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의 진짜 원인, 우리 사회의 아픈 요인 찾아야
[왜냐면] 기명 | 고려대 의대 교수(예방의학)
우리나라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살률 집계에서 1등을 한 지 20년이 됐다. 노인 자살은 다행히 감소하고 있는데, 이제 청년과 청소년의 자살이 증가하고 있다. 청소년의 자살률 순위는 다른 국가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높지 않으나, 여자 청소년의 자살률이 세계 최고 수준에 이르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학교 선생님들의 자살 소식이 이어졌다.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는 흔히 자살은 정신·심리·사회의 복합적 문제라고 말한다. 문제를 그렇게 이해했다면 자살예방에서도 ‘사회적 접근’을 당연히 적용해야 하겠지만 실제로는 미흡해 보인다. 우리나라의 높은 자살률은 사회적 해결책의 의미를 제대로 다루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한 사회의 자살률이 오랜 기간 일정하게 높다면 그 자살률은 일차적으로 그 사회의 특성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우리가 자살을 사회현상으로 감지하는 근거다. 자살은 심리과정을 통해 몸에 가한 결과지만 원인은 몸 너머 사회와 먼저 연결된다. 몸에 생긴 불안감, 우울감 등의 상처는 외부의 이유가 깃들어 있다. 청소년과 선생님의 자살에는 그들이 겪는 교육 시스템과 노동 조건에 인간의 정서를 고갈시키는 지점이 있는 것이다. 자살의 사회적 맥락을 강조하는 세계보건기구(WHO)와 많은 국가는 자살 예방의 다부문 접근을 지지한다. 자살의 문제는 정신·심리와 보건 영역이 독자적으로 해결할 수 없으며, 사회의 다양한 영역이 협력해야 한다는 고민이 반영된 것이다.
우리에 앞서 짧은 시기 자살률이 높았던 국가들이 여럿 있다. 스웨덴은 1960년대에서 1970년대까지, 헝가리는 1980년대와 1990년대 걸쳐, 핀란드는 1990년대 초반, 일본도 1990년대 후반 자살률이 높으나 지금은 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 수준으로 낮아졌다. 사회적 혹은 다부문 접근에 대한 일본과 핀란드의 사례는, 두 국가 모두 세계적으로 높은 자살률을 기록한 이후 감소에 성공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일본은 자살률이 1990년대 후반 이후 급격히 증가하자 2006년 자살대책 기본법을 제정한다. 자살대책 기본법은 곳곳에서 자살의 이해와 대책이 사회적이어야 함을 강조한다. ‘자살대책은 삶의 포괄적인 지원’으로서, 자살의 배경에 다양한 사회적 요인이 있음을 고려해 ‘보건, 의료, 복지, 교육, 노동 그 외의 다양한 부문의 연계’해야 함을 밝힌다. 종합적인 대책이 될 수 있도록 지자체에는 교부금을 지원해, 지역의 특성에 맞는 사회 보호 프로그램을 구축할 수 있게 했다.
핀란드의 예도 비슷하다. 1990년대 초반까지 자살률이 세계 최고 수준이었던 핀란드의 보건복지부에서 발간한 1986~1996년 사이 자살률 감소를 평가한 보고서를 보면, 자살률 감소의 중요한 성공 요인으로 보건뿐 아니라 노동, 경찰, 학교, 교회, 지역사회 등 다양한 영역이 참여한 40개의 프로젝트를 꼽는다. 사업 초기 회의적이었던 많은 보건전문가는 다른 영역에서의 중재가 유용하다는 것을 인정하게 됐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2004년 1차 자살예방 기본계획 이후 꾸준히 자살예방대책을 수립해오고 있다. 우리나라 자살예방 사업의 주요 전략은 정신건강 위기군을 빨리 발견해 정신상담이나 치료를 조기에 시작하는 것이다. 고위험군에 집중하는 것으로, 일차의료기관 연계나, 생명 지킴이(게이트 키퍼) 교육, 그리고 올해 발표한 5차 기본계획의 주요 정책인 정신건강검진의 확대 등도 조기발견과 정신의학적 의뢰, 치료의 기조에 충실한 것이다. 학교, 장애인, 금융, 주거 영역과 협력을 언급하는 경우도 정신문제에 대한 전문가 의뢰와 개입을 위한 관계기관들의 업무 협조에 그친다. 죽음을 생각하는 개인을 구하고, 가장 시급한 자살 위험에 대응하는 고위험군 전략은 항상 우선적 과제지만 사회적 접근과 균형을 이뤄야 한다. 선택적 고위험군 접근과 보편적 사회적 접근 두 가지를 병행 추구하는 것은 세계적 흐름이기도 하다.
고위험군에 집중하는 전략이 갖는 맹점은 명백하다. 고위험군 전략은 평가를 통해 위험군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고, 그 위험을 치료할 수 있는 확실한 치료방법이 정립된 경우에 적용한다. 코로나19 감염이 비슷한 예가 될 수 있다. 코로나19 감염군과 의심군은 비교적 정확하게 정의되고, 추적할 수도 있다. 국가가 계획한 치료 동기와 서비스 과정을 수용할 가능성도 크다.
자살은 다르다. 자살 위험을 측정하는 모형은 많지만 위험 요인들을 망라한 어떠한 모델도 예측 능력이 미흡하다는 것이 정설이다. 이번 교사들의 자살이 보여주듯이 위험군과 비위험군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자살로 생을 마감한 청소년들의 70%는 정서·행동 특성검사에서 정상 판정을 받았다는 보고도 있다. 고위험군은 자살자의 일부이며, 더 많은 자살은 고위험군 외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고위험군 접근의 또 다른 한계는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일반 인구의 정신건강 문제와 외부에서 그 문제를 구속하는 사회적 조건에 개입하는데 소극적이라는 점이다. 사실 한국 사회의 자살은 분노, 대인관계의 문제, 굴욕감, 앙심, 충동 등 평범함에 가려지기 쉬운 특성들과 연관이 깊다. 일시적 성향들일 수도 있는 이런 특성들은 사회적 고립, 해고, 악성 민원, 좌절, 박탈과 같은 상황들에 기반을 두고 있다. 많은 국가가 내면의 문제들에 대응하기 위해 이와 반응하는 사회적 환경까지 같이 관리하는 이유다. 덴마크는 청소년의 육체·정신적 건강을 위해 학교 교육에 매일 45분 이상의 운동을 의무화하고 있다. 땀 흘리며 뛰다 보면 갈등, 경쟁, 불만은 조금은 가벼워지고 작은 만족감도 얻을 것이다. 여유 없이 지쳐 있는 우리 아이들에게도 운동은 조그만 치유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사회적 실패이기도 한 자살에 대한 책임과 정책의 범위가 제한적일 때 자살은 개인의 문제로 협소해진다. 자살예방은 아픈 개인을 찾아내어 치유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우리 사회의 아픈 요인을 찾아 넓게 대응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제라도 교육, 금융, 노동 등 사회의 다른 영역들이 자살 예방의 책임을 정신·심리와 보건의료로 넘긴 채, 자신들의 목적과 이익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자살을 그 영역의 입장에서도 가장 심각한 결과로 이해하도록 해야 한다. 각 영역마다 존재하는 사람들을 경계로 내모는 약점에서 구체적 자살 정책을 찾아내야 하고, 그 위치에서 문제를 풀려는 사람들과 자원을 늘려야 한다. 자살은 사회의 책임이라는 말이 그저 선하게 들리는 미사여구가 아니라 현실에 존재하는 것이 될 때 서서히 극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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