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상의 전환’ 파격적 오페라가 온다
과거 작품, 다른 해석 새 관점으로 재탄생
‘발상의 전환’은 기본. ‘박제된 유물’로 여겨졌던 오페라가 ‘현대적 각색’으로 다시 태어났다. 구태의연하고 고리타분했던, 그래서 대중들의 외면을 받았던 오페라들은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동시대는 물론, 미래까지 품는다.
오페라의 괄목할 만한 변신에는 ‘발상의 전환’으로 과거의 작품을 새로운 시각으로 보여주려는 연출가들이 있어 가능했다. 현재의 관객 눈높이와는 맞지 않은 오페라의 시대 감수성을 정교하게 매만져 오늘과 호흡하는 것이 그들의 사명인 듯 하다. 시대의 흐름과 원전의 존중 사이에서 치열하게 줄다리기를 하며 새로운 이야기를 덧입힌 그들의 노력이 올 가을 어느 때보다 빛을 발할 전망이다. 그야말로 ‘오페라는 연출가의 예술’이라 느껴질 만큼 다양한 해석으로 완전히 다른 관점을 보여주는 작품들이 어느 해보다 많기 때문이다.
▶670년 건너 뛰어 우주로 간 ‘나비부인’=가장 적극적인 변화를 시도한 작품은 바로 ‘나비부인’(10월 12~15일, 성남아트센터)이다. 무용, 연극 등 다양한 공연예술 장르에서 상당한 존재감을 발하는 정구호 크리에리티브 디렉터가 6년 만에 오페라 연출을 맡은 작품이다.
이 작품의 원작인 이탈리아 작곡가 푸치니(1858~1924)의 ‘나비부인’은 19세기 일본 나가사키 항구를 배경으로 게이샤 초초와 미군 장교 핑커톤의 비극적 사랑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1904년에 초연돼 120여년이 지난 작품이다 보니 여성을 너무 수동적으로 그리고, 특히 동양인 여성을 왜곡되게 묘사해 현대적 성 감수성과는 동떨어진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하지만 정구호의 ‘나비부인’은 다르다. 무려 670여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작품에 등장하는 남녀, 국가간 관계 등을 모두 지웠다. 배경은 서기 2576년 우주. 핑커톤은 행성 연합국을 대표하는 엠포리오 행성의 사령관으로, 초초상은 파필리오 행성의 공주로서 서로를 처음 만난다. 정구호 연출은 “그동안 다양한 버전의 ‘나비부인’이 무대에 올랐는데 늘 아쉬운 점이 있었다”며 “남녀 관계를 묘사하는 방식이나 제국주의적 색채에 변화를 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이 작품은 지금까지의 ‘나비부인’ 중 가장 파격적이다. 초초상을 연기하는 소프라노 임세경은 “그동안 유럽에서 활동하며 200회 가까이 ‘나비부인’ 무대에 섰지만, 이렇게 혁신적인 ‘나비부인’은 처음”이라며 “과거 현대적으로 연출한 오페라에 출연할 때는 연출가와 해석이 달라 싸우는 일도 많았지만, 이번 작품은 백지처럼 열어 놓고 연습에 임했다”고 말했다.
정 연출 역시 재해석의 정도에 대한 고민이 깊었다. 그는 “인물의 기본적인 관계를 바꾸지 않으면 제대로 된 창작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이탈리아어 가사는 그대로 두고 한국어 자막만 작품 설정에 맞게 바꿀까도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왜 ‘나비부인’을 공연하냐는 질문에 이만큼 재해석하고 도전할 수 있다는 답을 주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결말 바꾼 ‘연극 거장’의 ‘투란도트’=‘연극계 거장’ 손진책 연출가는 서울시오페라단의 ‘투란도트’(10월 26~29일)를 통해 색다른 시도를 한다. 배경과 결말을 원전과 달리 해석해 내놓는 것이다. 푸치니의 ‘미완성 유작’인 ‘투란도트’의 배경은 원래 고대 중국이지만, 손진책 연출은 기존의 시대적 배경과 ‘중국풍 의상’을 완전히 지우고 시간과 장소가 불분명한 지하세계로 무대를 표현했다.
이와 함께 프랑코 알파노가 마무리했던 결말도 투란도트와 칼리프가 난데없이 사랑을 이루는 것으로 바꿨다.
손진책 연출은 “투란토트는 용맹한 왕자 칼라프가 얼음같이 차가운 공주 투란토트와 대결을 벌이고 결국 사랑을 쟁취한다는 내용이지만, 이번 작품에서 가장 주목했던 부분은 왕자 칼라프를 위해 목숨을 바쳐 헌신한 시녀 류(Liu)”라며 “류가 지키고자 한 숭고한 가치를 더 깊이 되새기는 연출을 선보이고자 한다”고 말했다. 푸치니 역시 3막에 등장하는 류의 죽음까지만 작곡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초연 무대에서 선 ‘전설적인 지휘자’ 토스카니니는 이 장면까지만 지휘하고 공연을 멈추기도 했다.
특히 이 작품에선 2021~22 시즌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가 제작한 ‘투란도트’, 2022~23 시즌 런던 로열오페라 하우스 코벤트 가든에서 공연된 ‘투란도트’에서 칼라프 역을 맡은 세계 최정상 성악가 이용훈이 국내에선 처음으로 오페라 무대에 오른다.
▶젊은 성악가의 젊은 오페라 ‘코지 판 투테’=젊은 감성을 한껏 입힌 오페라도 있다. 바로 성악가 존노가 연출, 각색을 맡고 출연까지 하는 모차르트 오페라 ‘코지 판 투테’(11월 8일, 롯데콘서트홀)다. 이 오페라는 아예 ‘21세기판 대한민국 러브 버라이어티’라는 타이틀을 들고 나왔다.
‘코지 판 투테’는 결혼을 약속한 약혼녀의 변치 않는 마음을 시험하는 과정에서 이어지는 네 남녀의 심리극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이미 초연 당시에도 파격적인 스토리로 센세이션을 불러왔다.
존노가 진두지휘한 ‘코지 판 투테’는 이러한 과거의 색깔마저도 완전히 지웠다. 기발한 ‘발상의 전환’이다. 등장인물 역시 현대적 관점으로 재탄생했다. 우리나라 최고의 리얼리티 예능 프로듀서 돈PD와 스타 작가 데스피나 군단이 이끄는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 쇼로 다시 태어났기 때문이다. 각각 다른 여인을 유혹하는 페란도 역은 존노가, 굴리델모는 바리톤 김민성, 대한민국 최고의 예능PD 돈 알폰소는 ‘팬텀싱어4’ 크레즐의 멤버 바리톤 이승민이 맡았다.
존노의 오페라 연출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21년 크레디아 클래식 클럽에서 도니체티의 희극 오페라 ‘사랑의 묘약’을 흥미로운 스토리텔링으로 선보인 바 있다.
유정우 음악 칼럼니스트는 “누군가 21세기에도 오페라가 존재해야 하는 당위성을 묻는다면 존노의 ‘사랑의 묘약’이 그 명분을 제공하는 좋은 대답이 됐다”며 “오페라가 여전히 보편적 ‘이야기’로서 살아 숨 쉬는 생명력을 지닌 존재라는 것을 청중들의 감동을 통해 증명됐다”고 평했다. 고승희 기자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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