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지곤의 재밌는 화약이야기]<4> 세계 최초의 화염방사기 '맹화유궤'

강일 2023. 10. 10.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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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약의 발명과 화약무기의 등장은 전쟁과 인류역사 전반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건 중 하나다. 화약이 주목받은 것은 약용보다 군사용으로 쓰이면서부터다. 화기(火器), 즉 화약 무기는 화약의 폭발력으로 돌·화살·철탄 등을 발사하는 병기를 말한다. 고대의 화공 때 쓰이던 여러 가지 연장이나, 물리적 장치에 의해 거석을 투사하던 투석기인 석포(石砲)와는 구별된다. 오늘날 전쟁에서 화약은 소총에서부터 대포, 탱크까지 거의 모든 군사 무기에 쓰인다.

문헌상으로 전투에서 화약을 사용한 흔적이 처음 등장하는 시기는 당나라 때다. 대개 784년(당 덕종 원년)에 이희열의 반란군이 사용한 ‘방사책’(方士策)을 최초의 화기 사용으로 간주한다. 이희열은 지금의 개봉에서 황제를 칭하고 국호를 초(楚)라 정했다. 반군을 이끌고 송주(허난성 상구)를 공격할 때, 방사책으로 병영과 성벽 위의 방어물을 불태웠다는 기록이 전한다. 방사책의 실체는 화약 물질로 추정한다.

1126년 개봉 공성전. 화살이나 돌을 막는 병풍 모양의 방어기구인 목만(木幔)으로 공격하는 금군을 향해 송나라 군사가 맹화유궤와 질려포 등을 이용해 방어하는 모습 [그림=유지곤제공]

◇ 세계 최초의 화염방사기

송나라 때는 맹화유를 이용한 화염 무기 ‘맹화유궤(猛火油櫃)’도 만들었다. 서양에서 사용한 ‘그리스의 불’과 같은 원시적 형태의 화염방사기다. 맹화유는 물을 부어도 불이 꺼지지 않고 맹렬히 타올랐다고 하는데, 석유의 불순물인 나프타가 주성분이었다. 맹화유궤는 맹화유가 들어있는 연료통과 불붙은 맹화유를 뿜어낼 수 있는 펌프장치로 이루어졌다. 한 곳에 고정해 사용하는 장비라서 주로 수상전이나 공성전 때 수비군이 사용했다. 성벽을 기어오르는 적을 공격하거나 공성탑을 불태울 때 효과적이었다.

1126년 금나라가 북송의 수도인 개봉을 포위했을 때, 송군이 사용하는 맹화유궤, 화전과 화포 때문에 금군은 매우 고전했다. 맹화유궤는 화창 등의 개인화기와 대포 등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실용성을 잃었다.

950년경 둔황의 불화. 오른쪽 중간 부분에 그려진 야차가 화창과 화염병을 들고 있다. [그림=유지곤 제공]

◇ 최초의 화약 무기 출현은 당나라 말기~오대십국

최초의 화약 무기는 창끝에 종이로 만든 화염 분사용 화약통을 매달은 화창(火槍)을 꼽는다. 심지에 불을 붙이면, 화약이 연소되면서 화염이 전방으로 방사됐다. 근거리에서 적에게 화상을 입히거나 장비를 불태우는데 효과적이었다. 유황 등을 넣을 경우 독가스에 의한 중독 효과를 높일 수 있었다. 비록 화염방사는 1회밖에 할 수 없더라도, 적에게 심리적 충격을 주는 훌륭한 무기였다. 또 방사한 후에는 보통의 창으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여러 가지로 편리했다.

이화창(梨花槍)은 화창의 일종으로 가장 유명하다. 손잡이 길이가 약 2m, 창날의 길이가 약 30㎝이며 창날에 가까운 손잡이 끝 부분에 약 60㎝의 화염방사용 연료가 들어 있는 통을 부착한 것이다.

화창의 발명 시기는 오대십국(五代十國; 907∼960) 연간에 등장한 것으로 추정한다. 둔황 석굴에서 출토된 불화(佛畵)가 결정적 근거다. 불상의 오른쪽에 서 있는 야차 둘이 각각 화창과 화염병(?) 같은 것을 들고 있는 게 주목된다. 나프타가 주성분인 맹화유를 사기그릇에 채워 넣고 봉한 뒤 심지에 불을 붙인 다음 던지는 ‘수류탄’ 같은 무기라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비교적 자세하게 그려진 화창에서 나오는 화염의 형태로 볼 때, 화약 무기로 추정한다.

문헌상 화창을 묘사한 것은 1132년 남송의 이횡이 반란을 일으켜 덕안성(德安城:호북성 안육현)을 포위했을 때다. 성주 진규가 긴 대나무 여럿을 묶고 그 안에 철화포용 화약을 가득 채운 뒤, 성의 해자를 넘어오는 반란군의 공성용 사다리 천교(天橋)에 불을 질러 막아냈다고 한다. 남송은 효종 때부터 본격적으로 금나라와 전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화창은 여러 전투에서 사용되다가 제작 기술이 금나라로 넘어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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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곤 대표 22세에 자신의 이름을 걸고 유지곤폭죽연구소를 창업해 30대 시절 한국 대표 불꽃연출가로 활동했다. 독도 불꽃축제 추진 본부장을 맡아 활동 하면서 본인과 세 자녀의 본적을 독도로 옮긴 바 있으며, 한국인 최초로 미국 괌 불꽃축제, 하와이 불꽃축제 감독을 맡았다. 지금은 KAIST 미래전략대학원에서 공부하면서 로봇 관련 스타트업을 운영하고 있다.

유지곤 대표
/대전=강일 기자(ki0051@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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