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R&D 감축에 ‘청년취업’ 직격탄…이공계 일자리 예산 80% 뚝
교육·훈련 올해 1334명→내년 290명 급감
해외 우수과학자 유치 예산도 줄어
연구 현장 국제화 발목 잡을 가능성
이공계 분야 미취업자들에게 산업 현장 맞춤형 교육과 훈련 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정부 예산이 80% 줄어든 것으로 드러났다. 청년들 취업난을 덜기 위한 사업조차 내년도 정부 연구개발(R&D) 예산 감축의 칼날을 피하지 못했다. 또한 해저지진 예측 연구(-80%)와 달 착륙용 로켓 관련 기술 개발(-21%) 등도 줄줄이 타격받게 됐다.
조승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0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제공받은 ‘인재활용 확산 지원 사업’ 자료를 보면, 이 사업에 속한 ‘이공계 전문기술인력양성’ 사업의 내년 예산이 올해(158억원)보다 81% 급감한 29억원으로 편성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 사업은 이공계 미취업자에게 산업 현장에 특화된 교육·훈련을 제공하기 위한 것인데, 주로 중소기업에서 일할 R&D 인력을 키우게 된다. 청년들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고, 한국 경제의 근간인 중소기업의 기술 경쟁력을 높이는 데 초점이 있다.
이 사업을 통해 정부는 과학기술인력 양성·공급 계획을 수립하고, 인력에 대한 훈련과 재교육을 촉진한다. 또 이공계 인력의 취업 또는 재취업을 알선하는 ‘이공계 인력 중개센터’를 광역 시·도에서 운영할 수 있다. 그런데 내년에는 이 같은 사업을 올해보다 축소해서 시행하는 것이 불가피해졌다.
실제로 예산이 줄어들면서 수혜 인원도 대폭 감소하게 됐다. 올해 이공계 전문기술인력양성 사업에 따라 교육·훈련을 받는 인원은 총 1334명(학사 1050명, 석사 256명, 박사 28명)이다. 그런데 내년에는 올해보다 79% 줄어든 총 290명으로 크게 감소한다.
과기정통부는 일단 내년 교육·훈련을 학사 출신을 대상으로 시행하기로 했다. 가르치는 데 예산이 많이 드는 석사와 박사 출신을 사업 대상에 넣게 되면 총 교육·훈련 인원은 290명보다 더 줄어들게 된다.
또 대학을 중심으로 4차 산업혁명 분야의 실무 인재를 양성하는 ‘과학비즈니스벨트 산학연계 인력양성’ 사업은 내년에 1억8000만원만 편성돼 올해(10억5000만원)보다 82% 감소하게 됐다.
2016년부터 대전 일대에 본격 조성되기 시작한 과학비즈니스벨트는 거대 연구·산업단지다. 세계 수준의 기초과학과 미래 융합기술의 허브 역할을 하고, 글로벌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 주요 임무다. 총 1조5100억원이 투입돼 2021년 대전에 들어선 중이온 가속기 등이 주요 시설이다. 그런데 이 같은 과학비즈니스벨트와 청년 일자리를 연계하는 내년 예산도 대부분 깎인 것이다.
이밖에 ‘해외 우수과학자 유치’ 사업 예산이 줄었다는 점도 주목된다. 올해 383억원에서 내년에는 17% 감소한 318억원으로 편성됐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6월 열린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나눠먹기식, 갈라먹기식 R&D는 제로베이스(원점)에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면서도 “세계적인 수준의 공동연구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R&D 예산 축소와 함께 연구 현장 국제화를 동시에 주문한 것이어서 상충된다는 지적이 뒤따른다.
해외 우수과학자 유치 사업은 국내 산업계와 대학, 연구소 등에서 필요로 하는 외국의 뛰어난 과학자를 한국에 초빙해 괄목한 만한 연구 성과를 창출하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다. 국내 연구 환경을 국제화하고,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하겠다는 의도다. 그런데 정부 예산 감소가 윤 대통령이 강조한 R&D 국제협력 확대에 발목을 잡게 된 격이다.
조 의원은 “과기정통부가 이공계 학생들을 직접 지원하는 일자리 관련 사업 예산마저 삭감했다”며 “말로는 신진 연구자 지원 확대를 외치면서 정작 연구 현장의 새싹들을 뽑아버리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경향신문 취재 결과, 내년 R&D 예산과 관련해 과기정통부는 해저지진 가능성을 예측하는 ‘실시간 해저 재해감시 기술 개발’ 예산을 올해(40억원)보다 80% 줄인 8억원만 편성한 사실도 드러났다. 또 달 착륙용 로켓 사업이 포함된 ‘항공우주 핵심 선도기술 개발’ 예산도 올해보다 21% 줄어든 104억원을 잡아놓아 윤 대통령의 ‘우주강국 도약’ 추진과 어긋난다는 비판을 받는다.
정부는 올해보다 16.6%(5조2000억원) 줄인 내년 정부 R&D 예산안을 최근 국회에 제출했다. 국회는 이달 국정감사가 끝난 뒤 다음 달부터 본격적인 예산 심의에 나설 예정이다.
이정호 기자 r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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