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스토리]미국 반도체 규제…삼성·SK "급한 불은 껐지만"
반도체 공급망 혼란 고려…추가 규제안에 촉각
미국 정부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중국 현지 공장에 대한 반도체 장비 반입 규제를 사실상 무기한 유예키로 했습니다. 미국 수출관리 규정에 따른 ‘검증된 최종 사용자(VEU)’로 지정해 향후 별도 허가 절차나 기간 제한 없이 미국산 장비를 공급할 수 있게 된 겁니다. 대중(對中) 반도체 사업에 대한 불확실성이 줄어들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한숨을 돌린 분위기입니다.
하지만 아직 안전궤도에 완전히 오른 것은 아닙니다. 이번 조치와는 별개로 미국 정부가 대중 반도체 규제 강화를 시사하고 나섰기 때문입니다. 이번 주 중 추가 발표가 예상됩니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대중 반도체 제재가 전반적으로 확대되면서 미·중 테크전쟁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 가능성이 크다”며 “향후 한국 기업들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도 예의주시해야 할 것”이라고 입을 모읍니다.
미국 정부가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중국 공장에 대한 반도체 장비 수출 통제 방침을 사실상 철회했습니다. 지난 9일 최상목 대통령실 경제수석은 “최근 미국 정부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중국 내 반도체 공장을 미국 수출 관리 규정에 따른 ‘VEU’로 지정하겠다는 최종 결정을 전해왔다”며 “이번 미국 정부의 결정은 한국 반도체 기업의 최대 통상 현안이 일단락됐음을 의미한다”고 밝혔습니다.
‘VEU’는 사전 승인된 기업에만 지정된 품목에 대해 수출을 허용하는 일종의 포괄적 허가 방식입니다. 미국의 수출통제 적용이 사실상 무기한 유예된다는 뜻입니다. 이는 한국 정부와 기업들이 가장 바랐던 시나리오이기도 합니다.
앞서 미국은 지난해 10월 미국 기업이 중국에 첨단 반도체 장비를 수출하는 것을 사실상 금지했습니다. 구체적으로 △16나노미터(㎚) 이하 시스템 반도체 칩 △18㎚ 이하 D램 △128단 이상 낸드 플래시 생산 가능 장비가 대상이었습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중국에 생산 거점을 둔 한국 기업은 ‘장비 반입 금지’에 특히 예민했었는데요. 반도체 특성상 장비 업그레이드가 전제돼야 제품 경쟁력을 갖출 수 있어서입니다.
당시에는 미국으로부터 1년 한시적 유예조치를 받았습니다. 문제는 유예기간이 올해 10월로 종료, 향후 사업적 불확실성이 커진다는 데 있었습니다. 때문에 한국 정부와 기업들은 미국 정부를 상대로 ‘무기한 연기’ 등을 놓고 물밑협상을 이어온 바 있습니다.
미국이 ‘무기한 유예’를 결정한 배경은 무엇일까요. 전문가들은 동맹국의 어려움을 이해하는 '외교적 차원'과 메모리 반도체 공급망 혼란을 막기 위한 '시장·경제적 차원'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미국 반도체산업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메모리 반도체 글로벌 점유율은 한국(삼성전자·SK하이닉스)이 58%로 선두인데요. 현재 삼성전자는 낸드플래시 메모리 생산량의 40%를 중국 시안 공장에서, SK하이닉스는 중국 다롄 공장과 우시 공장에서 낸드플래시 20%, D램 40%를 각각 생산하고 있습니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반도체전문연구원은 “만일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가 중국 공장의 문을 닫게 될 경우, 메모리 반도체 생산량에 차질이 크게 생겨 글로벌 시장의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며 “미국 역시 이러한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았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한국 기업들로선 일단 한 고비 넘긴 셈입니다. 하지만 안심하기엔 일러 보입니다. 향후 미국의 대중 추가제재안에 따라 부정적 파급효과가 이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전문가들은 △설계자산(IP) △전자설계자동화(EDA) △범용(레거시) 반도체 등에 대한 직접적 규제가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현 규제 내 중국이 다소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부분들입니다.
최근 화웨이 신제품에 탑재된 ‘7나노 반도체’ 역시 이러한 사각지대를 통해 생산됐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런만큼 미국의 추가 규제가 유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예상입니다. 다만 한국 기업들이 어떤 영향을 받을지는 미국 정부의 공식 발표 이후에나 가늠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김 연구원은 “미국이 중국의 반도체 기술을 제한하기 위해선 규제의 범위를 넓히는 것이 유일한 방향일 것”이라며 “IP와 EDA 등은 직접적 제재가 없어 불법 복제 위험에 노출돼 있었고, 화웨이가 레거시 공정 장비를 통해 첨단 반도체 흉내를 냈다는 점에서 이러한 부분들에 대한 추가 규제가 전망된다”고 말했습니다.
일단 한숨 돌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하지만 여전히 불씨는 살아있습니다. 미국 정부가 과연 어떤 내용을 들고 나올지에 국내 반도체 기업들의 촉각이 곤두서있습니다.
강민경 (klk707@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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