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자전거의 모터, 소년의 삶을 바꾸다
전 세계에 퍼져 있는 200여 국가는 UN에 따르면 4가지 범주로 분류된다. 선진국, 개발도상국, 최저개발국, 기타 등이다. 국제통화기금IMF도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는데, 홍콩 같은 도시를 포함하기 위해 '컨트리countries'(국가) 대신 '이코노미스economies'(경제지역)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기타'는 IMF 통계에서 제외된 지역으로 서사하라(지난 9월 7일 진도 6.8의 큰 지진으로 2,100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한 모로코와 '사하라 아랍민주공화국' 사이의 영토 분쟁이 진행 중인 북아프리카 지역), 그린란드, 남극, 팔레스타인, 북한, 쿠바, 바티칸 등이다.
아프리카 최빈국 말라위
'최저개발국Least developed countries, LDCs'은 1971년 유엔이 제안한 개념으로 '최빈국'이라고도 한다. 평균수명, 중등교육 수준, 성인 문맹률, 칼로리 섭취량, 경제구조의 취약성 등을 기준으로 해서 유엔경제사회이사회ECOSOC가 3년마다 LDCs 명단을 작성해 오고 있다. 가장 중요한 기준은 소득으로,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1,018달러 이하일 경우 최빈국으로 판단한다.
최저개발국은 대부분 아프리카에 있다. 아시아에 아프가니스탄과 예멘, 아메리카대륙에 아이티가 있으며, 유럽에는 없다.
그렇다면 50여개 국에 이르는 LDCs 중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Bottom 5'는 어디일까? 소말리아? 콩고?
2022년 IMF 추산치 기준 1인당 GDP는 부룬디(249달러), 아프가니스탄(통계 불가), 시에라리온(415달러), 남수단(467달러) 등이다. 그리고 말라위(523달러)인데, 앞의 다른 나라들이 내전과 종족 분쟁 등을 겪고 있음을 감안한다면, 말라위야말로 '정치·사회적으로 안정된 나라 중 세계에서 가장 못 사는 나라'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는 국가이다.
영국이 제작한 <바람을 길들인 풍차소년The Boy Who Harnessed the Wind>(감독 치웨텔 에지오포, 2019)은 바로 이 말라위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을 소재로 한 영화이다.
인구 2,150만여 명의 말라위는 동아프리카의 내륙국이다. 인구의 85%가 기독교도이고, 나머지는 이슬람이다. 국가國歌 자체가 '하나님께서 말라위를 축복하신다'이며, 영화에서 기도하는 장면이 자주 등장하는 이유이다.
영국 선교사이자 탐험가인 데이비드 리빙스턴이 1858년 이 땅을 발견하기 이전의 역사는 명확하지 않다. 다만 아랍의 노예 상인이 당시 이곳에 진출해 있던 것만은 확실하다. 영국은 '노예무역 박멸'을 구실로 이곳에 진출해 1892년 영국보호령으로 삼았다. 말라위는 1964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고 영연방의 일원이 되었고, 이런 연유로 영어와 부족 언어인 '체와어'가 공용어이다. <바람을 길들인 풍차소년>에서도 등장인물들이 영어와 체와어를 번갈아 사용하고 있다.
빈곤과 굶주림이 일상화된 곳
영화에서 묘사되듯 말라위는 여타 아프리카 국가들과 달리 부존자원이 없고 오로지 농업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산업 구조를 갖고 있다. 인구의 85%가 농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차, 희귀어류, 목화, 담배 등이 주요 수출품이다. 이는 말라위가 자연재해에 매우 취약한 경제구조라는 얘기다.
작품 전반부에서 상세히 묘사하듯 말라위의 주식은 옥수수이지만 가뭄과 흉작, 또 정반대인 홍수 등의 자연재해로 빈곤과 굶주림이 일상화되어 있는 곳이다.
14세 소년 '윌리엄 캄쾀바William Kamkwamba(맥스웰 심바)는 농부(치웨텔 에지오포)의 아들이다. 가난한 가정에서 자랐지만 마을 사람들의 라디오를 수리하고 폐차장에 버려진 부품을 모아서 뚝딱뚝딱 뭔가를 만들어내는 영특한 소년이다.
때는 2001년이지만, 이 마을 사람들은 TV도 냉장고도 없이 생활하고 있다. 오로지 교육만이 아이들의 장래를 바꿀 수 있다는 소신을 가진 아버지와 엄마(아이사 마이가) 덕분에 잠시 학교생활도 하지만 수업료를 계속 낼 수 없어 집에서 농사일을 거든다.
인근 담배 농장의 자본가들은 가공에 쓰일 목재를 확보하기 위해 주민들이 소유한 토지와 나무들을 헐값에 사들여 벌채하고, 이는 지역의 사막화와 홍수를 악화시킨다.
가족도 흔들리기 시작한다. 아무리 애써 밭을 갈고 옥수수 수확을 해도 1년은커녕 3개월 넘기기에도 턱없이 모자란다. 설상가상으로 옆 마을 주민들은 생명줄 같은 윌리엄 집 옥수수를 약탈해 간다.
대학에 진학해 번듯한 직업을 갖겠다는 꿈 많던 누나는 자신을 좋아하는 학교 교사와 야반도주를 한다.
소년 윌리엄은 허름한 도서관에서 찾아낸 낡은 기초 과학책을 통해, 교사가 타고 다니는 자전거의 라이트 불빛이 바퀴에 부착된 소형 모터에 의한 것임을 깨닫게 된다. 나아가 재료들을 확보해 풍차를 만들 수만 있다면, 별도의 전기 공급 없이도 우물물을 길어 올려 논에 댈 수 있을 것이라고 구상한다.
실제 말라위에는 '하르마탄Harmattan'이라 불리는 강풍이 엄청나게 부는 까닭에 풍력 발전이 적격이라고 한다. 하르마탄은 사하라 사막에 부는 북동 무역풍으로, 사막의 풍진風塵을 동반하는 건조한 열풍이다.
윌리엄은 아버지의 강력한 반대를 무릅쓰고 아버지의 자전거를 받아내는 데 성공한다. 자전거 체인과 바퀴, 빨랫줄로 쓰던 피복 벗겨진 낡은 전선, 고장 난 트랙터에서 떼어낸 송풍 팬, 폐품 여기저기서 뜯어낸 전자 부품을 모아 드디어 풍차를 만들어 낸다. 여기에 매단 발전기는 자전거에 쓰이는 12V 발전기였다. 소년의 도전 덕분에 가뭄으로 농사를 포기하던 마을은 양수기를 가동해 관개농업을 부활시키게 된다.
영화에서 따로 묘사되진 않지만 윌리엄 캄쾀바는 뒤늦게 말라위에서 화제의 인물이 된다. 말라위 최고학부에 장학생으로 진학한 후 남아프리카공화국 아프리카 지도자 과정까지 수료한다. 2007년과 2009년, 두 차례에 걸쳐 TED 강연을 하면서 세계적인 유명세를 탔다.
아이비리그 명문인 다트머스대학에서 환경학을 전공한 뒤 여러 후원에 힘입어 에너지 분야에서 활동하며 여전히 말라위 곳곳에 풍차를 만들어 보급하고 있다.
그는 "영화에서 3남매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7남매인 형제자매 중 교육 기회를 얻었던 건 본인만이 유일하다"는 것을 강연 때마다 언급한다.
"제가 만약 도서관에 출입할 수 없었다면, 그곳에서 미국에서 발간된 초급 에너지 개론을 보지 못했다면 저는 미래에 대한 꿈은 일찌감치 포기한 채 아버지처럼 메마른 땅을 갈며 하늘이 비를 내려주기만 바라는 인생을 살고 있었을 것입니다."
"잘사는 나라의 전력 낭비, 너무 심해"
2007년 환경운동가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의 초청으로 미국을 방문했을 때 캄쾀바는 캘리포니아주 팜스프링스 풍력발전소의 풍력발전기 6,000개를 보고 기겁했다고 한다. 이 발전소 규모면 말라위 전체가 전기를 풍족하게 쓰고도 남는 양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말라위에선 집안의 어둠을 밝히고 라디오·휴대폰 같은 통신 장비와 몇몇 농기구를 돌리는 전력량만 있으면 된다"면서도 "미국 대도시들의 전력 낭비는 너무 심한 것 아닌가"라며 어이없어 했다.
감독이자 아버지 역할을 맡은 <노예 12년>의 명배우 치웨텔 에지오포는 섣부른 영웅담과 기근·극빈의 신파조 모두를 거부한다.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영화는 말라위의 상황과 교육 붕괴, 가정 파탄을 담담히 묘사한다. 이 영화를 보면 아프리카의 사막 인근 지역의 자연환경이 얼마나 혹독한지를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실감할 수 있다.
영화의 또 다른 재미는 윌리엄의 엄마 '애그니스'의 캐릭터가 주는 감동이다. 극심한 가뭄에 "비를 내려주십사 하나님께 기도를 올리자"는 남편에게 아내는 일갈한다.
"기도할 시간에 나가서 뭐라도 하라."
수업료를 내지 못한 윌리엄이 교장으로부터 모욕을 받으며 학교에서 쫓겨난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애그니스는 학교를 찾아가 교장에게 눈물로 호소한다.
"비를 내려주십사 기도했지만 하나님은 기도를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우리 조상들은 함께했기 때문에 살아남았어요. 하지만 교장 선생님과 우리는 언제 함께하나요?"
동서고금 막론하고 여자는 남자보다 현명하고, 어머니는 아버지보다 훨씬 강하다.
월간산 10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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