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고 강한, 서평연대 스무 번째[출판 숏평]

기자 2023. 10. 10.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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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엠마뉘엘 카레르 지음 / 윤정임 옮김 / 열린책들)



‘적’은 실화다. 화자도 작가 엠마뉘엘 카레르다. 카레르는 5쪽에서 ‘나’로 등장한다. 그는 마침 필립 K. 딕의 전기에 대한 글을 마쳤다고 하는데, 실제 카레르는 1993년에 ‘나는 살아 있고 당신들은 죽었다. 필립 K. 딕의 전기’라는 책을 출간한 바 있다.

그는 아내와 아이들, 부모까지 무참히 살해한 장클로드 로망과의 서신, 면회를 통해 거짓말과 종교적 회개를 엮어 한 인간에서 나아가 인간 전체의 정체성을 묻는다(이런 철학적인 주제는 리들리 스콧의 ‘블레이드러너’, 드니 빌뇌브의 ‘블레이드러너2049’와도 맥이 닿아 있다). 기가 막힌 건 살인범 장클로드 로망은 바칼로레아 철학 시험에서 “20점 만점에 16점이라는 좋은 점수를 받았는데 그가 시험을 치렀던 1971년 6월 학기에 대학에서 제안한 세 개의 주제 중에서 그가 택한 것은 ‘진실이란 존재하는가’였다.”

‘적’은 쉬운 문장으로 빠르게 읽히는 ‘대중적 재미’라는 외피에 ‘철학적 질문’을 내포하고 있다. “악마를 규정하는 최종적인 의미는 거짓말쟁이라고 한다”는 카레르의 말을 되새기며, ‘논픽션 소설’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카포티의 ‘인 콜드 블러드’와 비교하며 읽어 보길 권한다. (김미향 / 출판평론가, 에세이스트, 콘텐츠미디어랩 에디튜드 대표)

김미향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이창현 지음 / 유희 그림 / 사계절)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2



두근거리며 첫 독서모임에 참여한 ‘노마드’가 1분 만에 퇴장해 버린다, 다음에 이어지는 대사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내뱉고는.

“저도 여러분처럼 독서중독자로… 자기개발서에 빠져 살고 있습니다!”

(일동 경악).

그리고 모임원들 사이에서 이를 바라보는 흰색 털북숭이 고릴라가 있다. 이 모임의 구성원이다. “누구나 인문주의자가 될 수 있고, 누구나 이 자유로운 공동체에 들어올 수 있다”는 슈테판 츠바이크의 ‘에라스무스 평전’에 따라 심지어 고릴라마저 포용한, 그렇지만 자기개발서 읽는다는 가짜 독서광(?)은 추방해 버리는 이 수상쩍은 모임은 무엇이란 말인가. 단언컨대 어릴 적부터 ‘독서광’ 소리를 듣고 자라온 이들이라면 뼈아프게 공감할 헛소리들이 쏟아진다. 곳곳에 인용된 고전 인문 명작들은 반갑기 짝이 없고, 등장인물들이 꺼내 놓는 독서 꿀팁들은 놀랍게도 실용적이다. 자학에 가까운 개그들이 ‘책 안 읽는 세상’에서 독서광으로 살며 억눌러 왔던 울분을 폭발시키듯 휘몰아친다. 정리하자면 ‘고품격, 고농도, 고지식, B급, 병맛, 인문학 개그’다. ‘뜨거운 아이스 아메리카노’ 같은 말이지만, 부디 서점에 가서 딱 다섯 장만 넘겨 읽어 보길…. ‘아아’나 ‘뜨아’만으로는 만족되지 않을 새로운 세계가 펼쳐질 테니까. (박소진 / 문화평론가, 웹소설 작가, 9N비평연대, 한국문화콘텐츠비평협회 홍보위원)

박소진



■그여자가방에들어가신다(김진희 외 지음 / 홈리스행동 생애사 기록팀 기획)

그여자가방에들어가신다



사람이 어떻게 외로워지는가에 대한 책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보다는 왜 그 사람이 외로울 거라고 예단했는지 되짚어 생각하게 하는 책이었다. 가족을 떠난 결단은 내 삶의 한 단면과 닮아 있었고, 이들 역시 삶의 많은 순간 누군가를 돌봐 왔다는 사실 앞에 고개 숙이게 된다. 독이 되는 관계를 떠날 수 있는 힘, 버려진 자기 짐을 쓰레기통에서 꺼내 보이며 내 것이라 목소리 높이는 힘, 아무도 내어 주지 않는 자기 자리를 비집고 깔아 만드는 힘…. 그렇게 결국 살아 낸 이 여성들의 힘을 나도 가지고 싶다. (서경 / 출판편집자, 9N비평연대)

서경



■장녀해방일지(김시은 지음 / 김앤작컴퍼니)

장녀해방일지



나는 K-장녀다. 부모님이 이혼하기 전, 가족 구성원이 다 함께 식사시간을 가질 때면 엄마와 나는 상을 차렸고 아빠와 남동생은 TV를 봤다. 갖고 싶은 게 있어도 첫째니까 바라선 안 된다고 생각했으며 훈육을 빙자한 아빠의 폭력 또한 장녀인 내게 기대가 높아서 그런 거라고 합리화했다. 장녀인 저자는 노력한다. 사랑받기 위해, 인정받기 위해. 그리고 남동생에게 아낌없이 지원하는 부모를 짝사랑하며 헌신과 희생의 아이콘을 자처한다. 설령 엄마의 감정 쓰레기통이 된다고 해도, 내게 줄 돈 300만 원이 아까워 잠수 타는 아빠가 미워도, 외할머니한테서 끝까지 이름 한 번 불린 적 없어도. 장녀의 인생 루트는 가족에게 평생 헌신하기와 마침내 손절하기로 나뉘기 마련이니까. “daughter is free!”를 외치며 해방되고 싶은 K-장녀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김정빈 / 출판칼럼니스트, 9N비평연대, 한국문화콘텐츠비평협회 홍보위원)

김정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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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엄민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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