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대 출신이 '명문대밭' 스타트업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긱스]

2023. 10. 10.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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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 바바그라운드 대표 기고
이 기사는 프리미엄 스타트업 미디어 플랫폼 한경 긱스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허정 바바그라운드 대표는 선문대 정보통신학과를 졸업한 지방대 출신 스타트업 창업자입니다. 대한항공 객실승무원을 거쳐 여행 스타트업인 바바그라운드를 창업했습니다. 그는 명문대 출신이 많은 스타트업 업계에서 네트워크 부족 등 어려움을 겪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지방대 출신이라고 창업을 포기할 필요는 전혀 없다고 말합니다. 한경 긱스(Geeks)가 창업을 꿈꾸는 지방대 학생들에게 용기를 주고 싶다는 허 대표의 기고를 공유합니다. 

얼마 전 한 IT 매체에서 스타트업 창업자들의 학력을 살펴보는 기사를 다루었길래 흥미롭게 읽었다. 요즘 소위 잘 나간다는 스타트업 124개 대표의 학력을 뜯어본 기사였다.

 스타트업 대표의 학력, 명문대가 70%

결과는 서울대 41명, 연세대 20명, 카이스트 11명, 한양대 9명, 고려대 8명으로 124명 중 89명(71.8%)이 흔히 말하는 명문대 출신이다. 이어 건국대, 단국대, 서강대, UNIST, 포스텍 등 국내 인지도가 높은 대학이거나 UC버클리나 하버드 등 외국 대학을 제외하면 고졸 및 지방대 출신 대표는 약 20명 정도로 16%에 불과했다.

2019년 기준 서울 내 대학의 정원이 8만 8000여 명이고 서울 제외 수도권이 10만명, 비 수도권 지방대가 약 30만 명 정도다. 즉 서울을 제외한 수도권과 비수도권 대학의 학생 수가 서울의 학생 수보다 4배나 많지만, 스타트업 대표의 학력 통계에서는 고작 20%밖에 차지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나는 이처럼 사회에서 비주류로 살아가는 많은 지방대 학생의 현실과 가능성에 대해 항상 아쉬움이 많았다. 필자 역시 지방 공대 출신의 스타트업 대표로서 명문대 창업가가 주류인 스타트업 세계에서 겪는 어려움과 희망을 공유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지방대 학생들이 조금 더 용기를 갖고 세상에 도전하길 바란다.

 지지리도 공부 안하던 학생이었는데

학창 시절 나는 공부보단 바이크에 푹 빠져 살았다. 개인 모빌리티가 있다는 게 좋았고 이것으로 원하는 곳은 어디든 갈 수 있는 게 즐거웠다. 하지만 돈 없는 학생이다 보니 고장 직전의 바이크를 살 수 밖에 없었고 소리가 나거나 오일이 새는 등 크고 작은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야 했다. 나중에는 조금 하자가 있는 바이크를 저렴하게 구입해서 수리 후 값을 더 올려 되팔면서 5~10만원 씩 벌기도 했다. 야간 자율학습이 끝나면 친구랑 같이 독서실 계단에 가서 납땜을 했다. 비디오 재생기, 패딩 등 집에 안 쓰는 물건이 있으면 중고나라에 팔고 자본금을 조금 더 늘려 바이크를 사고 되팔다 보니 졸업할 땐 수중에 300만 원 정도 되는 돈이 있었다. 

그러다보니 성적은 바닥을 쳤다. 수도권 4년제는 꿈도 못꾸고 지방 4년제나 수도권 2년제 정도가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 무식하면 용감하다 했던가, 당시 나는 문과였는데 막연하게 무언가를 만드는 게 재미있고 인터넷으로 할 수 있는 게 굉장히 많을 것 같으니 그런 과를 가면 좋을 것 같았다. 그렇게 내 눈에 띄어 합격한 곳이 충청남도 아산에 있는 선문대학교의 정보통신공학과다. 정말 바보 같이 무엇을 배우는지도 모르는 채 흥미로워 보여서 가게 된 학과였는데, 입학하자마자 1학년 첫 수업을 받은 게 미분과적분, 일반물리학, C언어 같은 외계어의 향연이었다. 특히 C언어는 배우면서도 이게 뭘 하는 건지 몰랐다. 

무엇을 해야 수업을 잘 따라가면서 미래의 대비를 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때 선문대학교와 비트컴퓨터에서 함께 운영하는 '비트교육센터'라는 것을 알게됐다. 

3학년 1학기부터 4학년 1학기까지 1년 간 컴퓨터실에 파묻혀 살았다. 오전 9시까지 컴퓨터실로 가서 밤 12시까지 공부와 개발만 했다. 심지어 학점까지 인정돼 전공 수업은 듣지 않아도 됐다. C, C++, 자료구조를 초급에서 3개월 만에 끝내고 API, MFC 등 개발 기초교육을 4개월, C# 및 실제 프로젝트를 6개월 간 진행하며 방학까지 꼬박 시간을 보냈다. 수료 후 조금 건방져져서는 학교 전공 수업 수준이 너무 낮은 것 아닌가 싶을 정도로 개발 실력이 성장했다.

2013년, 12인 규모의 IT벤처기업에 연구원으로 입사했다. 대용량 데이터를 빠르게 처리하는 네트워크 솔루션을 개발하는 회사였고, 내 업무는 고화질 CCTV 관제 시스템 윈도우 응용프로그램과 안드로이드 앱 개발이었다. 연봉은 3000만 원 으로 당시 초봉 치곤 나쁘지 않았는데 두 가지 이유로 인해 8개월 만에 퇴사를 결정했다.

첫째, 내 개발 실력으로는 상위 1%가 될 수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개발자는 실력에 따라 1인 생산성 차이가 굉장히 많이 나는 직업이라고 생각하는데, 생산성이 높으면 그만큼 높은 연봉을 받을 수 있지만 낮다면 흔히 말하는 코더, 그저 코딩 노동자 수준을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라고 봤다. 

둘째, 회사 문화에 주눅이 들어 자존감이 많이 낮아져 있었다. 그곳은 대기업 출신들이 나와서 만든 벤처기업이었는데 대부분 학력이 서울대, 고려대였다. 내 퍼포먼스에 만족하지 못한 상무가 아침마다 나를 불러 야단을 쳤는데, 그때마다 꼭 지방대인 것을 언급했다. 

개발자란 정적인 직업을 그만두고 나니 사람을 대면하는 서비스업에 관심이 갔다. 그리고 이왕 서비스의 세계로 들어갈 거 가장 큰 회사인 대한항공의 객실승무원을 하자고 마음먹었다. 이때 주변 사람들로부터 가장 많이 들은 이야기는 “대한항공은 'SKY'만 뽑는다"거나 “지방대 출신은 거의 못봤다"는 것이었다. 내 주변의 그 누구도 내가 대한항공에 입사할 수 있을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약 6개월 후 2015년 2월에 대한항공 객실승무원으로 합격했고, 입사하고 나니 동기 40명 중 지방대 출신은 나까지 2명 밖에 없었다. 

대한항공 객실승무원 근무 시절.


대한항공에서는 2년 8개월 정도 근무했다. IT벤처기업에서 근무했던 경험과 달리 객실승무원으로 근무할 땐 지방대 출신인 것으로 스트레스 받을 일은 거의 없었다. 다만 내가 대한항공을 퇴사하게 된 이유는 매뉴얼 기반의 단조로운 업무로부터 내가 더 성장할 수 있는 길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바바그라운드를 창업한 이유

서른 살 11월 배낭여행을 떠났다. 중국, 네팔, 인도, 케냐, 이집트, 이란 그리고 구 소련으로부터 독립한 국가 등 개발도상국 위주로 10개월 간 여행했다. 여행 중 일주일에 두 편씩 에세이를 작성하며 나는 어떤 사람인지, 앞으로 어떤 일을 하며 살아가야 하는지 부단히 고민했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와 우연히 스타트업 창업자를 소개하는 기사를 보게 되었는데, 세상의 문제를 정의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팀을 만들고 끝없이 도전하는 모습에 설레다 못해 벅찬 감정을 느꼈다. 마침내 내가 앞으로 죽을 때까지 하고 싶은 일을 찾은 기분이었다. 내가 지금껏 겪은 문제는 무엇이 있고 내가 가진 역량으로 해결할 수 있는 건 무엇이 있는지 탐색하기 시작했다.

세계여행 중 찍은 사진.


배낭여행 중 개인적으로 많이 아쉬웠던 현상이 있었다. 나이 지긋한 시니어 외국인은 1-2인으로 자유 여행 하는 모습을 정말 많이 볼 수 있었는데, 그에 반해 한국인은 그런 케이스가 거의 없었고 대부분 30~40명 씩 모여 다니는 패키지만 볼 수 있었다. 자료를 조사해 보니 시니어가 퇴직 후 가장 하고 싶은 활동으로 자유 여행을 꼽았으나 다양한 어려움으로 인해 즐기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시점에 어머니께서 퇴직을 하셨는데 집에 무료하게 있는 모습을 보고 깨달았다. “내가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있겠구나.” 현대인의 높아진 여가 수준에 맞는 대부분의 서비스가 MZ세대를 대상으로 운영되고 있었는데, 시니어의 특성을 반영한 새로운 형태의 서비스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렇게 지금의 공동창업자인 CTO를 만나 팀을 꾸렸고 회사를 설립했다.

 지방대 출신 스타트업 창업자로 어려운 점 3가지

지방대 출신 스타트업 창업자로 어려운던 점을 꼽아보면 세 가지가 있다. 

첫째로는 내가 사업을 운영하기 위한 기초 지식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기업 운영에 대해 정말 아무것도 아는 게 없던 나는 발견하는 창업 관련 교육은 전부 신청해서 들었다. 그렇게 하나씩 배워가며 작성한 사업계획서가 2019년 9월 예비창업패키지에 선정되면서 사업화 자금을 지원받았고 2019년 12월 법인을 설립했다. “마침내 선정됐다!”고 외치던 이때부터가 진짜 어려움의 시작이었다. 이후 사업자 등록, 지원금 사용, 부가세 등 행정, 노무, 회계, 영업, 계약, 투자, 개발, 마케팅 등 모든 것이 처음인 상황에서 이 엄청난 양을 학습하는데만 해도 24시간이 부족했다. 심지어 2020년 1월 사업자 등록 이후 곧바로 코로나를 겪었고 오프라인 프로그램을 다루던 우리는 시작도 못하고 어려움을 겪었다. 그로 인해 초기 2년은 서비스의 성장 속도가 상당히 부진했다.

둘째로는 지방대 출신의 비즈니스 네트워크 부재다. 창업 초기엔 네트워크를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내 실력이 좋아지면 네트워크는 자연스레 생기기 마련"이라고 생각했다. 맞는 말이기도 하지만 그건 내 실력이 시장 평균치를 훨씬 상회하여 압도적인 퍼포먼스가 나올 때 이야기다. 지금 내 단계를 뛰어 넘고 빠르게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해선 사람들의 도움이 필수적이다. 명문대 출신은 동문 라인이 있다. 위에서 살펴 봤듯이 상당히 성장한 회사의 대표나 경영진이 명문대 출신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네트워크를 활용해 어렵지 않게 그들을 만날 수 있고 심지어는 그들이 멘토가 되어 끌어주기도 한다. 

셋째로는 가시적인 성과 없이 사업계획서 만으로 초기 신뢰를 얻기 어렵다는 것이다. 아직 아무런 성과가 없는 사업계획서로 초기 투자를 받기 위해 시장에 뛰어 들었다고 가정해보자. 같은 사업계획서라면 이걸 실행하는 팀이 카이스트 출신인지 지방대 출신인지 여부가 투자 유치 결과에 분명히 영향을 줄 것이다. 초기 투자는 성과보다도 창업 팀의 역량을 보고 하는 경우가 많은데 확률적으로 성공한 창업자를 더 많이 배출한 학력의 팀을 선호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나 역시 채용을 할 때 학력을 본다. 특히 지원자가 이전 경력이 없는 경우엔 학력과 대외활동 내역에 더욱 의존할 수 밖에 없다. 

 지방대 출신이 가져야 할 마음가짐

그러나 위 세 가지 어려움은 퍼포먼스가 임계점을 넘는 순간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야놀자 창업자인 이수진 대표는 천안공업전문대에서 금형과를 전공했고 배달의민족 창업자인 김봉진 대표는 서울예술전문대학에서 실내디자인을 전공했다. 김봉진 대표는 2014년 한 방송에 나와 이렇게 이야기했다. 

“명문대를 다닌 사람들은 고등학교 때 엄청 노력을 많이 했다. 개인의 상황, 환경적 요인도 있지만 개인의 노력을 무시할 수 없다. 그럼에도 사회에 나와서 동일한 출발점에서 시작하는 것은 역차별이다. 내가 고등학교 때 담배피우고 놀러 다닐 때 그 친구들은 하루에 2-3시간 자면서 공부해서 명문대 간 거다. 바꿀 수 있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그들이 노력했던 시간보다 두 배로 더 많이 해야 한다. 그것을 이겨내지 못하면 아무것도 극복할 수 없다. 현실을 깨끗이 인정해야 된다."

비바그라운드 팀원들.

지방대 출신은 취업이나 창업 시장에서 더 좋은 기회를 얻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과거에 기반한 현재의 결과이기 때문에 너무도 당연한 것이고 이것을 억울해 하는 것은 오히려 역차별일 수 있다. 그러나 명문대 출신이라고 전부 성공하는 것도 아니고 지방대 출신이라고 전부 실패하는 것도 아니다. 학력은 단지 신뢰를 기반으로 작동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한 개인이 얼마나 잘 할 것 같은지를 확률적으로 보여주는 초기 데이터일 뿐이다. 명문대를 졸업하고 10년 동안 아무런 퍼포먼스가 없으면 신뢰가 무너질 것이고 지방대를 졸업하고 10년 동안 멋진 퍼포먼스를 보여주면 굉장한 신뢰가 생길 것이다. 진짜 중요한 건 학력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왔는가'이다.
 


□허정 바바그라운드 대표


대한민국 중년 여성의 건강한 여가 생활을 돕는 웰니스 서비스 '노는법'을 만들고 있습니다. 노는법은 '나를 위한 삶'에 적극적인 45-59세 여성이 정서·신체적으로 치유할 수 있는 다양한 웰니스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이들이 함께 즐길 수 있도록 안전하게 연결하는 커뮤니티 기능을 개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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