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만든 새 시장…글로벌 '위성 대장'들이 韓 스타트업 반기는 이유 [긱스]
인공지능(AI) 기술은 우주 산업도 바꾸고 있습니다. 저화질에 비쌌던 위성 영상 데이터가 AI를 만나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 있습니다. 관련 기술은 토종 스타트업들이 두각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최근엔 이들 업체가 해외의 대형 위성 영상 공급 사업자와 연달아 협력 구도를 짜고 있습니다. 협력을 성사한 국내 스타트업의 '무기'와 이를 받아들인 해외 업체의 속내, 나아가 추가적인 성장을 위해 스타트업들에 주어진 숙제는 무엇일지 한경 긱스(Geeks)가 알아봤습니다.
토종 위성 스타트업이 글로벌 위성 영상 공급 업체들과 합종연횡을 가속화하고 있다. 공통적으로 AI를 이용해 영상 품질을 키우는 곳들이 해외 업체들 인정을 받아 파트너십을 따내고 있다. 데이터 확보가 물리적으로 어렵다는 위성 영상의 특징 때문에, 보완책으로 꼽히는 AI 기반 화질 개선 기술은 더욱 주목받는 추세다. 정부 기관의 매출 의존을 벗어나, 민간 대상으로 자체 판로를 확대하는 것은 이들 스타트업의 과제로 남아있다.
해외 대기업과 위성 영상 같이 판다
스타트업 업계에 따르면, 위성 영상 분석 업체 에스에이아이(SIA)는 지난달 말 태국 방콕에서 미국 위성 영상 공급 기업 플래닛랩스와 솔루션 공동 공급 계약을 처음으로 체결했다. 계약 대상은 파푸아뉴기니, 베트남, 말레이시아, 필리핀, 한국 등 5개 국가의 플래닛랩스 리셀러(총판사)들이다. SIA의 생성 AI 기반 해상도 개선 서비스 ‘슈퍼엑스(SuperX)’를 플래닛랩스의 위성 영상 데이터와 함께 판매하는 것이 계약의 주요 골자다. 각국 총판사는 두 가지를 번들로 제공하게 된다.
플래닛랩스는 미 샌프란시스코에 본사를 둔 민간위성 기업이다. 지구 관측용 위성 분야의 세계적 강자로, 뉴욕증권거래소(NYSE) 상장사로, 지난 6일 기준 시가총액은 7억3986만달러(약 1조원)다. 3m급 해상도(가로·세로 3m 이미지)를 기준으로 24시간 이내에 전 세계 위성 영상을 찍을 수 있다. SIA와는 지난 5월 파트너십을 체결하고 솔루션 공동 공급을 위한 논의를 시작했다. 이포원 SIA 사업개발실장은 “플래닛랩스는 원자재 업체, SIA는 가공 역할을 맡는 회사로 비유할 수 있다”며 “SIA의 ‘슈퍼 레졸루션(초해상화)’ 기술이 영상 품질 확대에 주효한단 점을 인정받은 것”이라고 말했다.
SIA는 2018년 설립됐다. 딥러닝 기술을 기반으로 지구 관측 데이터 분석 서비스를 제공한다. 주요 솔루션인 슈퍼엑스는 AI 기반 초해상화 기술을 활용해 만들었다. 원래 사전 학습된 이미지를 기반해 저해상도 영상을 고해상도로 변환하는 기술인데, 게임이나 의료 업계에서 쓰여왔다. SIA는 이를 응용해 위성 영상 내 품질이 낮은 영역을 AI가 스스로 찾아내고 화질을 개선하는 솔루션을 만들었다. 이 회사는 플래닛랩스의 주요 경쟁사인 미 막사테크놀로지스와도 위성 이미지 분석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추후엔 블랙스카이, 카펠라스페이스 등 미국의 다른 위성 영상 공급 업체들과도 협력을 확대할 예정이다.
AI가 촉발한 '화질 개선' 전쟁
스타트업 다비오 역시 막사테크놀로지스, 플래닛랩스, 에어버스 디펜스앤드스페이스와 파트너십 관계다. 2012년 설립된 다비오는 실내지도 데이터 서비스와 항공 및 드론 사진을 기반으로 공간 정보를 추출하는 사업을 한다. 최근 집중하는 영역은 인공위성 영상을 바탕으로 공간 정보를 파악하는 서비스다. 이 회사의 ‘지오 인텔리전스’ 솔루션은 AI를 기반해 인공위성 영상 화질을 개선할 수 있는 기능이 탑재돼 있다.
다비오는 지난 2월 해상도 50㎝ 단위 위성영상으로 해상도 25㎝ 항공영상보다 높은 정확도를 구현하는 AI 영상 알고리즘을 개발하기도 했다. 위성영상으로 도로정보를 구축한 뒤, 국토지리정보원 공공데이터와 비교했더니 정확도가 95%를 넘어섰다는 설명이다. 기술을 키운 다비오는 특히 막사테크놀로지스와 파트너십 체결 내역을 공개하며 협력을 가속화하고 있다. 영상을 받아오기도 하고, 합작 프로젝트를 수행하기도 한다. 다비오 관계자는 “막사테크놀로지스가 제공할 수 있는 최대 해상도가 30㎝인데, 초해상화 기술을 활용하면 더 낮은 급의 해상도로도 고화질 영상을 만들 수 있다”며 “해외사들 AI 기술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마치 전기차 배터리 기업이 전기차를 직접 제작하지 않는 것처럼 영상을 고도화하는 AI 기술은 다비오와 같은 업체들이 발전시키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선 이 밖에도 나라스페이스에크놀로지, 메이사플래닛 등 다양한 스타트업이 비슷한 AI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원리는 대부분 비슷하다. 통상 지표 관측 영상은 항공, 드론, 위성을 통해 확보된다. 해상도는 드론이 가장 높지만, 넓은 영역을 촬영할 수 있는 것은 단연 위성이다. 저궤도(300~1500㎞) 위성은 한 번에 100㎢의 영상도 찍을 수 있다. 자연히 화질은 떨어진다. 보완책으로 떠오른 AI는 합성곱 신경망(CNN), GAN(경쟁 네트워크) 등의 기술이 활용되며 해상도 개선을 촉발시켜왔다. 이미지의 특징을 학습하고, 다수 이미지의 추출 정보를 결합할 수 있는 AI는 현재는 용량이 매우 큰 위성 영상에도 적용될 만큼 발전된 상태다. 여기에 객체를 탐지하고 시계열 변화를 알아내는 AI 기술까지 합쳐져 새 서비스가 탄생하는 양상이다.
사업 모델 개발 '책임' 맡은 스타트업들
위성 영상 사업은 크게 세 가지 영역으로 분류된다. 영상을 찍을 위성 자체를 만드는 사업자, 쏘아올린 위성으로 영상을 촬영해 파는 업체, 찍은 영상을 보다 세밀히 분석해 되파는 업체가 있다. 막사테크놀로지스, 플래닛랩스 등 글로벌 시장에서 몸집을 키워온 곳들은 대부분 두 번째 업체에 해당한다.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위성 영상 제공 업체들은 사업의 약 80%를 정부에 기대며 성장해왔다”고 귀띔했다. 주로 군이나 정보기관 등 국방 분야에서 방대한 영상 데이터를 공급하며 수익을 내왔던 것이다. 위성지도 등을 제외하면, 민간에선 상대적으로 비싸고 화질이 떨어지는 위성 영상을 사업적으로 활용하려는 시도가 드물었다는 평가다.
최근엔 양상이 달라지고 있다. AI 기술의 발달로 위성이 찍은 영상을 활용해 고객 수요를 맞추려는 업체들이 늘고 있다. 대표적으로 메이사플래닛은 건설 사업자를 타깃하고 있다. 메이사플래닛은 항공영상 분석 스타트업 메이사와 한국항공우주산업(KAI)가 지난해 출범시킨 조인트벤처(JV)다. 이 회사는 막사테크놀로지스, 플래닛랩스로부터 위성 영상을 구매해서 화질 개선·객체 탐지 등 AI 기술을 덧대 국내 건설사의 시공 현장 분석을 돕는다. 글로벌 위성 영상 제공 업체들은 스타트업의 성장을 반기고 있다. 이들 입장에서 메이사플래닛은 영상을 사줄 새로운 고객이다. SIA와 같은 업체는 고객임과 동시에 정부나 공공기관 등 기존 고객에게 보다 품질이 높은 영상을 제공할 수 있는 파트너이기도 하다.
스타트업들에 주어진 마지막 숙제는 판로 개척이라는 평가다. 민간 기업의 위성 영상 비즈니스 수요를 끌어내는 역할은 기성 해외 업체보다 스타트업이 적극일 수밖에 없다. 최근 우주 산업 중심축을 민간으로 이전하려는 ‘뉴스페이스’ 움직임이 글로벌에서 확산하며, 민간 위성 수가 많아지고 발사 기간이 단축된 점은 호재다. 아직은 스타트업의 주요 고객도 정부와 공공기관이 많지만, 분석할 위성 영상 자체가 다양해지고 있다. 대형사 협력을 레퍼런스 삼고, 초해상화 기술과 맞춤형 AI 분석으로 농업·교통·에너지 등 분야에서 최종 소비자를 설득할 전략을 짜는 업체가 늘고 있다.
김동영 메이사플래닛 대표는 “아직 위성 영상 분석 시장이 민간에서 활발하게 개화돼 있지 않다 보니, 기성 해외 업체는 스타트업에 무료로 위성 영상을 제공하거나 분석 파트너십을 체결하는 형태의 지원도 이어가고 있다”며 “서로의 수요가 맞아떨어지는 상황으로, 스타트업이 고객 요구에 맞는 비즈니스를 발굴한다면 시장 전체를 키울 수 있는 ‘윈윈’ 구조를 형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시은 기자 s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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