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지상군 투입 계획 없다”…확전 자제 ‘안간힘’ 바이든 정부
미국이 이란과 레바논 무장단체 헤즈볼라에 팔레스타인 무장조직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에 가담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미국은 또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을 테러 행위로 규정하면서 이스라엘에 미 지상군 파병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재선에 도전하는 조 바이든 대통령의 대외정책이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에 이은 이스라엘-하마스 분쟁 발발로 시험대에 오르자 ‘중동 전쟁’으로의 확전을 막기 위해 골몰하는 양상이다.
찰스 브라운 미 합참의장은 9일(현지시간) 이스라엘 위기에 이란이 개입하지 말 것을 경고하면서 사태 확전을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고 로이터통신이 전했다. 브라운 신임 합참의장은 우크라이나 국방연락그룹 회의 참석을 위해 벨기에 브뤼셀로 이동하는 미 군용기 내에서 동행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우리는 이란에 (개입하지 말라는) 매우 강한 메시지를 보내고 싶다. 우리는 사태 확산을 원치 않고, 이란이 이 메시지를 분명히 이해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미 국방부 고위 당국자도 앞서 브리핑에서 “하마스의 공격 이후 급파한 최신예 핵항공모함 제럴드 포드호를 주축으로 한 항모전단이 동지중해에서 해상·공중 작전을 수행하고, 역내 동맹과 파트너 국가를 안심시키고, 지역 안정을 보장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당국자는 그러면서 이번 대비 태세 강화 의미를 “이스라엘 방위에 대한 미국의 지지를 말 뿐이 아니라 행동으로 명확히 보여준 것”이라며 특히 “이란과 헤즈볼라, 역내 다른 대리자 등 현 상황을 악용해 분쟁을 고조시키려는 이들에 대해 억제력을 보여주는 신호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적들은 (분쟁 고조 전에) 두 번 생각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이스라엘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을 거듭 약속하면서도 미 지상군 투입 등 전쟁 직접 개입을 시사할 수 있는 행위에는 선을 긋고 있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이날 전화브리핑에서 미국이 이스라엘의 안보 지원 요청에 신속하게 응답하고 있다면서도 “미국 지상군을 이스라엘에 배치할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커비 조정관은 또 이란 배후설과 관련 “이란은 하마스를 다년간 지원해왔다”면서 양측이 공모했을 가능성을 언급하면서도 이란이 이번 공격에 직접 개입했다는 ‘스모킹건’은 찾지 못했다고 강조했다.
바이든 대통령도 이날 미국인 최소 11명이 사망했다고 발표하면서 하마스의 공격에 대해 ‘전쟁’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고 “테러 행위”로 규정했다. 미 국방부 고위 당국자도 이번 충돌이 기존과 차원이 다르다면서 “이것은 이슬람국가(ISIS) 수준의 야만행위”라고 밝혔다.
미국 정부가 이스라엘 정부와 달리 ‘전쟁’ 용어 사용을 자제하고 이란 개입설에도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 데는 이번 사태가 중동 다른 지역의 분쟁으로까지 비화할 가능성을 막으려는 의도가 담긴 것으로 보인다. 이란이 후원하는 헤즈볼라가 이스라엘을 겨냥해 박격포 공격을 시작한 가운데 이란까지 본격 개입할 경우 사태 확전으로 중동 지역 전체가 불안정해질 수 있다. 우크라이나에 이어 중동까지 두 개의 전선을 마주해야 하는 상황은 대선을 1년여 앞둔 바이든 대통령에는 큰 정치적 부담이다.
이미 이번 사태로 인해 바이든 정부의 중동 외교 구상에도 균열이 생길 조짐이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 철군 이후 이스라엘과 아랍의 맹주국 사우디아라비아 국교 정상화 등 ‘중동 데탕트’에 속도를 내며 지역의 외교적 안정화를 추진했다. 하지만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갈등 격화로 아랍권이 다시 규합하게 되면 외교 동력은 순식간에 사그러들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우방국 사우디와 이스라엘을 연결해 이들과 이란과 역내에서 세력을 키우는 중국을 동시에 견제하려던 구상도 좌초될 위기다.
한편 중동 유혈사태가 고조된 8~9일 바이든 대통령은 부통령 시절 기밀문서 유출 의혹과 관련 특검 신문을 받았다고 백악관이 밝혔다. 한국계인 로버트 허 특검은 백악관에서 바이든 대통령을 상대로 개인 사무실과 자택 등에서 발견된 부통령 재임 시절 기밀문서 관련 의혹에 대해 면접조사를 벌였다.
워싱턴 | 김유진 특파원 yj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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