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타여행 - 발레타 옆 쓰리 시티즈
발레타의 명소 어퍼 바라카 가든 전망대에 서면 발레타 최고의 풍경이 펼쳐진다. 비토리오사(Vittoriosa), 생글레아(Senglea), 코스피쿠아(Cospicua) 3개 도시로 이루어진 쓰리 시티즈(Three Cities)의 성벽들이 위용을 자랑한다. 어퍼 바라카 가든이 몰타 최고의 전망을 자랑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그랜드 하버(The Grand Harbour)를 사이에 둔 채 마주보고 있는 쓰리 시티즈의 존재 때문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발레타가 몰타의 수도가 되기 전, 비토리오사가 몰타의 수도로 수없이 많은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비토리아사 Vittoriosa
상처 받은 골목, 문화를 입다
그 전망을 감상하고 나면 이미 마음은 쓰리 시티즈로 향하고 만다. 넉넉하지 않은 시간, 세 도시 중 한 곳만 가야 한다면 어느 도시로 가볼까? 눈앞의 풍경을 살피다가 크고 작은 요트들이 정박하고 있는 '그랑항구'에서 시선이 멈춰 섰다. 비교적 비용이 저렴해서 많은 유럽 부호들이 개인 요트를 정박시키고 있는 그랑항 앞에는 낭만과 화려함이 함께 바다를 수놓는다. 하지만 이곳은 긴 세월 수많은 적들의 침입을 감내했던 아픔의 역사가 물들어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발레타 이전의 옛 수도 비르구(Birgu)의 이야기다.
발레타의 어퍼 바라카 가든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와 쓰리 시티즈로 가는 보트에 올랐다.
몰타의 전통 배 '루쯔(Luzz)'를 닮은 작은 보트는 3개 도시의 맏형 격인 비토리오사를 향해 달렸다. 라임스톤 건물 숲에 감싸 안긴 바다 위에 수없이 많은 요트들이 마치 함대가 주둔하듯 질서정연하게 정렬해 있는 작은 선착장에 닿았다. 이곳은 과거 비르구라고 불렸고, 공식적으로는 비토리오사라고 명명된 도시의 해상 관문이다.
참고로 몰티즈들은 지금도 이 도시를 비르구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부른다고 한다. 선착장 앞에서 시티투어 기사들이 손짓을 하지만, 전망 좋은 레스토랑에 먼저 시선을 빼앗겼다. 해변 앞 럭셔리한 풍경 앞에서 즐기는 몰타미식회를 떠올리며 잠시 쉬어간다. '금강산도 식후경.'
성 안쪽으로 들어서자 분위기는 확연히 달라졌다. 좁은 골목들이 구불구불 이어졌고, 거리를 메운 라임스톤의 세월은 부쩍 늘어났다. 16세기 성 요한 기사단이 건설한 새로운 수도, 비르구의 시간 속으로 순식간에 빠져들었다. 고요함이 깊게 드리워진 오래된 도시는 더욱 오래된 도시 임디나 등과는 또 다른 분위기를 풍겨냈다.
1565년 몰타의 운명을 결정했던 오스만 제국과의 전쟁에서 성 요한 기사단이 승리를 거뒀고, '승리의 도시'라는 의미의 '시타 비토리아사(Città Vittoriosa)' 호칭이 이곳 비르구에 수여 됐다.
비토리오사의 영광을 기억하고 있는 비르구는 기쁜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이 도시에 엄청난 폭격의 아픔이 남아있는 곳이기도 하다. 곳곳에 남은 전쟁의 상흔들이 말없이 당시의 상황을 전해준다.
인접한 몰타 조선소를 파괴 하려는 독일군의 무자비한 폭탄이 만들어 낸 커다란 자국들이 벽과 벽에 또렷하게 남아있다. 고문을 당하던 방, 처형을 당하던 집 등은 마치 전쟁의 후유증처럼 여전히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만 같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외세의 침략과 전쟁 없는 도시가 되길 꿈꿨던 기사단의 간절함이 지금은 실현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숙연해진 마음이 오래 지속되지는 않았다. 지금은 슬픔을 모두 잊은 듯, 또 다른 골목 속에는 거창하지 않은 아름다움이 피어나고 있었다.
집집마다 걸려 있는 문패와, 작은 우편함, 문고리 하나하나, 그리고 알록달록한 창틀과 그 곁에 수줍게 피어난 꽃 한 송이에 마을은 생기발랄하게 웃고 있는 듯 했다. 우연히 마주친 꼬마 아이들은 마치 준비라도 한 것처럼 카메라 앞에서 앙증맞은 포즈와 웃음을 선사했고, 작은 공예품 숍에는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미적 감각이 넘쳐흘렀다.
골목 그 자체뿐만 아니라, 그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모든 것들이 '인스타그래머블'이었다. 영광과 상처 뒤에 자라난 질긴 생명력이 왠지 더욱 반가웠던 시간, 비르구의 생기발랄한 미소를 보는 듯해서 어느 때보다 감사했던 시간. 상처받은 골목은 그렇게 감성풍만한 문화를 입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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