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의 온기에 생기는 덤인 도자[그림 에세이]

2023. 10. 10.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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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난화라지만 절기의 규칙성은 신비할 정도로 오차가 없다.

텐트 앞에서 화톳불을 지피며 취사를 하는 열혈아들이 이토록 많으니 말이다.

크로스오버 작가 박효정의 포트폴리오에서도 유독 눈길을 끄는 흙작업이다.

흙의 온기에 신비한 생기는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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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언 미술평론가
박효정, 밤과 꿈 사이, 지름 50㎝, 흙·은, 2015.

온난화라지만 절기의 규칙성은 신비할 정도로 오차가 없다. 추석 당일까지도 반팔 차림이었다가 연휴가 끝나자마자 수은주가 곤두박질, 황급히 외투를 꺼낸다. 쌀쌀한 날씨에도 이곳 의암호반은 별천지다. 텐트 앞에서 화톳불을 지피며 취사를 하는 열혈아들이 이토록 많으니 말이다. 어디선가 낙엽을 태우는 향기가 가을의 감성을 한껏 자극한다.

불의 흥취와 열기가 그리운 계절에 정겹게 다가오는 친구가 있다. 크로스오버 작가 박효정의 포트폴리오에서도 유독 눈길을 끄는 흙작업이다. 가마 속 열기를 거치며, 옅은 구름에 가려진 보름달 같은 고요하고도 심오한 심미의 결정체로 다가온다. 비정형 소성인 라쿠(raku) 특유의 넘나듦의 와중에도 호젓한 유현함이 경이롭다.

단조로운 판형 구조와 감각적인 두 종류의 선에 묵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선들이 비중 있게 의미작용을 하고 있는 것이다. 가느다란 수평과 수직의 틈새들이 있고, 그것들에 입사(入絲) 상감처럼 들어 있던 한 올이 이탈한 것 같은 설정이 참 기묘하다. 어느 날 갑자기 자라난 우담바라인가. 흙의 온기에 신비한 생기는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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