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하마스 충돌은 다극화 체제 전환의 상징”…팍스 아메리카나의 종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간 무력 충돌이 신 중동전쟁으로 확전될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이번 충돌이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영향력 약화와 다극화 체제로의 전환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뉴욕타임즈(NYT)는 9일(현지시간) 뉴스레터를 통해 “하마스의 공격은 세계가 새로운 혼란의 시대에 빠졌음을 보여주는 신호”라며 세계가 ‘다극화 체제’라는 새 질서로 전환되는 과정에 있다고 보도했다.
NYT는 하마스와 같은 일부 정치 집단과 국가들이 끔찍한 결과를 예상하면서도 더 큰 위험을 감수하려고 한다면서 그 배경으로 세계가 ‘팍스 아메리카나’(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평화)에서 벗어나 다극화 체제로 전환하고 있는 점을 꼽았다.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힘이 전과 같지 않은데다 새롭게 국제 질서를 재편할 국가도 등장하지 않으며 각자도생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것이다. 많은 국가의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역내 영향력이 미국보다 더 크다고 믿으며 이러한 경향은 자국의 이익을 위한 공격적 결정으로 이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아프리카 국가의 잇단 쿠테타, 인도의 극단적 힌두 민족주의의 대두, 중국과 대만 갈등 등 최근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분쟁들이 이러한 맥락에 있다고 보고 있다. 중국 정치학자 정융넨은 “국가 지도자들은 먹이를 노리는 호랑이처럼 야심이 가득 차 있으며, 옛 질서의 폐허 속에서 모든 기회를 찾으려고 애쓰고 있다”고 구질서의 붕괴를 묘사한 바 있다.
NYT는 미국 역대 행정부의 전략적 실책이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영향력 약화를 가속화했다고 지적했다. 값비싼 대가를 치른 이라크 전쟁, 아프가니스탄 철수, 지나친 중국 견제, 자국 우선주의 등으로 국제 사회에서 미국의 위신이 타격을 입었다는 것이다.
미국은 버락 오바마 행정부 이후 조 바이든 현 행정부까지 중국을 유일한 경쟁자로 지목하며 중동 등 세계 각국의 분쟁에 대한 개입을 줄여왔다. 결정적으로 미국 우선주의를 외치며 동맹국들과도 각을 세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를 거치며 스스로 ‘세계 경찰’의 역할을 포기했다는 평가다.
월스트리트저널도 이날 “하마스 공격의 주된 책임은 테러분자들에게 있다”면서도 “현재 사태는 지난 20년에 걸친 역대 워싱턴 행정부의 재앙에 가까운 실수들이 소용돌이를 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독재자들에 대한 트럼프 전 대통령의 호기심 어린 애정은 장기적으로 평화를 증진시키지 못했고, 바이든 정부 또한 중동에서 동맹국들이 테러리스트들에 공격당하는 것을 힘없이 지켜보고만 있었다”면서 “지난 3년간 세계가 훨씬 더 위험해졌다는 결론을 거부하는 것은 불가능해졌다”고 지적했다.
이 틈을 타 이스라엘,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튀르키예 등 중동 주요국들은 중동에서 자국의 영향력 확대에 열을 올려왔다. 다만 NYT는 “그럼에도 미국은 여전히 동맹과 평화를 구축하는 독특한 능력을 갖춘,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로 남아있다”고 덧붙이며 “하마스는 미국 정부가 (관계) 진전에 도움을 준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 간 (관계 정상화) 협정의 약화를 위해 공격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을 덧붙였다. 이스라엘과 사우디가 밀착할 경우 하마스의 후원자인 이란이 고립되고, 하마스보다 더 온건한 단체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에 사우디의 자금이 투입되면서 하마스의 입지가 더 좁아질 것을 우려했다는 것이다.
노정연 기자 dana_f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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