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신 “가장 완벽한 복수는 용서”
“가장 완벽한 복수는 용서지요.”
국내 첫 밀리언셀러 <인간시장>을 쓴 소설가 김홍신(76)이 6년 만에 신작 장편 소설 <죽어나간 시간을 위한 애도>(해냄·사진)를 발표했다. 코로나19로 응급실과 음압병동에서 고통을 겪으며 완성한 책이다.
김 작가는 10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출간 기자간담회를 열고 “이데올로기 문제부터 시작해서 한국 사회에 좌우의 갈등이 너무 심해졌다”며 “용서와 화해를 바라면서 쓰게 됐다”고 말했다.
<죽어나간 시간을 위한 애도>는 딸이 아버지 한서진의 유고를 읽고 그의 삶을 추적해나가는 액자식 구성으로 시작된다. 1970년대 군부독재 시절, ROTC 출신 육군 소위 한서진은 사살된 북한 장교의 시신에 십자가를 꽂고 명복을 빌어준 죄로 ‘적인종’으로 몰린다. ‘적인종’, 그러니까 ‘빨갱이’로 낙인찍힌 한서진은 고문당하고 수감되며 자신과 삶과 가족을 잃고 오직 복수만을 꿈꾸다 인생 마지막 즈음에 용서라는 깨달음을 얻는다.
책은 김 작가가 1971년 육군 소위로 근무하며 적의 시신에 십자가를 꽂아주고 기도했던 경험을 모티브 삼아 썼다. 당시 그는 보안대에 가서 조사를 받았다. 이 경험이 무려 50년이 지나 소설로 탄생한 것. 김 작가는 “오래전에 구상했지만 군사독재 시절이 너무 길었고, 당시 보안대에서 전두환 핵심 측근에게 조사를 받았다”며 “세상이 좋아지기 전에는 출간하기 어렵겠다고 생각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집필을 위해 탈북민, 육군 형무소에서 근무했던 헌병과 변호사 등을 직접 취재했다고 전했다.
소설은 궁극적으로 ‘용서’ ‘애도’를 말한다. 책에는 주인공의 수난기와 복수심에 불타오르는 감정에 관한 묘사가 상당 부분 할애됐다. 저자가 말하고 싶은 ‘용서’라는 깨달음을 얻는 부분은 길지 않다. 김 작가는 “용서는 길게 고심해서 되는 문제가 아니다. 용서가 길어지면 자기를 죽이는 것”이라며 “그래서 짧게 정리했다”고 말했다.
그는 몇 년 전 당시 보안대에서 자신을 조사한 핵심 인물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초를 켜고 향을 피우며 108배를 했다고 전했다. “자기 마음을 정돈해서 나를 살리는 게 용서입니다. 그분이 좋은 곳으로 가시라고 기도하니까 마음이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번 책은 작가가 코로나19를 오롯이 겪어내고 나왔다. 2021년 2월 초고를 완성한 김 작가는 그해 12월 코로나19로 응급실과 음압병실을 한달간 오갔다. 병원에서도 원고와 책을 놓지 않았다. 그는 “죽음의 공포와 절대적 고독감을 깊게 느꼈다”고 말했다. 인간은 고통을 겪은 후에야 내려놓기를 배우게 된다. 그는 “내려놓는 연습을 이 소설 때문에 함께했다”고 밝혔다.
김 작가는 이날 백발로 기자들 앞에 섰다. 그동안 한 달에 두 번씩 검은색으로 염색해오다 이제 염색을 하지 않고 스프레이를 뿌리지 않아도 돼 편하다고 했다. “그동안 너무 많은 것을 끌어안고 살았구나 싶습니다.”
그는 여전히 만년필로 원고지에 글을 쓴다. 만년필로 쓰다보니 손에 마비가 오고 허리도 좋지 않다. 요로결석으로 두 차례나 수술한 탓에 체력적으로도 힘들다. 김 작가는 그럼에도 만년필을 내려놓지 않겠다고 했다.
“3년 뒤가 등단 50주년인데 그때까지 열심히 소설을 써서 140권을 넘기겠습니다. 제 기도 중 하나는 남을 기쁘게 하고 조금이라도 세상에 보탬이 되게 살자는 거예요. 원고 쓰는 속도는 느리지만 죽는 날까지 정진해서 <인간시장>부터 제가 쓴 책들을 사랑했던 독자들에게 받은 사랑을 보답하는 방법을 찾아보려 합니다.”
임지선 기자 visi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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