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팔 전쟁] 중동 정세 혼돈 속 中 노림수는…'美 대안세력' 입지 다지나
中, '두 개 국가' 카드로 휴전 중재역 자처…美, 중동서 '입지 축소' 막으려 고심에 고심
(서울=연합뉴스) 인교준 기자 =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으로 시작된 무력 충돌이 전쟁으로 치닫는 가운데 중국의 노림수가 주목된다.
외교가에선 최근 몇 년 새 미국의 대(對)중동 영향력 퇴조 속에서 러시아와 함께 입지를 강화해온 중국이 현재 벌어지는 혼돈의 중동 정세를 활용해 미국을 밀어내는 한편 영향력 확대에 주력할 것으로 본다.
이번 사태가 미국이 심혈을 기울여온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 주축의 수니파 이슬람권 간의 화해라는 '중동 데탕트' 시도에 치명타가 될 것으로 보여 중동 패권 경쟁에서 중국이 유리한 교두보를 차지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 3월 숙적인 사우디와 이란을 중재해 외교관계를 복원시키는 '대성과'를 거둬 중동 해결사로 등장한 중국도 일정 수준 타격이 불가피하지만, 그보다는 미국 대안 세력으로서 입지가 더 탄탄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美 주도 '중동 데탕트'에 큰 타격…中, 유리해질 듯
국제사회는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 시점에 주목한다.
하마스는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집권 후 팔레스타인에 대한 강압 정책에 맞선 것이며, 독립을 쟁취할 목적으로 이번 공격을 자행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미국 주도로 '중동 데탕트'가 시도되는 가운데 이를 겨냥한 공격이라는 시각에 무게가 더 실린다.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시절부터 스스로 대중동 영향력을 약화해온 데다 인도·태평양 전략 등으로 사실상 중동을 소외시킨 상황에서 중국이 나서 사우디와 이란 수교를 성사하자, 이스라엘과 사우디 화해 카드를 야심 차게 추진해왔다,
이스라엘이 지난 2020년 아랍에미리트(UAE)·바레인·모로코 등 '온건한' 아랍권 국가들과 관계를 정상화하는 '아브라함 협약'에 서명한 상황에서, 조 바이든 미 행정부가 데탕트를 시도한 것이다.
미국은 내년 대선을 앞두고 중동 안정이라는 외교적 성과를, 이스라엘은 온건 아랍국가들과의 평화적 관계 확장을, 사우디는 중동 맹주로서의 입지 강화를 노렸다고 볼 수 있다.
특히 미국은 지난달 9일 인도 뉴델리에서 사우디와 아랍에미리트(UAE) 등이 참여하는 '인도-중동-유럽 경제회랑(India-Middle East-Europe Economic Corridor·IMEC)' 설립 약속에 이어 이번 중동 데탕트로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중국-중앙아시아-중동-유럽을 연결하는 육상·해상 실크로드) 사업에 타격을 줄 심산이었다.
실제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사우디의 실세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도 근래 각각 "역사적 평화를 이룰 돌파구의 정점에 서 있다", "(사우디와 이스라엘 간에) 지금까지 좋은 협상이 진행 중"이라고 밝힐 정도로 성사 가능성이 컸다고 할 수 있다.
이를 계기로 미국이 핵무기 보유 의지를 노골화하는 이란에 맞서 사우디에 최신 무기 공급을 할 가능성이 제기됐고, 이스라엘이 요르단강 서안지구의 정착촌 확장 동결과 팔레스타인 독립 국가 인정 등의 양보를 할 것이라는 희망 섞인 관측도 나왔다.
그러나 하마스가 유대인 명절 직후 안식일로 평온이 이어지던 지난 7일 갑자기 로켓 수천발을 날리고 전투원을 투입해 대규모 살상을 저질렀고, 여기에 레바논 무장세력 헤즈볼라까지 가세한 데다 네타냐후 총리가 전격적으로 전쟁을 선포하면서 중동 정세가 일거에 혼돈 속으로 빠져들었다.
이에 사우디는 이스라엘과 협상 중단을 언급하지 않으면서도 일단 팔레스타인을 옹호하는 쪽으로 발을 뺀 모습이다.
하마스와 헤즈볼라 모두 시아파 이슬람 종주국인 이란의 지원을 받는다는 점에서 이번 공격의 배후로 이란이 지목된다. 이란 당국은 지원 사실을 부인하고 있으나, 하마스 대변인이 BBC와 인터뷰에서 "이란의 직접 지원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스라엘과 사우디 중심의 수니파 아랍권이 화해하게 되면 이스라엘을 인정하지 않고 강경 투쟁노선을 고수하는 하마스는 존립 근거가 없어지고, 이란도 중동에서 입지가 크게 좁아질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이들의 연계설이 돈다.
이제 하마스를 상대로 전쟁을 선포한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이 본격화해 팔레스타인 민간인 피해가 급증할 경우 미국의 데탕트 시도가 무색해질 수 있다.
이를 통해 서방 국가들은 이스라엘을 지원하고, 아랍권 국가들은 팔레스타인에 동조하는 양상으로 흐르게 되면 미국 입지는 좁아지고 중국의 역할이 부각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두 개의 국가' 강조하는 中…중동 해결사 역할 확장 포석?
중국은 하마스·헤즈볼라의 이스라엘 공격 사태 직후 향후 전개될 중동 정세와 관련해 이해득실을 면밀히 따져봤을 것으로 보이며, 그다지 불리하지는 않다고 판단했을 법하다.
그로 인한 피해가 미국에 치명상이라면, 중국은 중경상 수준이라고 여기고 기존의 '중동 해결사' 역할의 보폭을 더 넓힐 공산이 커 보인다.
실제 향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충돌 상황이 어떻게 전개되느냐에 따라 다음 주 베이징에서 열릴 제3회 일대일로 정상회의는 물론 이달 말 베트남 방문과 다음 달 미국에서 열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기구(APEC) 정상회담 등 시진핑 주석 주요 일정에 영향을 줄 수 있지만, 치명적인 피해는 없을 것으로 예상하는 분위기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은 일단 '중립' 깃발을 들었다.
9일 마오닝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중국은 분쟁이 확대되고 지역의 안정을 해치는 행동에 반대하며 가능한 한 빨리 휴전하고 평화를 회복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이어 "국제사회는 정세 완화를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한다"면서 '두 국가 방안'(兩國方案)이라는 해법을 제시했다. 이런 언급은 중국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별도의 국가로 평화롭게 공존하는 휴전을 중재하겠다는 의지로 읽혔다.
대중국 강경파인 척 슈머 미 상원 원내대표가 9일 시진핑 국가주석을 만난 자리에서 중국이 이스라엘에 대한 하마스 등의 "비겁하고 악랄한 공격을 규탄해달라"고 촉구했지만, 중국은 그에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이다.
중국은 지난 3월 사우디-이란 수교 중재에 이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관계 정상화라는 '중동 해결사 2탄'에 공을 들여왔다.
지난 4월 당시 친강 외교부장은 리야드 알말리키 팔레스타인 외무장관과 엘리 코헨 이스라엘 외교장관을 상대로 중재 노력을 기울였고, 2개월 후인 지난 6월 시 주석은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을 베이징으로 초청해 '아랍 평화 이니셔티브'를 제시한 바 있다.
1967년 국경선을 기초로 동예루살렘을 수도로 삼는 팔레스타인 독립 국가를 건설하는 것이 이니셔티브의 골자다.
시 주석은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방중도 타진해왔으나, 이번 사태로 당분간 현실화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그런데도 중국은 이 같은 중재 외교가 실보다는 득이 될 것으로 보는 듯하다.
사태가 장기화하는 속에서 이스라엘이 '두 개의 국가' 방안을 수용하지 않더라도 사우디와 이란의 지지를 바탕으로 아랍권 국가들의 지지를 확대해갈 수 있어서다.
"'다극화 체제' 전환 상징"…美, '입지 축소' 막기 위해 고심
10일 미국 뉴욕타임스(NYT) 인터넷판은 작금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상황에 대해 "미국의 영향력 약화와 다극화 체제 전환의 상징적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미국의 영향력 감소를 틈타 중국과 러시아 등이 대안 세력으로서 영역을 확대해간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상황에서 미국도 선선히 물러날 것 같지는 않다.
무엇보다 확전을 억제하면서 이스라엘과 사우디 중심의 수니파 아랍권 간 화해 카드를 지켜갈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이란 당국 부인에도 불구하고 이란이 하마스와 헤즈볼라의 공격을 지원했다는 외신이 잇따르고 있지만, 미 국방부가 이날 "현재로선 이란이 공격의 배후라는 증거는 없다"고 밝힌 건 이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미국은 또 하마스의 공격에 대한 반격에 나선 이스라엘을 지원하기 위해 항공모함 제럴드 포드함과 전함 5척을 동지중해로 이동 배치했지만, 지상군을 파병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내비치고 있다. 확전할 경우 자칫 아랍권의 대미 감정 악화로 이어질 것을 우려하는 것이다.
미국은 극우 정권인 네타냐후 내각이 하마스와 헤즈볼라를 넘어 팔레스타인을 겨냥한 무차별적인 공격을 하는 데 반대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이미 중국과 러시아가 힘을 키우는 중동 패권 경쟁에서 미국의 입지가 더는 좁아지지 않도록 하는 데 주력할 것이라는 얘기다.
kjih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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