운동 했다고 하면 더 쳐준다”고 씁쓸해했다.

그는 “국내외에서 독립운동을 한 분들을 다섯 그룹 정도로 보는데 처한 입장은 달라도 모두 독립을 위해 희생하고 노력한 분들”이라면서 “특히 해외에서 풍찬노숙하며 애쓰신 분들도 국내에서 지지하고 뒷받침해드린 분이 없었다면 어려웠을 것이다. 해외 독립운동을 국내에서 뒷받침하고 정통성을 부여해준 사람이 바로 고하 선생”이라고 말했다. 해외로 독립 자금을 보내주고, 현지 신문을 낼 수 있도록 금속 활자를 보내주고, 국내에서도 이를 보도하고 독립정신 고취에 앞장섰다는 것이다.

독립선언서에 서명을 한 민족대표 33인 외에 서명 안한 15명은 외면하는 현실도 안타까워했다. 그는 “사실 3·1운동의 중심은 고하 선생이 교장을 맡았던 중앙학교 숙직실”이라면서 “만세운동을 한 번만 해서는 한 되니 2차, 3차, 4차 계속 배후에서 납세거부 운동, 노동운동 등을 계속 이어가려고 일부러 독립선언에 서명을 안 한 분이 15분 계신다. 그 중 한 분이 고하 선생”이라면서 “독립선언서를 직접 쓴 최남선도 33인 서명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서명을 안 했다고 훈격을 낮게한 것은 형식 논리”라면서 “실질적으로 한분 한분의 업적을 비교해서 그에 맞는 훈격을 드리는 게 맞다”고 말했다.

고하 선생이 암살 당할 당시 송 교수는 5살에 불과했지만 그는 생전 고하 선생의 모습을 생생히 기억했다. 그는 “할아버지가 손자가 생겨서 너무 좋아하셨다. 어릴 때부터 저를 끼고 하늘천 따지부터 시작해서 논어 대학 등 사서삼경과 우리 역사를 가르치셨다”고 말했다. 그는 “항상 저를 데리고 주무셨는데 만일 그날도 같이 잤으면 총탄에 맞아 이 세상에 없을 수도 있다”면서 “그날 따라 할아버지가 늦게 오시고 손님을 데려오셔서 손님 두분이랑 주무셨다. 당시 할아버지 요에 흐르는 피를 닦아내던 어머니 모습 등이 강렬하게 남아 있다”고 말했다.

고하의 손자로서 학생 때부터 미행 감시를 당하는 삶을 살았고, ‘아무개 손자인데 그것밖에 못 하느냐’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 굉장히 조심하며 살았다고 그는 회고했다. 집안에서 아무도 정치를 하지 않게 된 것도 암살의 트라우마 탓인데 송 교수 자신도 국무총리, 헌재 재판관, 청와대 수석 등 여러 공직 제안을 받았지만 응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송상현 서울대 법대 명예교수가 지난달 21일 서울 마포구 유니세프 사무실에서 국제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송 교수는 유니세프한국위원회 명예회장을 맡고 있다. 김정록 기자


송 교수는 윤석열 대통령의 서울 법대 시절 은사로, 석사 학위 논문 지도교수이기도 하다. 또 한동훈 법무장관과 최상목 경제수석의 결혼식 주례도 맡았다고 한다.

송 교수는 윤 대통령이 올 초 오찬 자리에 초대해 “해방 이후 우물쭈물하다가 공산당의 선전과 조직력에 남한까지도 다 적화가 될 뻔 했는데 그래도 고하 선생이 계셔서 남쪽 절반이나마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켜서 오늘날 우리가 이만큼 번영해서 잘 살게 됐다. 국내에서 온갖 탄압을 받으면서도 끝내 친일하지 않고 감투 준다는 것도 거부하고 끝까지 자유민주주의를 지켜준 고하 선생께 감사하고 다시 평가해야 된다’는 말을 하더라”고 전했다.

그는 “윤 대통령이 해방 전후사와 관련한 책을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의 기원’부터 한 30건 이상을 저자하고 제목하고 숨도 안 쉬고 얘기하더라”면서 “그만큼 공부를 많이 한다는 건데 고하 선생의 업적에 대해서도 파악을 하고 있어서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검사 출신이라고 조그만 권력 갖고 거들먹대며 술 먹고 골프나 치고 그러려니 하고 윤 대통령을 봤다가는 큰 코 다칠 것”이라며 “책을 굉장히 좋아하고 많이 읽기 위해 속독법까지 배운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는 윤 대통령의 은사로서 “윤 대통령은 굉장히 똑똑하고 기초가 탄탄한 사람이고, 또 잘못을 금방 깨닫고 고치는 자정 능력이 있는 사람, 사람을 만날 수록 점수를 따는 사람”이라며 국정운영에 대한 신뢰와 기대를 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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