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진 칼럼] 길 잃은 미국 정치와 세계
(서울=뉴스1)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 2023년 10월 3일 케빈 매카시 미국 연방하원 의장이 해임되었다. 미국 의회 역사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연방정부의 예산안을 승인하는 권한을 가진 하원은 공화당 221석, 민주당 212석으로 공화당이 다수인데 공화당 내 강경, 친트럼프 성향 프리덤 코커스 소속 의원 8인이 민주당에 합세해 해임안이 가결되었다.
사실 매카시는 프리덤 코커스와 가깝고 바이든 대통령 탄핵안을 밀어붙이는 공화당의 강경파다. 연방정부 셧다운과 예산안 문제를 놓고 내부에서 균열이 생긴 것이다. 매카시는 하원 의장에 선출되는 데도 15번의 투표라는 기록을 세웠었다. 민주당은 약간 어리둥절하다가 결국 당론을 정해 원론대로 갔다.
미디어와 인터넷이 발달할수록 공동체 내에서 소통이 쉬워지고 활발해진다. 그러면 서로서로 이해하고 대화하는 것이 수월해져서 정치도 대립보다는 화합으로 갈 것 같은데 현실은 정반대다. 미국 정치가 현재와 같은 상황이 된 데도 소셜미디어의 역할이 컸다.
소셜미디어는 특히 공화당 내 이른바 ‘포퓰리스트’들의 정치적 영향력을 키웠다. 포퓰리스트는 공화당의 집토끼인데 전체 유권자의 10퍼센트 정도로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런데 각양각색인 사람들이어서 조직화 되지 못했다가 소셜미디어가 포퓰리스트의 조직화라는 과업을 이루어 낸 것이다.
포퓰리스트란 사회 어느 곳에 있든지를 불문하고 누군가가 어떤 식으로든 미국에 해를 끼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포퓰리스트는 2015년 공화당 예비선거에서 태풍의 눈으로 등장해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트럼프는 친기업, 국가안보와 건전재정을 중시하는 전통 공화당 중진들을 숙청해버렸고 지역구 거의 전부가 포퓰리스트로 물갈이 되었다. 지금의 공화당은 우리가 아는 레이건(친재계)과 부시(안보), 아들 부시(개신교 신앙)의 정당이 아니다. 이렇게 되는 동안 전통적인 보수세력은 무기력했다. 신구의 접점은 이제 낙태 반대 정도다.
민주당도 달라졌기는 마찬가지다. 피터 자이한의 비유에 따르면 민주당 지도부는 어딘지는 모르지만 용한 점집에 다녀왔다. 향후 인구와 사회구조가 변화하면서 정권은 따놓은 당상이라고 믿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일단 민주당 일부의 이탈로 트럼프가 당선되었다. 집토끼였던 노동계가 등을 돌렸다. 진보성향 유권자도 은퇴하면서 보수가 되기 십상이고 멕시코계 이민자들은 2세대가 되면 공화당을 지지한다. 트럼프는 연임에 실패했지만 역대 최다득표로 낙선했다.
미국은 국토가 너무나 커서 인구의 40%가 시골과 소도시에 사는데 보수적인 인구다. 흩어져 있어서 응집력이 없다가 소셜미디어가 이들을 결집시켰다. 소셜미디어는 민주당 내에서도 버니 샌더스 같은 극단 진보주의자를 배출했는데 청년층에서의 인기는 대단했지만 선거에 도움은 못 주었다. 오히려 당의 초점을 흐렸다. 오바마의 소셜미디어를 활용한 선거 성공사례도 있지만 따지고 보면 오바마는 민주당의 틀 밖에서 ‘자수성가’한 정치인이었다.
미국 정치는 이렇게 뒤죽박죽이고 다시 자리를 잡으려면 시간이 걸린다. 그런데 이 문제는 미국 국내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미국 내에서 정치적 변화가 초래한 정치권의 모든 결정은 글로벌 지정학에 영향을 미친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수행하는 역할과 군사력, 글로벌 경제와 금융 장악력 때문이다. 동시에 미국은 글로벌 공급망을 부랴부랴 국내로 걷어 들이고 있어서 경제도 곧 문을 잠글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는 보수와 진보의 구별이 없다.
그렇다면 세계 각국은 좌표와 ‘지침’이 없어진 결과 각자 알아서 해야 된다. 미국 정치의 안정은 빨라도 5년은 걸릴 것이다. 그러나 세계 곳곳에서 미국에서와 마찬가지로 정치는 길을 잃고 있다. 미국의 외교정책과 경제정책에 가장 크게 영향을 받는 한국만 유일하게 예외가 되면 좋겠는데 한국은 소셜미디어의 최첨단을 가는 나라답게 어느 나라에 뒤질세라 정치가 분열적이다. 경제와 외교-국방이 정치와 무관하게 잘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할 수 있지만 인류 역사에 그런 마법은 없다.
bstar@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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