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 칼럼] 꼼수가 묘수로 불리는 사회
올해 유통업계 대관 종사자들은 일찌감치 치열한 수 싸움을 벌였다. 10월 국정감사를 앞두고 굵직한 유통업계 화두가 많아서다.
세계적 망신을 산 잼버리 파행 운영, 제조 공장서 이어진 노동자 사망사고 등이 대표적이다. 국정감사를 피하지 못한 기업 대표나 총수들은 이제 국정감사장에서 의원들의 질타를 받을 수 밖에 없게 됐다.
그런데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다. 올해 국감에서는 전통적으로 지적돼 온 문제들이 자취를 감췄다. 일감 몰아주기, 그룹사간 높은 내부거래 비중과 같은 단골 국감 소재는 찾아보기 어렵다. 국회의원 보좌관 몇 명에게 그 이유를 물었더니 ‘이젠 시대가 달라져서’란 답이 돌아왔다.
시대가 달라져서 그런 일들은 없어졌단 뜻일까. 아니다. 예전보다 훨씬 교묘하게 현재진행형이라 의원들조차 나서 지적하기 어려워졌다는 뜻이었다.
예를 들면 신세계그룹의 신세계푸드가 그렇다. 신세계푸드는 스타벅스코리아와 이마트의 E베이커리에 베이커리류를 납품하고 있다. 이마트의 가정간편식(HMR) 피코크 납품도 신세계푸드의 몫이다. 이렇다보니 신세계푸드 매출 중 그룹 내 비중은 높을 수 밖에 없다.
1분기 그룹 내 비중은 약 38.6% 수준(IBK투자증권). 증권가에서 신세계푸드에 관한 보고서를 쓸 때마다 ‘홀로서기’라거나 ‘독자생존’이라는 표현이 등장하는 이유다.
하지만 이 회사는 일감 몰아주기 문제에서 자유롭다. 규제 대상에 들어가지 않게 잘 설계되어서다. 2020년 말 개정된 공정거래법에 따르면 ①총수 일가가 지분 20% 이상을 보유한 기업과 ②그 기업이 지분을 50% 이상 가진 자회사가 일단 규제 대상이다.
신세계푸드의 최대주주는 이마트(46.87%). 이마트의 최대주주는 정용진 부회장(18.56%)과 이명희 회장(10%)이다. 총수일가 지분 20% 이상을 보유한 기업도 아니고, 그 기업이 50% 이상 가진 자회사가 아니다. 3.13%포인트(50% - 46.87%) 차이로 규제 대상에서 벗어났다.
재밌는 점은 신세계푸드의 2대 주주가 조선호텔앤리조트라는 점이다. 조선호텔앤리조트는 지분 8.6%를 가지고 있는데, 조선호텔앤리조트의 최대주주는 이마트다. 이마트는 조선호텔리조트의 지분 99.9%를 보유하고 있다. 사실상 이마트가 55.47%(46.87%+8.6%)의 지분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셈이다.
대기업의 상황이 이런데 이제 막 대기업 반열에 오른 중견기업이라고 다르진 않다. 감시망이 덜한 틈을 타서 더 심각하다.
기업을 승계받을 2세에게 개인 회사를 차리게 한 뒤 사업 기회를 몰아주고 있다. 사업 기회를 몰아줬으니 오너 2세 개인회사의 실적은 좋을 수 밖에 없고 배당률도 높다. 맨바닥에서 비슷한 사업을 시작하는 이들과 비교하면 ‘땅 짚고 헤엄치기’식으로 사업을 키워갈 수 있는 셈이다.
이들을 견제할 사회적 장치는 예전보다 무력해졌다. 공정위가 수만 건의 자료를 요청해 겨우 부당 내부거래의 혐의를 밝혀 과징금을 부과해도 송사에 들어가기 마련이다. 지분율에 대한 요건은 기업들이 이미 살며시 피해갔고 부당 내부거래를 밝혀내는 덴 엄청난 품이 든다. 부당 내부거래를 판단하는 데엔 여러 주관적 평가가 들어가기 때문에 이견이 나올 수 밖에 없어서다.
예전엔 대기업이 일감 몰아주기를 통해 가업 승계의 길을 틔워주거나 그룹 계열사간 내부 거래를 통해 사적 이익을 취하는 것에 대한 비판이 거셌다.
비판을 받아들이는 기업의 자세도 지금과는 달랐다. 부모가 만들어 놓은 틀 안에서 쉽게 부를 쌓고 사업을 하는 것을 두고 최소한 창피한 줄을 알았다는 뜻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 사회는 일보 퇴보했는지도 모른다.
꼼수보단 정공법이 통하는 사회, 부모 찬스보단 실력이 우위라는 가치가 통용되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가 아닐까. 아무리 시대가 달라졌다지만 지켜졌으면 하는 가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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