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는 사랑을 노래해’ 김남조 시인 별세…향년 96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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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시가 다 사랑을 노래한다는 믿음으로 최근까지 시를 써온 김남조 시인이 10일 영원히 펜을 놓았다.
6·25전쟁의 혼돈 가운데 '어느 산야에고 구르는 돌멩이처럼 목숨만 갖고 싶다'고 읊조린 20대 시인은 아흔 살이 넘어서도 시집을 내는 등 삶의 깨달음과 사색을 꾸준히 시어에 담아냈다.
시인은 2016년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1000편의 시를 썼다 해도 1001번째 시를 쓸 때 언제나 두려움을 갖고 임하게 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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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의 혼돈 가운데 ‘어느 산야에고 구르는 돌멩이처럼 목숨만 갖고 싶다’고 읊조린 20대 시인은 아흔 살이 넘어서도 시집을 내는 등 삶의 깨달음과 사색을 꾸준히 시어에 담아냈다.
‘내가 불 피웠고/나그네 한 사람이 와서/삭풍의 추위를 벗고 옆에 앉으니/내 마음 충만하고/영광스럽기까지 했다//이대로 한평생이어도/좋을 일이었다’(‘나그네’에서) |
시인은 2016년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1000편의 시를 썼다 해도 1001번째 시를 쓸 때 언제나 두려움을 갖고 임하게 된다”고 했다.
오랫동안 심장이 좋지 않아 치료를 받았던 그는 2013년 17번째로 펴낸 ‘심장이 아프다’에서 “노년의 육체적 고통 속에서도 숨 쉬는 일이 위대하고 가슴 벅차게 느껴진다”며 “80년을 살고 나니 생명의 갸륵함을 느낀다. 그러니까 주어진 시기까지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한다”고 했다. 시인의 세례명은 마리아 막달레나. 새벽에 일어나면 먼저 세상을 떠난 남편(조각가 김세중)이 깎아 만든 마리아상 앞에서 삼종기도를 올리고 하루를 시작했다.
1927년 대구에서 태어난 시인은 일본 규슈(九州)에서 여학교를 마쳤고 1951년 서울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했다. 1948년 대학 재학시절 ‘연합신문’에 시를 발표하며 문단에 발을 내디뎠지만 시인 자신은 첫 시집 ‘목숨’(1953년)을 문학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목숨’은 6·25전쟁으로 부산에 피란 갔다가 펴낸 책이다.
이후 시집 ‘정념의 기’(1960년), ‘풍림의 음악’(1963년), ‘잠시, 그리고 영원히’(1965년) 등을 발간하며 왕성한 창작력을 보여줬다. 모윤숙, 노천명의 뒤를 이어 1960년대 여성 시인의 계보를 다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굴곡진 시대 상황, 화려한 경제 발전의 이면에 흐르는 땀과 눈물을 시인은 지나치지 않았다. 후기작에서는 생명의 은총을 깊이 묵상했다. 초기작에 드러난 인간성에 대한 확신과 왕성한 생명력을 통한 정열의 구현을 거쳐 기독교적 인간애와 윤리의식을 강조했으며, 후기로 갈수록 더욱 심화된 신앙의 경지를 보여줬다.
“나는 근본적으로 삶을 긍정합니다. 일제강점기, 광복, 6·25전쟁을 겪으면서도 살아남았듯 아무리 현실이 힘들어도 사는 것 자체가 의미 있고 행복한 일 아니겠어요. 한여름의 땡볕은 고통스럽지만 곡식을 익게 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지요.”
동일본 대지진 참화 앞에서도 시인은 기도에 응답하지 않는 신을 원망하지 않고 신에게 기도해달라고 간구한다.
‘이제는/신께서 기도해주십시오/기도를 받아오신 분의/영험한 첫 기도를/사람의 기도가 저물어가는 여기에/깃발 내리듯 드리워주십시오’(‘신의 기도’ 중) |
고인은 마산고교, 이화여고에서 교편을 잡은 뒤 성균관대, 서울대 강사를 거쳐 1955~1993년 숙명여대 교수를 지냈다. 한국시인협회장, 한국여성문학인회장을 역임했다. 숙명여대 명예교수,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이다. 1992년 3·1문학상, 1993년 국민훈장 모란장, 1996년 대한민국 예술원 문학부문 예술원상, 1998년 은관문화훈장, 2007년 만해대상 문학부문상을 받았다. 남편 김세중 조각가와 함께 지내던 서울 용산구 효창동 자택을 2015년 사재 50억 원을 들여 리모델링해 문화예술공간 ‘예술의 기쁨’을 개관했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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