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찾은 하마구치 류스케 "만들고 싶은 영화 묵묵히 만들겠다"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로 관객과 스페셜 토크도
에이코 이시바시의 공연용 영상을 장편영화로 제작
최근 베니스영화제서 심사위원 대상 받는 등 쾌거
영화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로 2년 만에 부산을 찾은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이 “사람은 눈앞의 이익만 좇다가 미래의 결과를 생각지 않는 패턴을 보이기도 한다. 영화를 통해 그 패턴에 대한 문제의식을 진지하게 반영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음악 공연용 영상이 영화로…“새로운 도전”
10일 오전 해운대구 영상산업센터에서는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아이콘 섹션 선정작 중 하나인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일본)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하마구치 감독은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로 최근 열린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받으며 화제를 모았다. 전작 ‘드라이브 마이 카’(2021)가 미국 아카데미 국제장편영화상, 칸영화제 각본상을 받는 등 현재 가장 주목 받는 신예 감독이다. 이날 이탈리아 등 외신 기자들도 참석해 질문하는 등 거장 감독의 인기를 증명했다. 그는 질문에 일일이 감사 인사를 전하며 진지한 답변을 이어갔다. 그의 BIFF 참석은 2021년에 이어 2년 만이다.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그의 전작 ‘드라이브 마이 카’에서 함께 협업한 음악가 에이코 이시바시의 라이브 퍼포먼스용 영상으로 시작했다가 장편영화로 진화한 특별한 작품이다. 작은 산골 마을에 글램핑 야영장을 건설하려는 기업과 주민을 통해 자연과 인간의 본성을 다룬다.
영화는 음악 공연용 영상으로 처음 기획됐다는 독특한 이력을 갖는다. 하마구치 감독은 “2년 전 이시바시 음악가에게 제안을 받고 그녀와 편지를 교환하는 방식으로 의견을 나눴다. 자연과 밀접한 음악임을 느끼고 모티브를 찾았고, 극초반에 등장하는 메인음악을 들었을 때 영화가 비로소 더 풍성해지고 완성됐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이어 “그동안 대사 전개 방식으로 작업했는데 새로운 도전이 되겠다 느꼈다”며 ”음악과 영상의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 이번 작업에서 느꼈다”고 했다. 영화의 첫 부분에 등장하는 음악 영상이 영화로 바뀌는 전환점이 된 셈이다.
하마구치 감독은 이번 작품에서도 개인을 통해 사회 문제점을 고찰한다. 그는 “작업을 위한 리서치 과정 중 도쿄에서 차로 2시간 거리인 나가노 현에서 실제로 개최된 주민 설명회를 봤다. 지역민 입장에서 개인적인 생활 공간에 도시의 논리가 들어오는 그 순간이 영화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개인과 사회는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개인적인 이야기지만 사회와 무관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아역배우에 연기지도보다는 많은 대화 나눴다”
오랜만에 그의 영화에서 어린아이(니시카와 료)가 주요 인물로 등장하는 점도 눈에 띈다. 하마구치 감독은 “어린 아이를 작품에 출연시킨 것은 오랜만이다. 아역 배우 디렉팅에 대한 여러 조언을 구했다. 특별한 연기 지도를 하기보다는 성인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인격체로 대하기로 했다”며 “오디션을 볼 때도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아역배우에게 그 자리에서 듣고 느낀 걸 해달라고 한 게 전부다. 성인 배우들과 같이 대했다. 아이를 신뢰하고 연기를 맡겼는데 놀랍도록 멋진 표정과 모습을 보여줬다. 진정성 있는 모습을 발견해 즐거웠고, 기대하게 됐다”고 밝혔다.
극중 주연배우 오미카 히로시의 캐스팅 비화도 전했다. 하마구치 감독은 “그는 ‘우연과 상상’의 제작 스태프였다. 리서치 과정에서 촬영감독과 함께 운전사 역할로 동행했는데, 그(오미카 히로시)를 통해 카메라 테스트를 하다 보니 그만의 분위기가 영화와 너무 어울리더라”며 “연기 경험이 전혀 없는 상태인데 결과적으로 너무 좋았다. 그에게서 무척 많은 영감을 받았다”고 전했다.
하마구치 감독은 이번 영화로 자연과 인간의 본성에 대한 문제의식을 드러내려 했다. 그는 “사람들은 눈앞의 이익을 좇는 나머지 그게 장기적으로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생각지 않고 엉성한 계획을 세우기도 한다”며 “이 패턴들이 나아가 자연은 물론 인간의 정신과 마음을 해친다. 거기에 대한 진지한 문제의식을 반영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부산 관객 열기 뜨거워 만남 기대”
부산 관객과의 만남에 대한 기대감도 밝혔다. 그는 이날 오후 스페셜토크로 관객과 만난다. 하마구치 감독은 “BIFF 열기, 특히 부산 관객의 열기는 뜨겁다. 질문도 끊이지 않아 인상 깊다”며 “젊은 관객들이 한 영화제에 이만큼 모인다는 것 자체로 엄청난 일이다. 한국 영화산업이 발전하는 것과 관계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번 영화와 관련해 일부 인터넷 문서에 작성된 ‘영화 제목에는 큰 의미가 없다’는 표현도 바로잡았다. 그는 “이 영화가 어떤 것인지는 타이틀로 느끼게 된다. 악은 어디서든 존재할 수 있고, 그 관점에서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며 “극 중 아이가 바라보는 자연을 보면 누구나 ‘악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란 마음을 갖게 됐고, 제목으로 정했다. 작업 기간 내내 이 제목은 바뀐 적이 없다”고 설명했다.
그의 시그니처인 등장인물 간 긴 대화는 이번 작품에도 등장한다. 하마구치 감독은 “배우들에게 자연스레 느낌대로 말할 때 어떤 작용이 몸에서부터 일어나는지 관심을 둔다. 거기에 배우만의 개성이 대사에 묻어나며 독특한 색채를 띠는 체험을 한다”며 “이 특별한 체험을 계속 해나가고 싶은 생각이 있다”고 말했다.
시네필 사이 가장 인기 있는 감독으로 뽑히는 데다 해외 3대 영화제까지 석권한 하마구치 감독의 스케줄은 매우 빼곡하다. 이번에도 뉴욕에서 바로 부산으로 오는 등 매우 빽빽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그는 “(수상에는) 여러 행운이 겹쳤다. 부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신경 쓰지는 않는다. 담담하게 만들고 싶은 영화를 만들어 나갈 뿐”이라며 “잇단 영화제에 초청되며 영화계 활성화 위해 열심히 참석 중이지만, 영화 만드는 시간이 줄어드는 것도 사실이다. 작업과 균형을 이루려고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시네필의 관심은 매우 감사하다. 영화를 많이 보는 사람들의 관심은 (내게)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지만 다음 작품이 그들의 기대에 못 미칠까 두렵기도 하다”고 웃으며 “하고 싶은 영화를 만드는 작업을 그저 지속하겠다”고 답했다.
이번 BIFF에서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인기가 높았다. 한 ‘BIFF 단골’은 “BIFF에서 예매에 실패한 건 이 영화가 처음이다. 중고거래 사이트에 갔더니 10만 원 가까운 티켓값을 제시해 포기해야 했다”며 발을 동동 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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