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팔 전쟁] 팔레스타인 패싱하다 바이든표 중동평화안 '존망 갈림길'
"진작 예상된 결과" 뒷말…전문가 "현재로선 성사 가능성 '제로'"
(서울=연합뉴스) 유한주 기자 =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와 이스라엘 간 교전이 격화하면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추진해온 중동평화안이 휴지 조각이 될 수도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바이든 행정부가 '중동 데탕트'를 꿈꾸면서도 중동의 화약고인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효과적인 해법을 구상하지 않은 까닭에 예상된 악재라는 지적도 뒤따른다.
미국은 전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하던 시절부터 '아브라함 협정'을 주도하며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 간 관계 정상화를 추진해왔다.
아브라함 협정은 2020년 9월 미국 중재로 이스라엘과 아랍에미리트(UAE), 바레인이 국교를 수립하기로 한 외교적 합의다. 이 합의 이후 모로코도 이스라엘과 관계를 정상화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을 수정하는 데 집중했던 조 바이든 대통령도 아브라함 협정은 승계하겠다고 밝히는 등 중동 내 화해 무드에 공을 들여왔다.
내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는 그런 노력의 최대 결실이 될 수 있는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의 수교를 추진하기도 했다.
이는 그간 서로 적대적이지만 각각 미국의 동맹이자 우호국인 양국의 제휴관계를 구축해 중국의 중동 내 세력확장을 견제할 외교 성과로 주목됐다.
그러나 미국의 이런 노력은 7일(현지시간)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해 민간인을 무더기로 살상하면서 파탄 위기에 몰렸다.
양측 간 무력 충돌로 지금까지 이스라엘과 가자 지구에서 발생한 사망자는 최소 1천500명이다.
이스라엘은 처절한 보복을 예고했고 인도주의 참사 우려에도 가자지구에 지상군을 투입할 가능성도 내비쳤다.
이슬람권 내의 책임 있는 패권국을 표방해온 사우디는 이런 긴장 고조 속에 이스라엘도, 팔레스타인도 규탄할 수 없는 진퇴양난에 몰렸다.
미국의 중동평화안이 이처럼 무산될 위기에 몰린 원인을 두고 AP통신은 미국이 팔레스타인의 독립 요구 등을 등한시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실제 이번 사우디-이스라엘 관계 정상화 회담 추진 과정에서도 사우디는 팔레스타인 독립 국가 출범을 국교 정상화 전제로 제시했다.
그러나 이와 관련해 이스라엘 측 양보가 이뤄질 수 있을지는 계속 미지수였다.
아브라함 협약 체결 당시에도 팔레스타인은 이를 '이슬람에 대한 배신'이라고 비판하는 등 적대적 입장을 취했다.
AP통신은 하마스의 기습에 따라 미국이 이제는 팔레스타인의 독립 요구를 제쳐두고 '중동 데탕트'를 추진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 싱크탱크 '아랍 센터'에서 팔레스타인-이스라엘 프로그램을 책임지는 유세프 무나이예르는 팔레스타인을 제쳐두고 사우디와 이스라엘의 수교를 추진한 바이든 행정부에 "엄청나게 오만했다"는 평가를 내렸다.
다른 아랍 국가도 중동 평화를 위해 팔레스타인 문제를 간과해선 안 된다고 경고해왔다.
앞서 요르단 국왕 압둘라 2세는 지난달 이스라엘과 사우디의 관계 정상화가 낙관적이지만 그 자체로 안정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압둘라 2세 국왕은 "팔레스타인을 대충 무시하고 아랍인들과 거래한 뒤 얼른 다시 돌아갈 수 있다는 일각의 생각은 작동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스라엘과 아브라함 협정을 맺은 국가들조차 이스라엘인과 팔레스타인인이 죽어가는 상황에서 이 사안들에 대해 공개적으로 움직이기 어렵다"면서 "따라서 (팔레스타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진정한 평화는 결코 없을 것"이라고 일축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부 장관도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 목적이 부분적으로는 이스라엘과 사우디 간 관계 정상화를 막으려는 데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 같은 전반적 분위기와 양국 내정을 고려하면 이스라엘과 사우디의 관계정상화 합의가 이뤄질 가능성이 희박해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 싱크탱크 카네기국제평화재단의 애런 데이비드 밀러는 영국 시사지 이코노미스트 인터뷰에서 "이스라엘과 사우디의 합의를 끌어낼 미국의 능력은 최소한 현재로서는 '제로'(0)까지 줄어들었다"고 진단했다.
이스라엘이 지금과 같은 유혈 사태 속 팔레스타인에 양보할 가능성은 없고, 사우디도 곧 권력을 잃게 될 수 있는 이스라엘 지도부와의 협상을 서두르려 하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네타냐후 총리로서는 팔레스타인 무장조직 하마스에 자국민이 수없이 죽어 나간 상황에서 아랍권에 뭔가를 양보했다가는 지지기반인 극우 정파들을 잃고 실각할 각오를 해야 하는 처지다.
hanju@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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