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외교전문가' 바이든의 위기...'중국 견제' 올인하다 중동·우크라 다 꼬였다
이스라엘·사우디 다리 놓다 하마스 자극 역효과
지상군 파병은 자제… 다극화 도래 신호 해석도
외교 전문성을 자부하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외교 정책이 내년 11월 대선을 앞두고 꼬였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길어지는 터에 그가 안정화에 힘을 쏟은 중동에서마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전쟁이 벌어졌다. 패권 경쟁자인 중국과의 긴장도 여전하다. 재선 가도에 악재로 불거지지 않도록 대외 갈등을 관리해 보려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고 있는 셈이다.
무산된 안정, 요원한 종전
2021년 초 취임 당시 바이든 대통령이 그린 외교 정책의 큰 그림은 중국 견제에 집중할 수 있도록 나머지 지역의 분쟁은 최대한 막아 보자는 것이었다.
중동 정책은 이란에 초점을 맞췄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탈퇴한 2015년 이란 핵 협정을 복원해 핵 위협을 제거하려 했다. 하지만 타협점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마련한 차선책이 이스라엘과 아랍권 국가들의 관계 개선이었다. 이슬람 수니파 종주국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스라엘의 국교가 정상화하면 중동 정세가 안정될 것이라 기대했다. 반미 세력 이란을 고립시키고 중국 영향력도 줄일 수 있었다.
문제는 반작용이었다. 하마스를 자극하는 역효과가 발생했다. 사우디가 이스라엘과 가까워지면 입지가 좁아질 것을 걱정해 하마스가 이번 공격을 단행했다는 게 미 정부와 전문가들의 견해다. 이스라엘의 반격에 팔레스타인 가자지구가 폐허가 되면 사우디와 이스라엘의 수교는 동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 미국 정부는 9일(현지시간) 양국 관계 정상화를 계속 추진하겠다고 밝혔지만, 사우디 실권자인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는 10일 팔레스타인 편에 서겠다고 선언했다.
우크라이나를 전폭 지원한다는 구상에도 타격을 입게 됐다. 미국 행정부가 다음 달 중순까지 쓸 수 있는 임시 예산에는 우크라이나를 돕는 데 쓸 수 있는 돈이 없다. 미국인들의 피로감에 편승한 공화당이 추가 지원에 반대하는 반면 이스라엘 지원에 대한 지지는 초당파적이다. 우크라이나가 뒷전으로 밀릴 공산이 크다. 그러나 바이든 대통령이 포기하기에는 너무 멀리 와 버렸다. 독일 킬세계경제연구소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2월 개전 이후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보낸 돈은 728억 달러(약 98조 원)에 이른다.
중국 문제도 삐걱거린다. 꾸준한 구애 끝에 다음 달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회담할 것이란 관측이 있지만 성과와 관련해서는 회의론이 우세하다. 미 월스트리트저널은 “핵심 쟁점인 기술 경쟁과 대만 문제에 대해 어느 쪽도 양보할 준비가 돼 있지 않아 상호 불신이 더 깊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미국인 사망에 공화당 맹공
대선에 악재가 될 것을 우려하는 바이든 행정부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의 확전을 억지하고 있다. 이스라엘에 미국 지상군을 파견할 의향이 없다고 선을 그은 배경이다. 이란이 하마스를 다년간 지원해 왔다며 공모를 의심하면서도 확실한 증거를 찾지는 못했다고 발을 빼는 것 역시 비슷한 맥락으로 해석된다.
1973년 상원의원이 된 뒤부터 약 50년을 외교 정책 수립에 간여해 온 바이든 대통령에게도 지금 직면한 대내외 여건은 만만치 않다. 미 뉴욕타임스는 하마스의 공격을 “미국의 영향력이 약화하고 ‘다극화 체제’가 도래하는 것을 상징하는 사건”으로 분석했다. 중국 성장 방관과 큰 비용을 치른 이라크 전쟁, 굴욕적인 아프가니스탄 철군, 트럼프 전 대통령의 고립주의 등 역대 행정부의 전략적 실수들이 부른 미국의 역내 장악력 약화가 혼란을 부추겼다는 것이다.
정치 공세도 매섭다. 하마스의 공격으로 최소 11명이 사망하고 인질로 잡혀간 미국인도 있다는 사실을 바이든 대통령이 인정하자 트럼프 전 대통령 등 공화당 대선 주자들이 맹공을 퍼부었다. “하마스의 공격은 공화당 대선 주자들이 바이든 행정부와의 외교 정책 차이를 부각할 수 있는 기회”라는 공화당 인사의 발언에 백악관이 “끔찍한 비극을 기회로 여긴다”고 발끈하기도 했다.
워싱턴= 권경성 특파원 ficciones@hankookilbo.com
김현종 기자 bel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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