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세 원룸살이에 비정규직 처지여도… 거지로 살아서 꼭 이겨주마[소설, 한국을 말하다]
거지방 - 우리들의 방
“무슨 방이라고?” 언니의 동거인인 해영 씨가 상추쌈을 크게 싸서 입에 넣으려다 말고 물었다. 언니가 불판 위의 삼겹살을 뒤집으며 거지방, 하고 말했다. 원래는 언니도 거지방이 뭔지 몰랐지만 내가 알려주었다. 지출을 줄이려는 청년들이 모여 서로를 지지해주는 단체 채팅방이라고.
일주일 전 여의도 복합 쇼핑몰에서 만난 언니는 쇼핑을 하고 싶어 했지만, 나는 언니가 마음에 드는 옷을 집어 들 때마다 옆에서 잔소리를 했다. “그게 꼭 필요해?” 언니는 고개를 저었다. “꼭 필요하진 않아.” 나는 언니가 그렇게 답할 줄 알고 있었다. 꼭 필요해서 사는 옷이란 거의 없으니까. 언니와 함께 쇼핑몰을 걷는 동안에도 나는 간간이 거지방 채팅창에 올라오는 톡을 확인했다. 철없는거지님이 극장에서 상영 중인 최신 영화를 보고 싶다고 말하자 봉준5님이 답글을 즉시 달았다. ‘제가 쓴 시나리오 보내드릴게요. 미개봉 최신작입니다.’ 묵언수행님이 집 근처 헬스장에서 할인 행사를 하는데 지금 등록하면 큰 이득인 것 같다고 말하자 곧바로 두 개의 답글이 달렸다. ‘어싱을 하세요. 맨발로 흙바닥을 걷는 건 공짜예요.’ ‘산스장에서 운동하세요.’ 나는 청바지를 살펴보고 있는 언니에게 산스장이 뭔지 아느냐고 물었다. 언니는 고개를 갸웃하더니 중국 요리냐고 물었다. 타이밍 좋게 채팅방에 설명이 올라왔다. ‘산스장은 산에 있는 공짜 헬스장입니다. 주로 약수터 근처에 있습니다.’
해영 씨가 상추쌈을 씹어 삼키고 나서 내게 물었다. “40대가 모이는 거지방도 있어?” 나는 드물다고 답했다. 거지방의 주축은 10대와 20대였다. 30대는 종종 있어도 40대는 거의 없었다. 생각에 잠긴 표정을 짓던 언니가 말했다. “40대 중엔 거지가 없는 게 아닐까?” 그 말에 해영 씨가 숟가락을 탁 내려놓더니 말했다. “설마 우리만 거지인 거야?” 해영 씨와 언니는 서글픈 눈빛으로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해영 씨와 언니가 거지라고 생각하지 않았기에 왜 그런 말을 하는 건지 무척 의아했다. 두 사람은 너른 평수의 전셋집에 살았고, 나는 월세 원룸을 벗어나지 못하는 처지였다. 두 사람은 대기업 계열사의 정규직이었지만 나는 계약 만료를 앞두고 있는 비정규직이었다. 감히 누구 앞에서 거지 운운한단 말인가…. 나는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는 대신 불판 위에 남은 삼겹살을 젓가락으로 모조리 집어서 탑처럼 쌓았다. 그리고 한입에 넣고서 꼭꼭 씹어 먹었다. 나를 물끄러미 보던 언니가 말했다. “고기 더 시켜줄까?” 나는 고개를 저으며 휴대폰을 꺼내 거지방에 저녁 지출을 보고했다. ‘저녁 식사 0원. 정규직 언니들에게 솔트에이징 삼겹살 얻어먹었음.’ 그러자 곧바로 답글이 달렸다. ‘밑반찬 리필 요청한 뒤 포장해 와서 내일 드세요.’ 연이어 다른 답글이 올라왔다. ‘다음생은재벌딸님, 금지어 준수해주세요. 정규직, 상여금, 회사 추석 선물 얘기는 금지입니다. 곧 명절이 다가오니 주의해주세요.’ 나는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는 토끼 이모티콘을 채팅창에 띄웠다. 가장 중요한 규칙인데 그걸 잊어버리다니.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고깃집을 나와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남은 밑반찬은 결국 포장하지 못했다. 해영 씨가 진상 손님이라면서 나를 뜯어말렸다. 반찬 리필을 요청한 뒤 일부러 남기고서 그걸 포장해달라고 요구하는 손님이 속출하면 자영업자 입장에선 타격이 클 거라고 말했다. 나는 한 번 정도의 리필은 괜찮은 거 아니냐고 물었다. 해영 씨가 언니를 돌아보며 말했다. “얘가 거지방에 들어가더니 정말로 거지 근성이 생겼나 봐.” 두 사람은 낄낄거렸고 나는 기분이 확 상했다. “거지 근성을 기르는 곳이 아니라 합리적 소비를 하는 청년들의 연대라니까.” 언니가 나를 흘겨보더니 말했다. “야, 그거 그냥 재미로 하는 거 아니야?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자기가 쓴 걸 전부 다 보고하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냐. 충동적으로 지출한 건 안 알리겠지. 그냥 경제학적 조크로 드립 치고 놀려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 아니야?”
나는 언니의 말에 기함했다. 우리를 저따위로 폄훼하다니. 우리는 목숨 걸고 돈을 아끼고 있다고 항변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다. 목숨까진 걸지 않으니까. 어쩌면 언니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재미있는 놀이로 여기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아니었다. 혼자 아끼는 것보다 타인과 연대하며 절약하면 미션을 수행하는 기분이 들어 외로움이 한결 줄어들었다. 낙관적인 미래를 조금씩 꿈꾸게 되는 효과도 있었다. 비관을 희망이 잠재된 놀이로 바꾸려는 전복적 자세를 언니는 도통 모르는 것 같았다. 이것이 정규직으로 출발한 언니의 삶과 그러지 못한 내 삶의 차이점일까. 나는 그런 말을 구구절절 늘어놓는 대신 언니의 단어 선택에 일침을 가했다. 툭하면 자기도 MZ라고 거들먹거리는 언니에게 유효타가 될 만한 말을 고르려고 머리를 굴렸다. “언니, 요즘 누가 조크라는 단어를 써? 진짜 옛날 사람이네.” 언니는 비죽거리며 너는 레트로도 모르냐고 맞섰다. 나는 젠체하며 말했다. “레트로라는 단어, 나는 마음에 안 들어. 우리에겐 레트로라는 개념이 성립이 안 돼. 새로운 거라서 관심이 가는 거니까 레트로가 아니라 그냥 뉴라고.” 분명한 선을 긋는 내 말에 언니가 씩씩거렸다. 논쟁에선 한 발도 물러서지 않으려는 습성은 익히 알았지만 오늘따라 그런 모습이 더욱 얄미웠다. 나는 한 번 더 쐐기를 박았다. “거지방에 참여하는 마음의 밑바탕엔 절대로 지지 않겠다는 오기가 있어. 우리를 쉽게 보지 마.” 언니가 코웃음을 치더니 그게 무슨 오기냐고 물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며 말했다. “내가 거지로 살아서 너를 꼭 이겨주마, 이런 느낌인 거지.”
언니는 ‘너’가 누굴 뜻하는지 묻지 않았다. 각자도생을 권하는 사회인지, 혼란스러운 시대인지, 나보다 잘나가는 친구 아무개인지 궁금해하지 않았다. 언니는 입을 꾹 다물고 팔짱을 낀 채로 걸었고 나도 고집스레 침묵했다.
우리의 눈치를 살피던 해영 씨가 허공에 손바닥을 펼치더니 말했다. “비 오는데?” 그 말이 끝나자마자 빗방울이 후드득 떨어지기 시작했다. 전철역까진 거리가 꽤 되었지만 내겐 우산이 없었다. 그 사실을 깨닫자마자 처량함이 밀려왔다. 여기까지 오느라 지하철을 57분이나 탔다. 공짜로 고급 삼겹살을 먹었다는 걸 거지방에 말하고 싶어서 그랬다. 나는 얼굴도 모르는 거지방 참여자들에게 깊은 연대감을 느끼고 있었다. 회사에선 계약 만료를 앞두고도 아무런 말이 없었고, 나는 다른 직장으로 옮기기 전에 휴식기를 갖고 싶었다. 사용 기한이 정해져 있는 부품처럼 나를 대하는 곳으로 다시 돌아가기 전에 내 삶을 고민해볼 수 있는 안식년을 갖고 싶었다. 그러자면 절약은 필수였다. 언니는 이런 내 마음을 전혀 모르는 것 같았다.
빗방울이 점점 더 굵어지면서 내 정수리와 이마를 때렸다. 황당하게도 딱밤을 맞은 것처럼 아팠다. 이대로라면 역에 도착하기도 전에 쫄딱 젖을 것 같았다. 나는 언니와 해영 씨에게 그만 집으로 돌아가라고 말했다. 언니는 내 말을 들은 척도 안 하더니 편의점을 가리키며 그리로 발길을 돌렸다. 설마 우산을 사려는 건가? 나는 황급히 언니를 뒤따라갔다. 거지방 참여자들이 가장 혐오하는 지출을 언니가 저지르려 했다. 비 맞기 싫어서 우산 사기. 거지방 참여자들은 입 모아 이렇게 말하곤 했다. ‘그냥 맞으세요. 비 좀 맞는다고 안 죽어요.’
나는 편의점 차양 아래로 막 들어서는 언니의 팔을 다급히 붙잡았다. “우산 사지 마. 그냥 맞고 갈 거야.” 그러나 내 말이 끝나자마자 하늘이 둘로 쪼개질 듯한 굉음이 울리며 천둥이 치더니 양동이로 퍼부은 듯이 비가 쏟아져 내렸다. 장대비가 땅바닥에 꽂히는 소리가 어찌나 큰지 옆 사람의 말소리도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언니가 나를 나무라듯이 말했다. “우산 사줄 테니까 쓰고 가.” 나는 극구 만류했다. 그러자 언니가 나를 쏘아보며 물었다. “우산 좀 산다고 네 삶이 망해?” 나는 온 세상이 들으라는 듯 크게 외쳤다. “어. 우리는 망해. 쫄딱 망한다고!”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두 사람을 외면하고서 나는 차양 아래로 들어섰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거지방 동지들에게 보고했다. ‘폭우가 쏟아지네요. 우산 사는 대신 맞고 가려고요.’ 곧바로 답글이 달렸다. ‘폭포수라 생각하고 시원하게 맞으세요!’
나는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고서 크게 심호흡한 뒤 폭포수 한가운데로 풍덩 뛰어들었다. 찌릿한 한기가 온몸을 감쌌다.
“오기로, 절실함으로 시대적 상황 뛰어넘으려는 마음”
■ 작가의 말
“시대적 상황을 어떻게든 뛰어넘으려는 마음이라고 생각해요.” ‘거지방’, 즉 지출을 공유하고 조언하며 절약을 유도하는 커뮤니티의 확산에 대해 이서수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이 작가는 혼자 돈 절약 미션을 수행하던 중 거지방의 존재와 그 참여자 대부분이 20대라는 것을 알게 됐다고 한다. 거지방에 참여하는 청년들의 마음을 그리고 싶어졌다. “어떤 오기나 절실함이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집필을 이끌었다고.
거지방은 명칭부터 극단적이고, 암울하다. 이 작가는 거지방 참여자들을 살펴본 결과, 미래에 대한 큰 기대가 없는 듯했다면서도 ‘세상에 지지 않겠다’는 태도가 느껴졌다고 했다. “그렇게라도 희망을 품어야 한다는 절실함 내지 필요성 아닐까요.” 작가는 절망에서 한 발 떨어지기 위해, 우산을 쓰지 않고 폭포수 같은 빗속으로 돌진하는 소설 속 ‘나’, 즉 이 시대 청년들에게 단단한 믿음을 보낸다. “빗속처럼 ‘한기’가 느껴지는 세상은 계속되겠지만, 거지방을 경험한 20대는 나이가 들어서도 오기든 절실함이든 어떤 이유로든 언제나 돌파구를 찾아낼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 이서수는…
1983년생. 2014년 등단, ‘헬프 미 시스터’‘젊은 근희의 행진’ 등을 썼다. 황산벌청년문학상, 이효석문학상 등 수상.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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