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강 상류 하천변 점령한 ‘가시박’···자치단체 대책 마련에 전전긍긍[현장에서]
“가시박이 강가 주변을 뒤덮은 것은 물론 가로수와 전신주까지 타고 올라갔어요. 식물이 이렇게 흉물스럽게 느껴진 건 처음인 것 같아요.”
지난 7일 강원 춘천 서면 금산3리 류천교 위에서 북한강 지류인 금산천 물길을 바라보던 박지현씨(39·서울 송파구)가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박씨는 초등학생 자녀 2명과 이 곳을 지나던 중 하천을 뒤덮은 가시박 군락을 목격했다.
“괴물 같다”는 딸의 말을 듣고 길 옆에 자동차를 세웠다는 박씨는 “금산천 주변을 보니 눈살이 절로 찌푸려졌다”고 말했다. 그는 금산천 제방을 넘어 7~8m 높이 가로수까지 점령한 가시박 넝쿨을 손으로 가리키며 “어떻게 퇴치할 수 있겠나. 북한강 상류가 자칫 가시박 등 유해 외래 식물만 번성하는 ‘녹색 사막’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화천에서 춘천 방향으로 이동하며 살펴본 북한강 상류의 풍광은 3~4년 전과 달랐다. 한해살이 풀과 각종 나무가 자생하며 아름다운 풍광을 연출했던 옛 모습은 좀처럼 찾기 힘들었다.
대신 북한강 지류인 화천천 주변과 춘천댐·의암댐 인근 도로 경사면 등엔 가시박이와 또 다른 유해 식물인 단풍잎돼지풀 등이 뒤엉켜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가시박이는 의암댐 인근 북한강 자전거길과 국도를 넘어 국내 100대 명산 중 하나인 삼악산 밑 자락까지 침범한 상태였다.
가시박은 북미가 원산지로, 1980년대 후반 오이류 등 덩굴성 채소의 접붙이기 용도로 국내에 도입됐다. 그러나 허술한 관리로 생태계에 유입되면서 강변 등을 중심으로 크게 확산하고 있다. 가시박이 토종 식물을 휘감아 고사시키는 주범으로 알려지면서 환경부는 2009년 ‘생태계 교란 유해식물’로 지정했다.
박명학 춘천환경운동연합 상임의장은 “번식력이 강한 가시박이 물길을 따라 번지면서 대규모 군락을 이뤄 춘천댐과 의암댐 주변에서 우점종으로 자리 잡았다”며 “가시박을 효과적으로 제거하기 위해서는 5월 개화 이전인 유목을 뿌리째 뽑아야 한다”고 말했다. 박 상임의장 “이대로 두면 속수무책인 상황이 되는 만큼 한강수계기금을 투입하고, 공무원과 사회단체 회원·군인·주민 등 인력과 장비를 총동원해 퇴치작업을 벌여야 한다”고 말했다.
강원도에 따르면, 관내 18개 시·군의 생태계 교란 유해식물(가시박·단풍잎돼지풀 등) 분포 면적은 지난달 말 기준으로 축구장의 1612배 가량인 1150만8000㎡에 달한다. 이 가운데 북한강 상류 지역인 춘천(160만㎡)과 화천(24만5000㎡)의 생태계 교란 유해식물 면적이 16%를 차지한다.
춘천·의암댐 등으로 수변구역이 넓은 춘천의 경우 가시박과 단풍잎돼지풀 등의 분포면적은 지난해 120만㎡에서 올해 160만㎡로 늘어났다. 이에 따라 춘천시는 지난해 72만1969㎡ 생태계 교란 식물을 제거한 데 이어 지난 5월 고구마섬에서 공무원과 시민단체 회원 등 200여명이 가시박 퇴치 작업을 벌이기도 했다.
이런 노력에도 잇단 집중호우 등 이상기후의 영향으로 가시박 등 생태계 교란 유해식물의 확산세가 쉽게 꺾이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면서 환경 당국과 자치단체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원주지방환경청은 생태계 교란 식물 제거사업 활성화를 위해 지역 기업을 대상으로 ‘1사 1 생태계 교란 식물 제거 협약’을 확대하고 있다. 자치단체들도 예산 투입을 늘리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강원도 관계자는 “비무장지대의 우수한 생태 환경을 지키기 위해 14년 전부터 철원·화천·양구·인제·고성 등 민통선 일원 5개 군에 국·도비를 지원해 생태계 교란 식물 제거 사업 추진해왔다”며 “가시박 등이 강원도 전역으로 확산한 점을 고려해 2021년부터는 춘천·원주·강릉 등 나머지 13개 시·군에도 국·도비를 모두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강원도 내 18개 시·군의 생태계 교란 식물 제거작업에 투입된 예산은 지난해 14억6000만원에서 올해 18억700만원으로 23.7%가량 늘었다”며 “정부에 국비 지원을 늘려 줄 것을 지속해서 건의하고 있다”고 했다.
최승현 기자 cshdmz@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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