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자의 탐사보도 참여는 민주주의 문제” 스웨덴 언론은 어떻게 다른가

정지혜 2023. 10. 10.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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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 탐사보도 기자가 2년에 한 번 모여 탐사보도 기법을 공유하고 교류하는 세계탐사보도총회(Global Investigative Journalism Conference).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4년 만에 대면 행사로 열린 이번 컨퍼런스에는 132개국에서 2138명이 등록해 역대 최대 규모로 치러졌다.

지난달 19일부터 22일(현지시간)까지 스웨덴 제2의 도시 예테보리에서 개최된 GIJC에 참석해 그 열기에 동참했다. 총회는 수많은 세션을 키워드별로 분류했는데, 그 중 하나는 ‘여성(Women)’이었다. ‘탐사보도에서 여성들이 함께 번영하기 위한 전략’(20일), ‘페미사이드 탐사보도’(22일), ‘탐사보도에서 여성이 부딪히는 도전에 대한 연구’(21일), ‘GIJN 여성 기자 네트워킹’(21일) 등의 세션이 있었다.

총회 개최 수일 전 프랑스 기자 아리아 라브릴로(Aria Lavrilleux)가 프랑스-이집트의 반테러 협력을 탐사보도한 것과 관련해 구금되고 보안 당국에 의해 자택이 압수수색 당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GIJN 여성 네트워킹’ 세션에 참석한 언론인들이 해당 기자에 연대하는 차원에서 해시태그(#) ‘저널리즘은범죄가아닙니다’ 표어를 들고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GIJN 제공
 
이 중 탐사보도 분야의 여성 언론인 선배들로부터 동기부여를 받는 20일의 세션은 많은 여기자들에게 위로와 응원이 됐다. 세계 각국에서 자신만의 탐사보도 영역을 개척해가는 이들이 ‘왜 여성들이 탐사보도를 해야하는지’ 힘주어 말했다.

세계일보는 이날 패널로 참석한 여성 언론인 2명과 총회 현장에서 따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아프가니스탄 출신 여성 기자이자 ‘잔 타임스’(Zan Times) 편집장인 자흐라 나다(Zahra Nada)와의 인터뷰는 <[단독] “여기자란 이유로 체포하는 나라”에서 기사를 쓴다는 것…자흐라 나다 ‘잔 타임스’ 편집장> 기사로 지난 3일 전했다.

두 번째 인터뷰는 스웨덴 남부의 대표적인 조간지 시드스벤스칸(sydsvenskan)의 탐사보도 기자·에디터인 제시카 지거러(Jessica Ziegerer), 엠마 요한슨(Emma Johansson)과 진행했다. 지거러 기자는 20일 열린 세션에 이어 다음날 ‘옆길로 새지 말고 계획을 세울 것’이라는 탐사보도의 단계적 접근법을 요한슨 기자와 함께 강의하기도 했다. 1848년 창간돼 170년 넘는 전통을 지닌 신문의 체계를 엿볼 수 있었다.

성평등 선진국으로 전세계가 우러러보는 스웨덴에서도 여성의 탐사보도 참여는 ‘그냥 이뤄지는’ 일이 아니었다. 스웨덴 최초의 탐사 기자로 꼽히는 에스더 블렌다(Ester Blenda)가 여성 기자였음에도 여전히 현실은 만만치 않다. 주로 탐사보도로 다뤄지는 주제들이 묵직하고 남성적이라고 인식되는 경향, 이런 분야의 취재원이 남성이 많은 점 등이 영향을 준 것으로 풀이된다.

지거러 기자는 탐사보도와 관련해 사내 감사를 실시했더니 여전히 대다수가 남성 기자들의 참여로 진행되고 있음을 발견한 순간의 충격을 세션에서 밝혔다.

“스웨덴 뉴스룸은 남녀 성비 5대 5를 달성했습니다. 그럼에도 탐사보도에 관여하는 것은 남성 기자들이 월등히 많았던 것입니다. 이를 최근에야 알았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우리는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전략을 개발하고 목표를 세웠습니다. 1년 이내에 탐사보도 협업의 40%에서 여성이 남성과 동등하게 참여하는 성별 균형이 달성되어야 한다고요.”

문제를 문제라고 인식하는 데서 변화는 시작된다. 목표를 정하고 나니 달성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지거러 기자는 “(탐사보도에서 여성의 참여가 늘어나면서) 사회 복지, 주택 시장, 학교, 심지어 말 산업과 같은 주제에 대해 새로운 탐사보도 내용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며 “오늘날 이는 단순한 목표가 아니라 우리가 진행하는 업무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스웨덴 남부 지역의 대표 신문 시드스벤스칸의 제시카 지거러(왼쪽부터), 엠마 요한슨 기자가 세계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다음은 지거러, 요한슨 기자와의 일문일답 주요 내용.

-뉴스룸에서 성비 균형을 달성한 스웨덴에서 그 다음 단계는 무엇인가.

△지거러=어제 세션에서 여성을 탐사보도에 참여하도록 하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를 전국적인 규모로 좀 더 진행할 만 하다고 생각한다. 편집장으로 올라가면 여전히 남성이 여성보다 많다는 걸 고려하면 말이다. 에디터 급의 여성 부장들은 많아졌지만 가장 높은 단계에서 편집권을 행사하는 경우는 얘기가 다르다.

-스웨덴에서 평기자들은 여성이 절반을 차지하지만 탐사보도에서는 그에 못 미친다는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지거러=많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중요한 건 ‘반반이 아니다’라는 사실 그 자체다. 그냥 가만히 앉아서 언젠가는 반반이 될 거라 믿고 있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성비 불균형 상태에 대해 시종일관 염두에 둬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성이 신문에 인용되는 비율 관련 문제를 보면 그렇다. 수년간 이 숫자를 기록해 오다가 이제 여성이 충분히 등장한다며 성비 측정을 멈췄다. 그랬더니 1∼2년 뒤에 다시 대부분 신문에서 남성들이 주로 스피커가 되는 현상으로 후퇴하더라. 그래서 우리는 탐사보도 팀 내에 이슈별로 여성 전문가 리스트를 만들어 공유했다. 이것이 성비 균형 목표 달성에 도움이 되었다.

스웨덴은 성평등을 거의 20년 전에 이룬 나라지만 여전히 이런 현실이라는 점을 어제 발표 때 짚고 싶었다. 한번 50대 50 목표를 달성했다고 끝이 아니라는 점 말이다. 계속해서 이 목표를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성비 균형에 대해 계속 지켜보고, 이야기해야 한다.

△요한슨=물론 작은 변화는 있었다. 점점 더 많은 여성 기자들이 탐사보도물을 취재하고 기자상에 응모도 하고 있다. 그렇지만 아직도 수상을 하는 기사는 대부분 남성 기자들이지 않나?

-더 많은 여성 기자가 탐사보도를 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지거러=우리가 고르는 주제 자체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여성 기자들이 팀에 포함돼 있을 때 확실히 다른 결의 기사들이 나올 수 있다. 

△요한슨=여성들이 갖고 있는 ‘다른 경험’들이 탐사 주제를 발제할 때 사용된다. 이것은 독자들을 위해 중요한 일이다. 여성 독자들에게도 자신이 경험하는 사회가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탐사보도의 대상이 될 수 있어야 하니까. 그러니 결국 이건 민주주의와 다양성의 문제다. 기자들의 다양성이 확보될 때 우리는 사회 전체에 대한 보다 폭넓은 탐사가 가능해진다. 더 많은 관점도 적용할 수 있다.

△지거러=여성 기자들은 남성 기자들과 또 다른 유형의 인터뷰를 해 온다. 일반론적으로 보더라도 양성이 모두 인터뷰를 제대로 하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한국은 여성 기자에 대한 온라인 괴롭힘이 상당한 수준인데 스웨덴은 어떤지 궁금하다.

△지거러=물론 한국 상황만큼은 아니겠지만 우리도 기자들이 괴롭힘을 당하고 혐오 관련 스트레스를 받는다. 몇년 전 스웨덴의 일부 여성 언론인들이 관련된 프로그램을 한 편 만든 적이 있었을 정도다. 여성 기자로서 자신들이 겪은 일들, 성별에 기반한 괴롭힘에 대한 고백을 하는 내용이었다.

-이에 대해 어떻게 해야 하나.

△지거러=절대 공격을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언제나 그 내용을 상사에게 전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선에서 감당하기 힘들어진다. 우리 보도국에는 이와 관련한 규칙이 있다. 자신이 속한 팀이 작든 크든 간에 무조건 상사와 논의를 하게 돼 있다. 그래야만 기자들에게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공격의 출처와 정체에 대해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다.

△요한슨=이건 기자들이 스스로를 자기 검열하는 시작점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성이 분명 있다. 물론 기자들이 이에 대해 이야기해야 하는지 본인은 잘 판단하기 힘들 수 있다. 스스로의 판단에 맡기기보다는 상사에게 보고하는 정책을 마련하는 식으로 루틴화해야 하는 이유다. 공격 문제가 크고 작고는 중요하지 않다. 혼자 결정하지 말아야 한다. 팀 차원에서 고민하고 기자가 혼자 고립되지 않도록 네트워크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에서 탐사보도는 한때 각광받았지만 업계에서는 ‘돈이 안 된다’는 이유로 현재 입지가 좋지 못한 실정이다.  

△지거러=정말 그런가? 돈이 안 된다는 이유로 외면한다니 놀랍다. 왜냐면 스웨덴에서는 ‘탐사보도가 돈이 된다’는 이유로 탐사보도 팀을 만들기 때문이다. 최근 몇년 사이 독자들이 이런 보도를 원한다는 발견이 있었고, 그건 곧 수익으로도 이어진다. 독자들이 이에 대해 분명히 의사 표현을 했다. 이것이 우리가 탐사보도 팀을 운영하는 이유다.

※이 기사의 현지 취재는 한국언론재단의 ‘KPF 디플로마-탐사보도’ 과정에 참석해 진행했습니다. 

예테보리=글·사진 정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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